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이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를 폭로했다. “현금 300만 원이 든 돈봉투를 전달한 후보가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에게 돈 봉투를 건넨 시기는 2008년 전당대회 때였고 박희태 현 국회의장이라고 진술했다.

박희태 의장 측에서는 “전당대회 돈 봉투 같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잡아뗐다. 그러나 2008년 7월 한나라당 전대 때 특정 후보를 위해 활동했던 한 인사는 “돈 봉투는 오랜 관행”이라고 밝혔다. 당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전대 때 10억 원은 써야 된다는 말도 있다.

‘전당대회 돈 봉투’가 폭로되자 호재를 만난 민주통합당(민주당)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민주당 오종식 대변인은 한나라당을 “만사 돈통 정당”이라고 규정했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차떼기당의 본색을 버리지 못하고 뼛속까지 썩은 한나라당”이라고 공격했다. 민주당 측은 자신들에게는 아예 “그런 일도 없었다”며 깨끗한 척 했다.

하지만 며칠 못 가 민주당도 “뼛속까지 썩은 당”이란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1월 15일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대표경선에 출마한 사람이 지난 달 50만~500만 원 돈 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이 한 인터넷매체에 의해 제기됐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당 측에서는 근거 없다고 주장하지만 두고 볼 일이다.

유시민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 시절 “금품살포를 목격한 바도 경험한 바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당의 지도부가 되려고 하면 권력이 따라오니 부정한 수단을 쓰려는 유혹을 느끼게 된다”며 “대의원을 돈으로 지명했던 것이 반세기 동안의 일”이라고 주장했다.

유 공동대표의 지적대로 권력이 따르는 당 대표 선거에 돈 봉투가 오가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반세기 동안의 일” 임이 틀림없다. 다만 돈의 액수가 얼마나 많고 적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불법정치자금과 관련해 내뱉었던 막말들이 떠오른다. 그는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대선 때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 불법자금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할 용의가 있다”고 당당히 공언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자신의 불법자금이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훨씬 넘은 사실이 밝혀졌는데도 그는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지 않았다. 뻔뻔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는 또 “한 쪽(한나라당)은 강탈하다시피 한 것이고, 한 쪽(자신)은 불가피하게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우리는 티코 승용차를 타고 어렵게 깡통으로 기름을 넣으며 대선가도를 달렸지만, (한나라당은) 리무진을 타고 유조차로 기름을 넣으며 달린 쪽이 훨씬 많이 썼다”고 주장했다. 강도짓을 한 범인이 다른 강도는 100억 원을 강탈한데 반해 자신은 10억 원만 뺏었는데 그게 죄가 되느냐고 반항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노 전 대통령의 티코와 리무진 비교 항변은 대통령이란 사람이 불법정치자금과 관련해 무감각 상태에 빠져있었음을 반영한다. 정치자금 불법 수수는 관행이고 보다 적게 쥐어짜낸 측은 죄가 되지 않는다는 망언이었다. 그런 구겨진 탈법의식이 오늘 날 까지 정치권에 스며들어 돈 봉투를 뿌리는 관행으로 남아있다.

물 속에서 사는 물고기가 물에 젖어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듯이 불법정치자금의 반세기 관행에 잠겨있는 정치권이 불법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차제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검은 돈 거래 의혹을 철저히 밝혀내 못된 관행을 뿌리 뽑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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