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독점상인, 철시와 물품 유입 막아 백성 목숨담보로 조정 백기항복 강요

"뿌리가 이미 단단하고 위로 국가의 수요에 응하는 것도 있는데 지금 만약 난전을 엄하게 금하여 제각기 매매를 하게 한다면, 여러 점포가 잔폐해져서 혁파하는 것과 다를 것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조선 정조(15)가 금난전권을 폐하고 난전(미등록 상인 유통)을 허용하려고 하자 지금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인 평시서 제조 김문순이 이를 반대한 것이다. 시전 상인들을 대신해 "독점상인 중 몇몇은 국가의 수요에 부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괄적으로 독점권을 폐지하면 이들의 역할을 누가 대신할 수 있느냐"고 반박한 것이다.

금난전권(禁亂廛權)은 조선 정부가 시전(市廛:정부 지정상인)에게 부여한 특정 물종의 독점적 유통권으로 일종의 상업적 특권이다. 평시서와 한성부(서울시청)에 등록 않고 거래(난전)할 경우 시전(상인)은 물품의 압수 및 거래 물품에 대한 세금 징수, 처벌요구까지 가능했던 엄청난 독점 권력이었다.

당초 시전 제도와 금난전권은 효율적인 정부 물품 및 조세수입을 위해 지정됐으나 조선 중. 후반에 들어 독점과 정경유착에 따른 독과점으로 변질됐다. 결국 독점 상인들은 상품의 유통을 장악했고 백성은 고물가 등으로 생활난이 심해지고 경제는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시전상인들이 난전들로부터 자릿세를 거두어들이는 사실상 수세권을 행사하고 판매권을 무기로 농업과 제조업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임진왜란 등으로 피폐해진 상황에서 조선 왕실은 국가 재건과 물가안정을 통한 백성보호를 위해 자유로운 유통과 산업발전이 절실했다. 반드시 금난전권이 폐지되어야 했다.

그러나 금난전권 폐지는 50여년의 시간과 두 명의 왕, 7번의 시도와 철회 끝에 정조 15, 1791년에 가서야 원칙적으로 폐지됐다. 정조의 신해통공이다. 금난전권이 멀리는 1668(현종 9)부터 시작됐다니 정조의 말처럼 100여년 만에 최소한의 자유로운 유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영조와 정조는 숙종과 함께 조선 후기 최고 명군이자 현군, 개혁군주로 꼽힌다. 탕평책과 경연을 통해 신하들을 쥐락펴락했던 영조와 정조조차 번번이 실패했던 것은 당시 기준으로 천한 시전 상인패거리들이 조선의 경제와 백성의 목숨을 담보로 철시 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파업과 같은 철시는 한성의 모든 시장, 상점을 닫고 한강과 육로 등 한성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가로막아 임금과 조정이 금난전권 폐지를 폐지하라는 전교를 내릴 때까지 버틴 것이다.

최근 의료계가 의대정원 확대 반대를 내걸고 전공의 수련의들이 병원과 환자를 떠나고 이젠 의대교수들마저 제자 보호를 명분으로 파업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과 환자들은 기가 막힌다. 조선 장사치나 의사나 하는 짓이 똑같다.

병원 이탈은 250여 년 전 한성에서 상인들이 백성들이 죽거나 말거나 유통 독점권을 지키겠다고 '금난전권 폐지의 폐지'를 위한 철시 투쟁을 벌인 것과 다르지 않다.

힘없는 백성과 시민의 목숨을 담보로 벌이는 것이나 내가 없으면 경제도 의료도 없다는 오만, 최고 권력과 국가의 완전 백기를 요구하는 것도 같다. 난전을 허용하는 것은 기존 점포(상업)를 전폐하는 것이라는 김문순의 주장이나 의대 입학정원 늘리면 국가 의료체계 파괴라는 해괴한 주장이 다르지 않다.

특히 자신들이 갖고 있는 최대 장점, 상인은 돈, 의료인은 의술을 무기로 상대를 겁박하고 국민과 정부의 굴복을 강요하는 패악질까지 판박이다.

신해통공에도 불구하고 산업과 유통을 발전시키지 못한 채 권문외척과 결탁한 시전상인들의 독점으로 100여년 만에 조선은 을사늑약을 맺고 나라를 뺏겼다.

정부는 30년 후 의사가 15천여 명이 부족하다고 한다. 국민 80%가 지금도 의사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들은 그렇지 않단다.

싱가포르는 국가인재 육성차원에서 1984년부터 대학졸업 여성과 남성을 중매해 결혼시켰다. 우리도 선진국에 비해 두 배 이상 일만하는 우수 의료인력 양성을 위해 의사 부모를 둔 자녀만 의대진학 자격을 주어야 하나.

아니면 현대판 고려장이라도 도입해야 할까. 현재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9.2%, 의대 입학해 전문의가 되는 데 10년 전후, 숙련도까지 감안해 20년 후인 2044년에는 고령인구가 36.6%가 된다.

의대 정원 늘리지 않고 적정한 진료가 가능하려면 환자 수가 적어야 한다. 그러려면 70세 이상 아니 80세 이상 노인들의 의사 접촉을 금지하거나 연명치료는 물론 최소한의 약물 치료 이외는 절대 금해야 한다. 환자가 없으면 파업 의사들이 걱정한다는 의료비 폭증도 없을 것이니 이건 덤이다. 협상 대표조차 내놓지 않는 그들을 보는 국민이 기가 막혀서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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