“우리나라는 소설 쓰기 참 좋은 나라… 애환 담긴 이야깃거리 많은 게 장점”

김홍신 작가
김홍신 작가

[일요서울ㅣ장휘경 기자] 10·20대 청소년들은 장래 직업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있지만, 자신의 진로 설계가 과연 올바른 것인지 확신을 얻지 못해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일요서울이 다양한 직업군의 멘토를 만나 그 직업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알아봄으로써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직업관을 심어주고 진로를 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는 ‘소설가’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한 멘토로 김홍신 작가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홍신 작가는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소설가로서 소설뿐 아니라 시, 수필, 콩트, 동화 등 장르를 넘어 우리나라 문학 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어릴 적 유치원에서 한글을 뗀 후 만화책을 읽기 시작해 초등학교 때부터는 동화를 비롯한 각종 책을 너무 열심히 봐서 활자 중독됐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소년 시절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그는 교과서에 글이 많이 실리는 유명작가가 되고 싶은 욕구가 움텄다.

이에 의과대학에 들어가길 원하셨던 부모님의 바람과는 달리 작가가 꿈이었던 그는 부모님 몰래 국문과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문학 공부를 시작했고, 결국 현재의 위치에 서게 됐다.

김 작가는 1976년 현대문학 소설 ‘본전댁’으로 문학계에 등단한 이후 다양한 장르의 집필을 통해 138권의 책을 출간했다. 현실과 이상, 고통과 위로, 정의와 희망, 풍자와 해학으로 뜨거운 휴머니즘의 바람을 선사한 그의 책들은 논산에 소재한 ‘김홍신 문학관’에 모두 전시돼 있다.

- 여러 장르의 문학 작품을 집필하시는 가운데 특별히 소설을 쓰실 때 다른 장르보다 유의해야 할 사항이나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갈등 구조예요. 특히 장편소설 한 편을 쓸 때는 종합적 사고가 가능해야 해요.

인물의 선역인 프로타고니스트와 악역인 안타고니스트 그다음에 제3역인 트라이고니스트 등 이 사람들의 성격 구조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미리 작가의 내면에 구상돼 있어야 하는 게 가장 유념해야 할 사항이죠.

물론 작품을 하나하나 쓸 때마다 이러한 종합적 사고를 해야 하는 게 고통이긴 해요. 그러나 끝나고 났을 때 통쾌함이 있고, 인생 공부도 많이 하게 되는 이점이 있어요. 주인공의 시련과 고난 극복 과정 등이 혼자만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취재를 많이 하고 책을 많이 읽은 후 상상력을 통해서 나오게 되거든요.

- 주로 산업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깊이 파헤치는 내용의 작품을 집필하셨는데, 이를 통해 작가님은 어떤 만족감을 얻으셨나요.

▲작가는 사회의 부정, 비리 등에 대한 비판력을 시대적 소명으로 가져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는 우리나라가 산업사회로 이동하는 시기였어요. 지금 우리가 산업화를 이루긴 했지만, 당시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와 집단생활하면서 곤궁하고 배고프고 병들고, 여성 근로자들 경우에는 성적 고통까지, 가난한 사람들이 회사에서 받는 정신적 압박이 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 과정에서 국민이 가지고 있던 억울한 감정, 분노, 화, 짜증 등을 풀어주는 역할을 제가 했다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사회 비판이란 결국 가진 자, 높은 자, 정치적 책임자, 언론사, 재벌 등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제가 엄청난 시련과 불이득을 당할 수밖에 없었지 않습니까? 그래도 이제 세월 지나고 보니까, 그것 때문에 제가 국민과 독자들에게는 인정을 많이 받았다고 생각해요.

- 현대문학소설부터 대하역사소설까지 다양한 소설을 출간하셨는데요, 작가로서 소설의 진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소설의 가치는 소설에 담긴 이야기가 결정하죠.

우리나라가 소설 쓰기 참 좋은 나라예요. 우리나라는 예전에 절대빈곤 국가였으며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민족상잔의 전쟁을 겪었고 현재도 철조망에 가로막힌 섬나라로서 남북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그에 따른 애환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마다 이야깃거리가 많아요. 그래서 한국인은 중년만 넘어가면 자신의 이야기가 전부 소설거리라고 말하잖아요. 거기에다가 가장 빨리 민주화와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가 우리나라거든요.

대한민국은 이러한 우여곡절의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아 소설적 가치가 넘치는 나라예요. 사람들의 고난과 시련 등을 풀어내는 장르 중의 하나가 소설이니까요.

- 지금까지 집필하신 소설 중 작가님의 가치관과 성향이 가장 잘 나타난 대표적인 소설에 대해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김홍신’ 하면 ‘인간시장’, ‘인간시장’ 하면 김홍신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인식됐는데, 내 가치관과 성향은 ‘인간시장’에서 보여준 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해요.

