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선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여린 안철수 후보를 윽박질러 야권의 단일후보가 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48%의 득표율을 기록했지만,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게 패했다.

비상 상황에 직면한 민주통합당은 문희상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켜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 나섰다. 여기에 등장한 것이 2012년 총선 패배 뒤, 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만든 ‘4.11 총선 평가와 과제라는 제목의 38쪽짜리 PPT 보고서였다.

이 보고서를 두고 비주류 쪽은 대선 승리의 밑거름이 될 수 있었던 훌륭한 보고서를 주류 쪽이 자신들에 대한 평가가 각박하다는 이유로 사장(死藏)시켰다고 주장했으며, 주류 쪽은 완성되지 않은 허접한 보고서로 일고의 가치도 없는 종이 쪼가리였다며 반박했다.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민주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꽤나 완성된 형태의 보고서로 판명되었다.

이의 데자뷰(dejavu) 판이 더불어민주당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의 발언으로 촉발되었다. 그는 지난 6본의 아니게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하신 분들 역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발언이 이재명 대표를 향한 발언이라고 생각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친문을 자처하는 인사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어 지난 대선 패배 후에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백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그 내용에 관심이 쏠렸다. 보도에 의하면 900쪽 가까운 분량의 백서에서 이재명 후보 개인에 대한 평가나 반성은 담기지 않았고, 대선 패배의 원인으로 국정 지지율 45%의 역설을 꼽았다고 한다. , 문재인 정권이 윤석열 검찰 정권 탄생의 원인을 제공한 1등 공신이었다는 것이다. 임혁백 공천관리위원장의 발언에 반발한 친문 세력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 연말 원칙과 상식소속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기 전만 하더라도 닥치고 뭉치기만 하면 더불어민주당의 총선승리는 따논 당상이었다. 그러나 총선을 두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현재의 상황은 두 달 전의 상황과는 매우 다르다.

국민의힘은 한동훈의 힘에 의지하기로 결심하였고, 몇 번의 약속 대련으로 한동훈의 힘에 힘이 실렸다. 여당을 탈당한 이준석과 야당을 탈당한 이낙연은 일찍이 우리 정치사에서 없었던 실험에 착수했다. 아직 그 힘을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공천파동과 연동된다면 폭발적인 힘을 보여줄 수도 있다. 두 힘 모두 더불어민주당에게는 악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친명 일색으로 당을 도배하려는 의도는 명백하다. 총선승리의 공을 독점해서 이재명으로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총선승리를 자신하는 이유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가 일관되게 30%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과 그의 부인인 김건희 리스크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대선 백서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대선 패배의 원인이 국정 지지율 45%의 역설이었다면, 총선 패배의 원인도 ‘30%대 지지율의 역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감은 애초에 없었다. 그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일관되게 30%대를 유지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기대가 없기에 실망할 이유도 없으며, 선거를 통한 분노를 표출할 이유도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도와 김건희 리스크는 이미 이번 총선의 스모킹 건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더불어민주당 총선 패배의 필요충분조건은 성립되었다. 다만, 아직 변수는 있다. 이재명 대표가 염치를 처치한 정치 괴물에서 스스로 헤어 나오는 것이다. 대표직 사퇴 정도로는 어림없고, 정계 은퇴 정도는 돼야 판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졸보인 그에게 정계 은퇴가 가당키나 할까만, 총선승리로 김대중의 길을 걷게 될지 누가 알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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