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개봉한 최민식, 김고은 주연의 영화 파묘가 이번 주말 1천만 관객 동원을 앞두고 있다. 인구 5천만 명 남짓의 대한민국에서 1천만 관객을 동원한다는 것은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결과물은 아니다.

1천만 영화는 작가의 탄탄한 시나리오, 시대정신을 읽는 감독의 연출, 주연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노려볼 수 있는 기록이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조연 배우, 대역 배우, 스태프, CG, 엑스트라, 그리고 영화제작 과정과 홍보 과정에 참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의 결과물로서 1천만 관객은 달성되는 것이다. ‘파묘는 그러한 요건을 모두 갖춘 근래 보기 드문 명작이었다.

그런데 지난 한 달 동안 영화 파묘보다 더 재밌고 스릴 넘치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선거 공천극이었다. 작가와 감독, 주연 배우와 조연 배우, 스태프의 역할까지 마다하지 않은 이재명 대표의 1인 다역 헌신은 공천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이름도 없이 개딸로 불리는 수많은 엑스트라들은 출연료도 마다하고 자신들의 역할에 충실했다. 물어뜯으라면 물어뜯고, 숨통을 끊어야 할 때는 주저하지 않았다. 가끔은 무등을 태우거나 헹가래를 치기도 했다. 그들은 출연료를 받는 것보다 자신들이 더불어민주당 공천극의 주인공이라는 감독의 격려가 더 기쁘고 고무되는 일이었다.

임혁백(任爀伯) 공천관리위원장, 안규백(安圭伯) 전략공천관리위원장은 이번 공천극에서 이재명 감독을 보좌하는 조감독으로서의 악역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양백(兩伯) 전사라는 찬사까지 듣게 되었는데, 선거 결과가 좋으면 단숨에 두 단계 승진하여 공작(公爵)의 작위를 받게 될 것이다. 임공(任公), 안공(安公) 하면서 더불어민주당 당사의 벽에 걸릴 벽상공신(壁上功臣)을 꿈꿀 수 있었기에 거침이 없었을 것이다.

공천극의 주제는 죽임이었다. 죽일 후보를 솎아내는 시나리오 작업은 주도면밀하게 이루어졌다. 공천극이 관객에 의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도 죽일 후보를 정해 놓았던 시나리오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며칠 연명해 주거나, 스스로 죽음의 길로 나가게끔 아량을 베풀었다.

공천극의 결과는 친명횡재(親明橫災) 비명횡사(非明橫死)’였다. 친명을 표방하면서 이재명 대표를 지키는 호위무사를 자처한 이들은 대부분 공천장을 받았다. 정정당당한 경쟁으로 공천장을 받은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울어진 운동장의 유리한 위치에서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할 선량(選良)을 뽑는 선거판이 난데없이 호위무사 시험장으로 변했으니 우리 국민들에게는 횡재(橫災)가 아닐 수 없다.

좋은 영화, 좋은 문학 작품의 공통점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반전에 있다. 더불어민주당 공천극은 좀처럼 반전이 없었지만,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서울 강북을 선거구의 공천이 그것이었다. 어느덧 수박의 괴수로 성장한 박용진 의원을 박살내겠다며 강호의 장수들이 신검을 장착하고 나섰지만, 정봉주 후보는 목발 경품을 받는 저주에 걸렸고, 조수진 후보는 성범죄 전문 최고 변호사로 거듭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결국 반전 없이 한민수 후보가 길에서 배지를 주울 기회를 얻었다.

이제 더불어민주당 공천극은 막을 내렸다. 공천장을 받아 든 후보들도 일제히 후보 등록을 마쳤다. 학살극이 끝난 자리는 전문청소업자인 이해찬 상임공동선대위원장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다.

정치에 대한 이념이나 정책이 일치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하는 단체를 정당이라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세계 최초로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당의 길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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