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승리로 한미 FTA 효력 정지시킨다

▲ 사진 = 정대웅 기자
지난달 22일 한나라당은 의원 총회를 끝내고 국회 본회의장을 기습적으로 점거한 후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했다.
뒤늦게 본회의장에 입장한 야당의원들이 ‘반대’를 외쳤지만 그들의 고함과 함성은 그대로 묻혀버렸다. 며칠 전부터 국회의 이상 분위기를 감지한 언론들도 대략 24일을 D-DAY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갑작스런 강행처리에 허둥지둥 될 수밖에 없었고, 본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하겠다는 선언에 기자들이 방청석 문들 뚫고 들어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표결에 붙여진 한미 FTA 안건이 가결됨에 따라 일부 산업은 존폐에 위기로까지 몰리며 내일을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야5당은 곧바로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밖으로 나가 노동계, 농민, 시민사회와 한목소리로 한미 FTA 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한미 FTA 국회비준안에 대해 서명함으로써 야당과 시민사회가 바라는 한미 FTA 폐기는 불가능해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자유무역의 파도를 그대로 맞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야권과 시민사회는 협정문 24.5조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지난달 22일 국회 본회의장은 고함과 아우성으로 가득 찼다.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마친 한나라당 의원들은 곧바로 본회의장으로 이동해 한미 FTA 비준안을 강행처리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이날 FTA 비준안 처리는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극히 일부 지도부만이 알고 있는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원들은 의원총회 전까지 어떤 내용도 듣지 못한 상태였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본회의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면서 야당 의원들도 바빠졌다. 국회에 있던 야당 의원들은 곧바로 본회의장에 들어가 단상 앞을 점거하고 혹시나 모를 직권상정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정의화 국회부의장은 야당 의원들의 항의 속에 한미 FTA 비준안과 함께 이행을 위한 14개의 법안을 30분 만에 일괄 처리했다. 그 사이 김선동 의원이 최루가스를 투척하는 소동이 있었지만 한나라당의 강행처리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야당은 비준안 통과가 ‘날치기’라며 주장하면서 본회의장에 남아 소리를 질렀지만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노동계·농민, 벼랑 끝 반발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자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한미 FTA 비준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의 행위를 ‘매국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을 선포했다. 이와 함께 내년에 치러질 총선에서 낙선운동에 명운을 걸겠다고 다짐했다.

 

노동계의 양대 노총도 한미 FTA 비준안을 통과시킨 한나라당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민주노총은 비준안이 통과된 11월 22일을 ‘제2의 을사늑약일’로 규정하고, 한나라당 해체와 이명박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1년 이후 10년 만에 ‘정권퇴진’을 전면에 내세우는 투쟁을 벌일 것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민주노총의 한 간부는 “한미 FTA 반대 투쟁은 계속될 것이며, 그 수위를 점점 높여 폐기 투쟁까지 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또한 비준안 통과를 ‘제2의 을사늑약’으로 규정하고 이 땅의 모든 양심 세력과 함께 한나라당을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야권, 장외투쟁으로 분위기 띄우다


한미 FTA 비준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야권은 곧바로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농민․노동계․시민사회와 함께 한미 FTA 반대 투쟁을 벌였다. 민주당은 곧바로 46명의 투쟁위원이 참여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민주당은 정동영 최고위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날치기FTA무효화투쟁위원회’, 이른바 24.5위원회를 결성하고 투쟁위원들이 조현오 경찰청장을 항의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의원들은 경찰이 집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물대포를 쏜 것에 대해 강력히 항의하고 규탄했다.

 

정동영 의원은 “시민들에게도 질서 있는 행동을 부탁하겠지만, 명백한 과잉 처분이자 생명의 위협을 주는 동절기 물대포 사용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집회 후 촛불시민의 평화적 해산을 위해 일부 차로를 개방해서 인도하고 안내하라”고 요청했다.

 

이는 시민들이 한미 FTA 반대 집회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야권이 결합해 함께하는 장을 마련하기 위한 민주당의 조치였다.

 

이와 함께 야5당은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형법 제122조 위반으로 지난달 28일 고소했다. 야5당은 고소에 앞서 오전 11시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소의 취지를 밝혔다.

 

이들은 “미국은 한미 FTA 그 자체를 국내 적용하지 않고 이행법을 통해 적용했는데, 미국의 이행법은 협정과 미국 국내법이 충돌하는 경우 협정의 효력을 부정하고, 그 누구도 협정을 근거로는 미국 법원에서 권리주장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며 “미국이 협정이행에 필요한 모든 법 개정을 완료하였는지는 우리 국민의 권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데 지난 11월 12일 미의회를 통과하고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이행법에는 필요한 법률개정이 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2007년 8월부터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 본부장은 미국의 현행법 개정 필요성이 제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이에 대한 정보 확인 노력이나 공식적 연구용역추진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결국 직무를 의식적으로 방임 내지 포기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야5당은 한미 FTA의 문제점에 대한 여론을 확산시키며 장외투쟁의 분위기를 조금씩 끌어올리고 있다.


선거로 한미 FTA 폐기 노려


야5당은 한미 FTA 협정문 24.5조에 주목하고 있다.

 

협정문 24.5조에는 “이 협정은 어느 한쪽 당사국이 다른 쪽 당사국에 이 협정의 종료를 희망함을 서면으로 통보한 180일 후에 종료된다”고 표기돼 있다.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양쪽의 대통령 중 한 명이 서면으로 협정 종료를 알리면 한미 FTA는 180일 후에 자동으로 효력이 상실된다. 서면을 받은 어느 나라 대통령도 이를 거부할 수 없다.

 

결국 야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년에 치러질 총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대통령을 압박하든가 대선에서 승리해 정권교체를 이룬 후 서면을 보내면 된다.

 

야권이 내년에 치러질 선거에 올인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현재 야권은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의 진보소통합과 민주당·혁신과통합의 중통합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보니 진전이 더딘 편이다.

 

하지만 야권은 공히 한미 FTA의 폐기를 선거공약으로 내걸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통합은 아니더라도 연대에는 충분한 힘을 얻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은 24.5위원회를 중심으로 한미 FTA의 폐기를 선언하고 재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며 장외투쟁에도 야권의 중심에 서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야권의 복안을 감지한 누리꾼들도 “정권이 바뀌면 FTA를 재협상 내지는 폐기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게 그나마 얼마나 다행인지”, “대선 때 FTA 폐기 공약 들고 나오는 사람을 뽑겠다”, “걱정 중 다행이기는 하지만 180일이라는 기간이 거슬리네요” 등 조금씩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야권이 희망하는 대로 선거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룬다면 한미 FTA 폐기를 선언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입지가 좁아짐과 동시에 신뢰가 무너질 수 있어 야권으로서도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야권의 전략이지만 많은 당장 한미 FTA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즉각적인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어 야권은 지금보다 훨씬 더 바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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