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중화민국(=대만)의 새로운 총통(總統)으로 라이칭더(賴清德)가 선출되었다. 총통이란 중화민국의 국가원수를 부르는 직함으로 우리나라의 대통령에 해당한다. 영문으로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China로 표기하니 중화민국의 최고지도자를 부르는 직함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통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우리나라의 대통령보다는 그 권한이 막강해 보인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 우리나라 현실정치에도 총통이 있었다. 지금은 공산주의 체제 국가에서나 있을법한 정당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총재의 지위와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의 지위를 한 사람이 모두 가지고 있었다. , 총통(총재+대통령)이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군부독재의 본류 박정희, 전두환이 그랬다. 민주화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시기에도 대통령은 여당의 총재를 겸임하고 있었다. 제왕적 대통령제, 제왕적 총재라고 불렸던 시절이다. 이를 타파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우리 정당사에 정당의 최고지도자로서의 총재라는 직함이 사라지고, 대통령이 당직을 맡지 않는 전통이 세워졌다. 불과 20여 년 전 일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현실정치를 보면, 그러한 총통 시절의 대통령 권한보다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는 정치지도자를 목도하게 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그렇다. 410일 실시되는 국회의원선거의 비례대표제에 대하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이재명 대표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였다. 과거 김대중 총재 시절에도 없었던 가히 초헌법적 권한 위임이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5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깨어 행동하는 국민들께서 멋지게 이기는 길을 열어주시리라 믿겠다.”며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며 비례연합 괴뢰정당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병립형 회귀를 당연시하고 있던 국민의힘은 닭 쫓던 개 지붕쳐다 보는 신세가 됐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도 할 수 없는 일을 제1야당 대표가 해낸 것이다. 이재명 총통(總統)의 탄생이다.

지난해 1128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고 하면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던 그였기에 준연동형제 유지는 놀라운 반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를 끊임없는 권력투쟁의 일차원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는 그의 행태를 살펴보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그의 병립형 회귀 발언을 지렛대로 정적인 이낙연은 더불어민주당을 떠났으며,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던 원칙과 상식소속의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의원의 탈당은 방기했다. 병립형으로 회귀해서는 안 된다던 정세균, 김부겸 두 총리 경험자는 완벽하게 발목을 잡혀버렸다.

이재명 대표는 병립형 회귀를 미끼로 자신의 무소불위의 일방적 정치행태에 대한 비난을 준연동형 유지로 눈을 돌리게 한 뒤, 몰아낼 사람을 확실하게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준연동형제 유지로 발을 묶을 사람들을 확실하게 묶어냈다. 성동격서(聲東擊西)의 진수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을 내세워서는 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말하게 해,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 백기투항하라는 시그널을 보냈다. 자기가 직접 부대를 이끌고 나선 전쟁에서 진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닌데, 그에게 그런 염치는 처치한 지 오래다. 더불어민주당은 1인 천하, 총통 치세다.

지난해 11월 첫 방송을 시작한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이 장안의 화제다. 역사의 진위는 잘 모르겠으나, 드라마 소개란에는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고려의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라고 한다. 현종역을 맡은 이는 아이돌 스타 김동준이다. 현재 이재명 총통의 권력은 고려 황제 현종에 버금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치행태는 그의 발뒤꿈치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앞날이 가히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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