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국힘 TK 공천, ‘중진 재배치 vs 초‧재선 컷오프’ 딜레마

국민의힘 주호영 의원(좌), 윤재옥 의원(우)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PK(부산·경남) 중진 의원들을 더불어민주당 현역 의원이 포진한 이른바 ‘낙동강 벨트’로 전진배치시키는 등 ‘영남 공천’ 교통정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영남 공천의 또 다른 퍼즐이자 국힘의 최대 텃밭인 TK(대구·경북)의 경우 2월 중순에 접어든 현 시점까지 이상하리만큼 잠잠하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여당 공천에서 유독 파장이 거셀 것으로 예측되는 TK가 그야말로 ‘폭풍전야’에 돌입했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회와 당 공관위가 ‘시스템 공천’에 기반한 대규모 인적쇄신 방침을 확고히 한 가운데, 당내 기득권으로 분류되는 영남권 현역 물갈이를 단행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TK 중진의 험지 차출 및 하위 초‧재선 대규모 컷오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TK 공천셈법을 풀가동 중인 한동훈 지도부와 공관위의 ‘최종 선택’에 귀추가 쏠려있다.

지난 16일 여당 공관위에 따르면 당내 현역의원 평가에서 영남권 의원들이 공천 배제(컷오프) 대상인 하위 10%와 득표율 감산 대상인 하위 30%에 가장 많이 포진해 있다. 

장동혁 사무총장은 이날 “하위 10%도 그렇고, 30%도 그렇고 비율은 영남 의원들이 가장 많을 것”이라고 이같이 밝혔다. 장 사무총장은 또 당내 중진 등 지역구 조정과 관련해 “지역구 조정이 있을 때 모든 분들이 만족할 수는 없다”며 “계양을도 마찬가지고 김경률 비상대책위원이 마포을을 간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원들께서 대승적 차원에서 당의 결정을 따라주셨으면 좋겠다는 부탁의 말을 드리겠다”고 거듭 단호한 기조를 내비쳤다.

이는 국민의힘 공관위가 PK 중진 재배치를 매듭지은 후 TK 공천 교통정리를 앞둔 상황에서 나온 메시지여서 더욱 주목된다. 지난 13일 정영환 공관위원장이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대구·경북은 다선 의원들을 어떻게 하는가, 그런 부분들이 있는 것”이라고 한 대목도 TK 중진 활용법에 대한 고민이 깊다는 말로 해석돼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앞서 국민의힘은 5선 서병수 의원(부산진갑)을 부산 북강서갑으로, 3선 김태호 의원(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을 양산을로, 3선 조해진 의원(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을 김해을로 각각 재배치했다. 북강서갑‧양산을‧김해을은 전재수‧김두관‧김정호 의원 등 민주당 재선 현역들이 버티고 있는 험지로, PK 양지에 기반을 뒀던 3선 이상 중진들을 대거 차출해 낙동강벨트 탈환에 나선 것이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부산 북구강서구갑 출마 요청 수락'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병수 국민의힘 의원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부산 북구강서구갑 출마 요청 수락'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PK 교통정리 일단락, 다음은 TK...중진들 운명은

이제 당 공관위의 시선은 최대 콘크리트 텃밭인 TK에 쏠린 상황이다. TK 현역 총 25명 중 3선 이상 중진은 5선 주호영 의원, 3선 김상훈‧윤재옥 의원 등 세 명에 불과하다. 

현재 당은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를 벗어난 적 없는 ‘TK 한정’ 베테랑들을 험지로 차출하느냐 여부를 놓고 고차방정식을 가동 중이다. 무엇보다 험지 경험이 전무한 중진들을 수도권 등 보수 열세 지역구로 투입했을 때 과연 경쟁력을 가져갈 수 있느냐가 주요 관건으로 지목된다. 

다만 주 의원의 경우 지난 20대 총선에서 당시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깃발을 꽂고 있었던 대구 수성갑을 탈환한 이력이 있는 데다, 5선의 인지도와 무게감까지 갖춘 터라 TK 중진 중 험지 차출이 가장 유력하다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주 의원은 이에 선을 긋듯 지난 14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구 수성갑 6선 도전을 공식화했다.

한동훈 위원장이 언급한 ‘곱셈공천’이 실현되려면 이들 중진을 험지로 보냈을 때 반드시 지역구를 탈환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이들이 차출되면서 비운 대구는 사실상 국민의힘 공천이 곧 당선으로 귀결되는 곳인 만큼 3석이 보장되지만, 중진 3인방이 험지 탈환에 실패할 경우 치러야 할 당 차원의 반대급부가 크다는 점은 공관위의 고민이 깊은 대목이다. 공천 디테일 부족으로 자칫 중진들이 대거 낙선이라도 하면 당내 허리 역할을 도맡았던 주요 인적자원이 망실되는 것은 물론, 야당의 지역구 고착화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TK는 약세지역이 뒤섞인 PK와 달라서 중진들을 험지 일선으로 차출하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며 “중량급 인사를 투입시켰음에도 험지를 되찾지 못하면 야당 현역의 토착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봤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공천관리위원회 제8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공천관리위원회 제8차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애매한’ 중진 재배치 대신 초‧재선 물갈이?

이렇다 보니 당 공관위가 TK 만큼은 중진을 재배치하는 대신, 현역평가 하위권에 있는 초‧재선 의원들을 대거 교체하는 데 방점을 둘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보수정당의 ‘기득권 양성소’로도 불리는 TK는 역대 총선마다 현역 50~60%에 달하는 고강도 물갈이 요구가 빗발친 지역이다. 또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인적쇄신 0순위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22대 총선을 앞둔 국민의힘은 현역의원 ‘하위 10% 컷오프’, ‘하위 30%‧동 지역구 3선 이상 감산’ 등 고강도의 페널티를 앞세웠다. 이는 사실상 당 지지율에 못 미치는 의원들이 대거 포진한 TK를 겨냥한 현역 물갈이 포석인 셈이다. TK는 통상 의원 개인 지지도보다 당 지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경향을 보인다.   

이에 TK 공천은 하위권 의원 컷오프 및 불출마 권고로 대규모 물갈이를 단행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수 있다는 게 내부 중평이다. 당 지지율을 밑도는 의원의 지역구는 컷오프 대상이 아니더라도 공관위원 2/3 이상 찬성하면 전략공천 지정이 가능하다. 이는 TK 초‧재선은 물론, 중진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구경북은 야당 텃밭인 호남과 마찬가지로 후보의 자체 경쟁력보다는 지역구 재편이라는 공천 계산법에 얼마나 부합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라며 “TK 현역의 88%가 초‧재선이다. 중진들은 당내 역할이나 지역구 신임도에서 안정적인데, TK 초‧재선들은 공천 시즌이면 그야말로 파리목숨과 같다”고 했다. 

또 이 관계자는 “심지어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낙하산 공천마저 배제된 상황인데, 한동훈 비대위나 공관위 입장에서 TK 초‧재선 라인을 대거 물갈이하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이라며 “초조한 TK 의원들로서는 예상질의 준비 등 면접에서 반드시 살아남는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다”고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한동훈 체제가 무차별적 TK 현역 쳐내기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엄존한다. 한 위원장과 정영환 공관위원장은 현재 시스템 공천이라는 대원칙에 입각한 인선으로 ‘낙천자 무더기 탈당’ 등 공천 후폭풍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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