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해도 가난하다.” 한국의 근로빈곤층이 처한 현실이다. 2025년 현재, 통계청과 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근로빈곤층은 약 300만 명에 이른다. 그들은 복지제도의 수혜를 받기에는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 되고, 실제 생활은 여전히 빈곤선 아래에 놓여있다. ‘일하면 산다는 믿음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사회, 그 틈을 메우지 못하는 복지 사각지대가 2025년 대한민국의 현 주소이다.

재난불평등추모행동 '폭우참사'관련 기자회견. 뉴시스
재난불평등추모행동 '폭우참사'관련 기자회견. 뉴시스

-일을 해도 가난하다.” 한국의 근로빈곤층이 처한 현실 암울
- 현정부 국정과제 '기본사회' 제시, 정책자원 우선 순위 정하는 세심함 요구

[일요서울ㅣ김재경 기자] 올해 초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강남구 가로수 길 인근의 한 빌라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몇 달째 실직 상태로 생계에 곤란을 겪던 이 남성은 지난해 긴급복지지원 제도의 도움을 받고자 했지만 예산 문제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 현행 소득보장제도에서 누락된 이 남성은 결국 고독사로 생을 마감했다.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각종 대책을 쏟아 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비극이 아니다. 한국의 복지제도가 여전히 서류 속의 국민만을 구제하고 있다는 구조적 실패를 드러낸다. 일을 하지만 가난하고, 도움을 청해도 닿지 않는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근로빈곤층이다.

근로빈곤층 세후소득이 중위소득 50%미만 전체취업자 약12%

근로빈곤층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지만 세후소득이 중위소득 50% 미만인 근로자를 말한다. 20252분기 기준 중위소득은 2인 가구 373만 원, 3인 가구 481만 원으로, 이 기준의 절반도 채 벌지 못하는 근로자가 전체 취업자의 약 12%를 차지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영세 자영업자다. 고용보험·국민연금 등 사회보험 가입률은 정규직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시만 보더라도 기준중위소득 50% 이하 121만 가구 중 72%, 88만 가구가 복지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보건복지부의 2025 복지실태조사에 따르면, 근로빈곤층의 56%복지서비스 신청을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기준소득 초과’(43%), ‘절차 복잡’(28%), ‘정보 부족’(15%) 순이었다. , 노력은 하지만 제도에 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근로빈곤층의 주요 특징은 일을 하고도 가난하다는 점이다. 한국의 저임금근로자 비율은 18.7%, OECD 평균 12.1%로 여전히 높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217만 원으로, 정규직 380만 원의 57% 수준이다. 예를 들어 평균 연령 67, 연소득 약 1100만 원으로 집세·공과금 체납, 난방 중단, 굶음 경험률은 수급자보다 더 열악한 경우이다. 청년층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청년(20~34) 중 저임금 비율은 31%, 특히 ‘N잡러로 분류되는 복수직종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월 200만 원 미만 소득에 머물러 있다. 노동의 양은 늘었지만, 삶의 질은 오히려 낮아지는 과잉노동·저보상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근로빈곤층이 복지배제 이유 부양의무자기준소득산정 방식

고독사 사망 추이. 뉴시스
고독사 사망 추이. 뉴시스

근로빈곤층이 복지에서 배제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양의무자 기준소득 산정 방식이다.기초생활보장제도는 여전히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수급 불가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근로소득이 있으면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고, 실질소득이 낮아도 기준을 초과하면 지원에서 제외된다. 예를 들어, 200만 원을 버는 1인 가구는 중위소득 50%에 해당하지만 주거비·식비를 제하면 가처분소득은 80만 원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행 제도상 근로소득이 있으므로 생계급여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중위소득 30% 이하 비수급 빈곤층의 35.4%신청기준이 너무 엄격해서’, 11.9%신청절차가 복잡해서지원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결국 근로빈곤층은 일을 유지하기 위해 복지를 포기하고, 복지를 받기 위해 일자리를 포기해야 하는 역설에 놓인다.

통계청 지역소득통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근로빈곤층 비율은 수도권 9%, 비수도권 14%로 큰 차이를 보인다. 특히 전북·경북·강원 등 지방 중소도시에서 근로빈곤층 비중이 높다. 서비스업·제조하청 중심 산업구조, 고용의 불안정, 사회서비스 접근성 부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지방의 한 자영업자는 매출이 있어도 남는 게 없다. 정부 지원은 기준이 맞지 않아 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이처럼 근로빈곤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 불균형의 결과로도 나타난다.

