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눈앞, ‘웰다잉’ 교육을 통한 ‘죽음의 준비’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웰다잉(Well-dying)은 ‘잘 죽는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되지만, ‘잘 사는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그럼에도 취재에 앞서 관련 자료를 검색해봤을 때 죽음과 웰다잉은 마치 다른 선상에 존재하는 단어처럼 쓰이고 있었다. 우리말 ‘죽음’을 말하기는 어려워도 영어 ‘dying’은 조금 순화돼 보여서일까. 하지만 삶(life)이 있기에 죽음(dying)이 있으며, 웰다잉은 ‘계획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종착의 준비 과정이다. 국내 최초 ‘죽음준비학교’ 등으로 웰다잉 교육을 실시해온 박지은 서울시립 노원노인종합복지관 관장은 취재진에게 “그 이야기를 처음 꺼내는 것이 사실 쉽지는 않다”라면서도 “살아있는 동안 잘 살고, 언젠가는 죽으니 그에 대한 준비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관장을 만나 ‘웰다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국내 최초 ‘죽음준비학교’를 통한 삶의 가치에 대한 교육
성숙한 죽음을 위한 ‘웰다잉’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인터뷰

- ‘죽음준비학교’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 여러해 전 사회화 교육 중 하나로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이 유행했다. 이처럼 노년을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해서도 복지 차원에서 ‘제2의 인생 플랜’이라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기획한 바 있다. 경제적인 것은 어떻고, 신체적인 것은 어떻고. 하지만 바로 그 다음,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꺼내면 당장 ‘지구가 무너질 것처럼’ 종말을 앞둔 이야기로 들리니까 두려워하고 회피하더라. 그래서 이 죽음이야말로 값진 걸 배우는 학교처럼 운영하며 “알려주자”라고 생각했고, ‘죽음준비학교’를 시작하게 됐다. 

- 시작이 힘들지 않았나.
▲ 처음 ‘죽음준비학교’를 준비하고 시작할 때는 용기가 필요했다. 학교를 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전화도 참 많이 받았다. ‘죽는 방법 알려주는 거냐’, ‘이름이 왜 그러냐’부터 시작해서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소개될 뻔 했지만, ‘죽음’이라는 단어 때문에 취소가 되기도 했다. 사실 ‘죽음’이라는 단어 자체를 우리 사회가 매우 터부시하기 때문이다. 

- 죽음이라는 단어, 두려운 것이 사실인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 복지사 선생님들끼리 우스개로는 “전설의 고향이 다 망쳤다”라는 말도 했다. 공동묘지는 무서운 곳이고, 귀신이 나타나는 곳처럼 묘사됐었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 등을 방문해보면 유명한 파크(공원)가 공동묘지와 함께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나라처럼 “집값 떨어진다”며 님비현상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보통 ‘메모리얼 파크’ 등으로 불리는 공원 인근에도 집이 많다. 

- 죽음을 가까이 둬야 한다는 의미인가. 
▲ 장애인복지기관이나 노인복지기관 등이 내 집 주변에 생긴다고 하면 반대하는 분들이 많다. 사실은 무료급식(노원노인복지관은 무료 급식을 제공한다)을 포함해 나조차도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것인데도 집값 떨어진다는 말이 나온다.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죽음은 누구나 맞이해야 된다. 또 이를 맞이한 이는 상실에 대한 애도의 감정을 다루는 기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다루도록 충분히 훈련되지 않았다. 옆에서 슬퍼하는 이에게 “산 사람은 살아야지, 털고 일어나, 이젠 정신차려” 이런 말이 도움이 될까. 결국은 ‘죽음준비학교’처럼 웰다잉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 어떤 분이 교육을 받으면 되나.
▲ 입학 조건은 없다. 60세만 넘으면 된다. 당시 자유롭게 신청을 받았는데, 서울 전 지역에서 모였다. 한 회기에 20명을 모집하는데 대기자가 200명씩 있을 정도였다. 수년간 진행하고서 데이터를 곱아보니, 경제·학력 수준이 평균적으로 높았다. 삶이 어느 정도 해결된 분들이 인생 다음의 숙제가 궁금했던 거라고 생각했다. 삶의 기간보다 임박해진 죽음에 대한 과제를 두고 의문이 많았던 거다. 전직교사가 상당히 많았고, 신문기자나 대기업CEO 등 다양했다.

