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전 총리 무죄 판결 거센 후폭풍

검찰이 한명숙 전 총리의 9억 원 불법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이 완패를 당하자 이례적으로 법원 판결을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검찰은 ‘한명숙 전 총리 판결에 대한 입장’이란 보도 자료를 통해 “무죄로 판결한 것 수긍할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항소심에 대한 포석을 깔았다. 한 전 총리는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이번 판결은 정치 검찰에 대한 유죄선고”라며 “정권을 교체해 검찰만은 바로 세우자”며 초강수를 뒀다. 한 전 총리가 지난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 이어 또 다시 무죄를 받으면서 ‘표적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한 검찰은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표적 판결’이라고 팽팽히 맞섰다.

한 전 총리  “검찰 개혁하는 데 중심에 서고 싶다”
검찰 “무리한 무죄 선고 과정에서 빚어진 논리비약”

서울중앙지법 형사 22부(김우진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9억4500여만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개혁에 강한의지

한 전 총리는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이번 판결은 정치검찰에 대한 유죄선고”라며 “이명박 정부와 정치 검찰이 합작해 만든 추악한 정치공작에 대한 단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전 총리는 특히 ‘검찰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 전 총리는 “검찰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한다”며 “앞으로의 정치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검찰 개혁하는 데는 중심에 서고 싶다”고 검찰 개혁을 천명했다.

그는 또 “두 번 무죄를 받으면서 국민들이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확인하게 됐다. 남아 있는 몇 개월 동안이라도 국회에서 검찰 개혁문제로 바로 잡아 줄 수 있다면 함께 싸워 달라”며 “만약 잘 안된다면 2012년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 검찰만은 바로 세우자”고 주장했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도 “검찰이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은 돈을 뇌물로 짜 맞추느라 온갖 노력을 다 했겠지만, 결국 진실이 거짓을 이겼고 이 땅의 정의가 정치검찰을 이겼다”라며 “이번 판결은 사법의 잣대가 국민을 대신해서 무리한 보복 수사로 한 전 총리에게 누명을 씌운 정치 검찰을 단죄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지난 1일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손학규 대표로 부터 무죄판결에 대한 축하를 받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이처럼 한 전 총리는 이번 무죄판결을 계기로 ‘정권교체’와 ‘검찰개혁’ 화두를 정치권에 던지며 역습에 나섰다. 이번 무죄판결로 한 전 총리를 중심으로 야권과 검찰이 전면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특히 이달 중에 2심 첫 공판이 예정된 곽영욱 사건 판결이 기로가 될 전망이다. 2심에서도 법원이 한 전 총리의 손이 들어준다면 검찰은 ‘정치 탄압’이란 거센 역풍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로 운신의 폭이 넓어진 한 전 총리가 본격적인 정치활동에 나설 것으로 전망 되면서, 향후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한 전 총리는 오는 12월 전당대회 당권도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백원우 민주당 의원도 한 전 총리가 민주당 전대 출마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한 전 총리는 “전당 대회 출마 문제를 결정한 바 없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내비쳤다. 

표적 수사 VS 표적 판결

검찰은 이번 판결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내비쳤다. 법원의 무죄판결에 검찰은 이례적으로 ‘한명숙 전 총리 판결에 대한 입장’이란 보도 자료를 내 공식적으로 반박에 나섰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한씨는 검찰 수사에선 한 전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줬다고 진술했으나 법정에서는 기존의 검찰 진술을 번복했다”며 “유일한 직접 증거는 한씨의 진술뿐인데 한씨의 검찰 진술은 합리성과 일관성이 없어 유죄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밝힌바 있다. 재판부는 또 “검사가 제출한 채권 회수 목록, 9억 원 상당의 자금 조성 및 환전내역 등은 9억 원의 자금이 조성된 부분과 관련된 증거일 뿐 이 자금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됐는지 여부를 증명하는 물증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공식 반박자료를 통해 판결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토로했다. 검찰이 법원에 대한 사실상 전면전에 나서면서 검찰과 법원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객관적으로 인정된 사실만으로 유죄 판단이 충분하다”며 법원 판결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은 한 전 대표가 발행한 1억 원짜리 수표를 한 전 총리 동생이 사용한 사실과 한 전 총리 부부 계좌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현금 2억4100만 원이 발견된 점 등을 법원이 인정하고도 무죄로 판결한 것 수긍할 수 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검찰은 보도 자료에서 ‘왜곡된 판단’ ‘의도적 판단 회피’ ‘논리적 비약 표현’ ‘임의 판단’ 등의 표현을 쓰며 판결문을 조목조목 따져 물었다.

검찰은 특히 “재판부는 한 전 총리의 동생이 한 전 총리로부터 1억 원 권 수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한 전 총리가 한씨로부터 직접 수표를 받았다고 추단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며 “이는 무리한 무죄 선고 과정에서 빚어진 논리비약”이라고 법원 판결에 반발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이번 판결을 두고 ‘한 전 총리를 봐주기 위한 표적 판결’이라는 거친 표현을 사용하는 등 비판 수위를 높였다.

검찰은 또 지난 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효채 판사 심리로 열린 한 전 대표 공판에서 한 전 총리의 무죄 판결 문제점을 수차례 제기해 재판장의 제지를 받았다. 검찰은 “한 전 총리 판결에서 한 전 총리를 ‘깨끗하고 돈을 받지 않는 성품의 소유자’라고 했는데 증거에 의한 판단인지 심각하게 의문이 든다”라고 문제제기를 했다. 이에 재판부는 “다른 사건의 판결의 당부당((當不當)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검찰이 “객관적 물증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뻔뻔한 위증을 했다”며 날선 공격을 이어가자 재판부는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은 자제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한 전 대표의 변호인은 “한 전 대표를 기소한 것 자체가 한 전 총리를 압박하기 위한 공소권 남용”이라며 비판했다.

한편 검찰이 법원의 판결을 두고 ‘표적 판결’이라는 원색적인 표현을 쓰며 비난에 나선 데에는 ‘표적 수사’ ‘정치 탄압’ 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탓으로 보인다. 검찰은 또 즉각 한 전 총리의 무죄 선고에 대해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2심 재판에서 검찰이 한 전 대표의 진술 외에 공소사실을 입증할 객관적 물증을 확보 여부와 한 전 총리의 무죄판결로 인한 후폭풍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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