지역상권.내수 위축...노동의욕 저하=생산성 저하로 이어져

근로빈곤층은 단순한 경제 통계가 아니다. 이들의 소비력 감소는 지역 상권과 내수를 위축시키고, 노동 의욕 저하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가계 하위 20%의 실질소득 감소가 민간소비 성장률을 0.3%p 하락시킨다고 분석했다. 또한 복지제도의 배제 경험은 사회 신뢰도에도 영향을 준다. 현장 복지담당자들은 발굴해도 도와줄 제도가 없다.”라며 제도적 한계를 압축적으로 말한다. 제도가 존재하지만 작동하지 않는 현실, 바로 그 틈에서 사회적 신뢰는 무너진다. 한국행정연구원(KIPA) 조사에서 복지 불신을 경험한 응답자는 정부에 대한 신뢰도평균이 38점으로, 복지 수혜 경험자의 58점보다 20점 낮게 나타났다. , 근로빈곤층의 확대는 경제·사회·정치적 불신을 강화한다.

OECD 주요국들은 이미 근로빈곤층 문제를 노동복지정책의 핵심으로 다루고 있다. 미국은 근로소득세액공제(EITC) 제도로 연간 4,000만 가구를 지원하고, 영국은 유니버설크레딧(Universal Credit) 제도 도입으로 근로소득이 있어도 지원을 유지하고, 독일은 하르츠개혁(Hartz Reform)으로 저임금 근로자에 고용보험 연계로 복지를 지급하고 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일하는 사람도 복지 대상이라는 철학을 중심에 두고 있다. 한국도 2021년 이후 근로장려금(EITC) 지급 대상을 확대했으나, 지급대상자는 전체 근로빈곤층의 3분의 1 수준 약 100만 명에 불과하다. 최근 서울시가 시범사업(디딤돌 소득)으로 지원 소득기준을 기준 중위소득 85% 이하로 대폭 올려서 빈곤층뿐 아니라 저소득 불안층까지를 포함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광주형 통합돌봄은 '증빙서류'의 벽을 허물고, 도움이 필요한 시민은 복잡한 서류 없이, 전화 한 통으로 돌봄을 요청할 수 있다. 이는 행정의 중심을 '기관'에서 '사람'으로 옮겨놓은 혁신 사례 중에 하나다.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복지사각지대 줄이는 방법

지난 대선 지역기본사회활동가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 모습. 뉴시스
지난 대선 지역기본사회활동가 이재명 후보 지지선언 모습. 뉴시스

전문가들은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시한다. 소득기준을 현실화하고, 물가 상승률·주거비를 반영하여 중위소득을 조정하고, 근로장려금(EITC)도 상향 및 자동신청제를 확대하고, 신고 누락자 20% 이상에 대해 자동 지급으로 전환하며, 사회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플랫폼 노동자·특고직 포함한 포괄형 고용보험의 필요를 말한다. 또한 지방 맞춤형 복지 허브로서 비수도권 지역에는 근로복지 종합지원센터를 설치하고, 고립·심리 지원을 병행하는 포용복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조치가 병행될 때, 근로빈곤층의 탈출 경로는 단순한 현금지원이 아니라 신뢰 회복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근로빈곤층의 문제는 단지 경제적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복지제도의 설계 철학, 노동시장의 불균형, 사회적 인식이 복합적으로 얽힌 구조적 결과다. 일하는 국민이 가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복지의 최소 목표이자 사회계약의 기본 원칙이다. 강남구 50대 남성의 죽음, 한파 속에서 숨진 독거노인, 신청서 앞에서 포기하는 수많은 저소득 근로자들. 그들의 삶은 열심히 살면 된다는 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증명한다. 복지의 목적은 서류상 빈곤층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빈곤한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현 정부가 국정과제를 통해 '기본사회'의 청사진을 제시하며,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지향한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다만, 그 거대한 그림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 자원을 어디에 먼저 투입할 것인지 우선 순위를 정하는 세심함이 요구된다. 근로빈곤층 300만 명의 절망을 제도 속으로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여전히 절반의 국가에 머물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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