물론 사회의 부조리와 권력의 횡포, 서민의 애환을 그린 ‘인간시장’ 안에 나의 가치관과 성향이 상당히 많이 나타나 있지만, 그 밖의 작품들에서는 나의 다른 면이 잘 나타나 있어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살려내고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리기 위해서 쓴 ‘대발해’와 우리 민족의 애환을 그린 ‘난장판’·‘대곡’, 남북이 갈라진 이데올로기 문제를 다룬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진정한 휴머니즘을 나타낸 ‘바람으로 그린 그림’, 현 정권 및 대통령의 실상을 파헤친 ‘대통령, 정신 차리소’ 등을 보면 제 작품이 종합적이고 굉장히 다양성이 있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거예요.

- 정치인으로 활동하셨을 때 정치 기득권에 맞서 소신과 열정의 정치 활동을 펼치심으로써 ‘8년 연속 의정평가 1등 국회의원’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셨는데요. 이러한 소신과 열정의 정치인이셨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나요.

▲법안을 제일 많이 낸 의원, 출석률이 제일 좋은 의원, 법안 내용이 제일 좋은 의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8년 연속 1등이 됐는데요.

사실 제 별명이 여러 개인 가운데 그중 하나가 ‘상습적 당론 거부자’였어요. 실질적으로 우리 당이라도 잘못하면 우리 당을 비판하고 저쪽 당이 잘하면 저쪽 당을 편들며 칭송했기 때문에 내부에서 비판받고 미움받아 외로운 상황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의도 장총찬’, ‘여의도 암행어사’ 등의 별명까지 붙었고 심지어는 ‘여의도 빈 라덴’이란 별명까지 제가 갖게 됐잖습니까? 그 이유는 윗사람, 총재, 대표 눈치 안 보고 무엇이든지 옳은 일이면 하고, 그른 일이면 비판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 소설을 창작하실 때 주요한 모티브는 주로 어디서 찾아서 설정하시나요.

▲먼저 상상력을 동원하고 주로 취재를 많이 해요. 그리고 독서, 사건을 분석을 해내는 언론의 칼럼이나 사설, 잡지, 영화, 드라마 등 온갖 것에서 이야깃거리를 찾아요.

무엇보다도 저는 취재 노트가 몇십 권씩 있어요.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고, 그것을 통해 상상하고, 좀 더 취재할 건 취재하며 역사적 자료 같은 거는 전문가 도움을 받는 등 다방 면에서 그 모티브를 찾고 있습니다.

- 특별히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실 때는 언제이고, 반대로 글을 쓰시다가 회의를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또한, 글을 쓰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어느 때 뭔가 탁 떠오를 때가 있어요. 그러면 메모를 해 놓고, 그것에 대해 골몰하며 생각하곤 하는데요.

한번은 지금 대법관 중의 한 분이 지방 법원장을 할 때 저를 초대해서 저녁식사를 하다가 “글이 잘 써질 때가 언제입니까?”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아침 일찍 마감해야 하는 전날 밤 9시 뉴스 보고 10시가 지나서 새벽 1~2시까지가 제일 잘 써진다고 했더니, 무릎을 치면서 판사들도 마찬가지래요.

중요한 판결문 쓸 때 계속 ‘뭐라고 쓰지’, ‘어떻게 쓰지’, ‘이걸 어떻게 잡지’라고 한 달이건 1주일이건 고심하다가 마지막에 탁 튀어나오며 터진다는 거죠. 저는 고심하다가 글이 잘 써지면 ‘내가 천재인가 보다’라면서 흥분되지만 딱 막힐 때는 ‘나는 이제 그만 써야 하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며 스트레스를 엄청 받아요.

그럴 때 예전에는 가볍게 잊고 북한산이나 청계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오면 스트레스가 풀렸어요. 그러나 지금은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하면 안정이 되죠.

글을 쓰는 이유와 목적은, 편하게 얘기하면 글 쓰는 게 제 직업이니만큼 저에게 주어진 운명 같아요. 세속적으로 얘기하면 사주팔자를 그렇게 타고난 것 같고요.

하지만 이게 보통 고된 작업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나도 또 소설을 쓰겠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쓴다고 그럴 거예요. 저는 견딜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아요.

- 마지막으로 소설가를 꿈꾸는 10·20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 부탁드립니다.

▲우리 때는 만화책을 읽으면 어머니가 그걸 뺏어갔어요. 공부 안 하고 딴짓한다고, 근데 요즘은 아니거든요. 어려서부터 만화책부터 동화, 소설, 시, 수필 등 뭐든지 가리지 말고 독서를 많이 해야 돼요. 독서량이 많아야 좋은 상상력으로 좋은 구상을 하고 좋은 작품을 많이 쓸 수 있거든요. 모방을 통해서 창의성이 개발돼 창조력이 생기니까요.

우리나라도 처음에는 모방 성장하다가 나중에 창조 성장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LG 등을 보면 모두 창조성장으로 바뀌었잖아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점은, 소설가 같은 작가나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치열하게 읽고 쓰면서 사실적 가치를 찾고 자신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거예요. 내가 존엄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그를 통해 자존심을 가진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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