- 생각보다 웰다잉 교육자 모집은 쉬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 그렇지도 않다. 한 며느리가 “어머님을 모시고 오고 싶은데 제가 모시고 오면, ‘빨리 죽으란 얘기’처럼 보일까 봐서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죽음준비학교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라 했다. 기본적으로 철학적인 의미를 포함한 죽음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또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자서전을 쓰기도 한다. 그렇다고 비단 웰다잉 교육이 노인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젊은 세대들에게도 값진 삶의 시간에 대해 알려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 후기를 모두 묻기는 그렇지만, 기억나는 피드백이 있었나
▲ 2기... 2006년 4~5월 정도에 교육받으신 분으로 기억된다. 그로부터 약 4년 정도 후에 한 며느리가 찾아오셔서 일기장을 보여주더라. 어머니가 이 프로그램으로 교육 받으셨고, 이후 어떤 병을 얻은 다음 돌아가시기 전까지 병상일기를 며느리에게 매일매일 써 주셨다고. “그렇게 당신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음으로 준비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이 교육이었더라”라고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에 너무 감동해서 교육을 해준 것에 감사하다며 찾아오신 거였다. 

- 그 분도 대단하시다. 말은 쉬워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텐데.
▲ 인간의 성숙함이라 생각된다. 어느 순간이 되면 어떤 아우성도 소용없이 죽음이 도래하는 순인이 온다. 그 때 사랑하는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글로 쓰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이다. 농담처럼, ‘다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분도 있다. 물론 이것을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교육을 통해 죽음에 대한 준비, 그리고 이를 수용함으로써 삶의 태도를 변화시키고 삶의 성숙도를 높일 수 있었다. 

- 교육을 받으면 모두 삶의 태도나 성숙도가 달라질까.
▲ 물론, 체험하면서 배우는 과정에서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그런 기대도 있다. 그러나 단 몇 회기 진행하는 교육으로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 기억나는 사례가 있다. 교육을 마쳐갈 때쯤 어떤 어르신이 “나 그만 살려고 이 약을 모았는데, 이 프로그램이 뭔지 이거나 참여해보고 가자는 생각으로 참여했었다”라며 “내 삶이 이렇게 소중한데 내가 그동안 잘못 생각했다”라고 고백하시고는 모두들 보는 앞에서 약을 버리셨다. 교육이 완벽하게 모든 것을 바꿔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죽음)를 바라보는 생각과 삶에 대한 생각을부터 조금씩 바꿔나가도록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 감동적인 사례도 있고, 이 교육이 더 활성화됐으면 하는데.
▲ 보건복지부가 이런 프로그램을 2022년부터 올해까지 예정하면서 사업을 확장해왔다. 그리고 최근 정부에서 이와 관련 정책을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더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밝힌 교육이나 ‘연명의료결정제도’ 등으로 좀 더 구체적인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더불어 현재 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사회복지 공동모금회를 통해 예산을 마련하고 전세대를 위한유사한 교육을 예정하고 있다. 

- 끝으로 전하고픈 말은. 
▲ 50년 만에 갑자기 현대화된 것도 우리가 웰다잉에 대한 접근을 구체적으로 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한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당시의 장례와 내가 성인이 된 후에 마주했던 아버지의 장례는 너무나 달랐다. 갑자기 돌아가셨던 아버지의 장례는 준비가 전혀 없던 나에게 충격이었고, 단 3일 만에 모든 것을 끝내야만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에게 ‘밥 먹고 기운차리라’는 고모들의 말은 더욱 놀라웠다. 그렇게 복지관으로 돌아와 그간 뵙던 어르신을 보며, ‘이분들이 삶에만 집중하며 죽음을 전혀 예상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교육의 필요성이 간절해졌고, 그렇게 지금까지 흘러왔다. 이제는 어르신들이 이 교육의 필요성, 당위성을 당신들의 입으로 말씀하신다.

박지은 관장에 따르면 현재 전국 300여개 노인복지기관 중에 약 30~4050여 곳이 보건복지부 지원이나 개별 의지에 따라 교육을 하고 있다. 관계부처가 해당 기관의 교육의 질도 확인해봐야겠으나, 그나마도 교육하고 있는 곳이 6분의1 수준에 불과하다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는 더 이상 거부할 수 없는, 명실상부 초고령화사회로 달려가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그렇다면 이에 대한 정책적 대비도 반드시 필요하다. 노인이라서 안 되거나, 노인이라서 배제할 수 있다는 등의 핑계 같은 말은 이제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된다.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20대 전체 인구보다도 많은 2024년의 대한민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국민들의 ‘웰다잉’ 교육은 ‘바로 지금’ 필요해 보인다. 

서울시립 노원노인종합복지관 로비의 모습. [이창환기자]
서울시립 노원노인종합복지관 로비의 모습. [이창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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