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파 판사들 법원에 반기 드나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가카세키 짬뽕’, ‘꼼수면’ 등 이명박 대통령을 조롱하는 듯한 글을 게재한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가 서면경고를 받은데 이어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복직소송 합의내용 공개에 따라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또한 SNS를 통해 ‘가카의 빅엿’이라는 표현을 게재해 논란을 일으켰던 서울북부지법의 서기호 판사는 결국 재임용에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을 두고 일부 소장 판사들이 판사회의를 개최하는 등 집단행동을 벌이고 있다. 마치 지난 촛불시위 때 일선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재판과정에 개입하면서 파문을 일으켰던 신영철 대법관 문제로 판사회의를 개최했을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일선 법원에서는 판사회의 개최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으며 그 파장이 사법파동으로까지 번지지 않을까 하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정렬, 서기호 판사로 인해 발생한 판사들의 집당행동이 과연 어떤 결과를 몰고올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가카세끼 짬뽕’, ‘꼼수면’ 등의 단어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 판사가 게재한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며 순식간에 사회적 이슈로 부각됐다. 법원의 판사 그것도 부장판사가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을 공개된 공간에 올렸으니 법원은 발칵 뒤집혔다.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는 판사이기 때문에 대통령을 비하하는 발언은 곧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다고 볼 수 있어 논란이 일 수밖에 없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 판사는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됐던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교수지위확인소송의 합의 내용을 코트넷(법원 내부망)에 공개해 결국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법원조직 제65조 ‘심판의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어겼기 때문이다.

결국 이 판사는 6개월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10년짜리 비정규직’ 서기호 판사

서울북부지방법원의 서기호 판사는 자신의 SNS 계정에 ‘가카의 빅엿’이라는 대통령 비하발언을 게재하며 논란을 빚었다.

재임용 심사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이었고 결국 서 판사는 재임용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받았다.

법원 측은 서 판사의 근무 성적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재임용 심사에서 탈락했다고 설명했지만 <손바닥뉴스>의 이상호 기자는 자신의 SNS에 서 판사의 근무성적표를 공개하며 “화해율, 상소율, 종국률(당사자들이 판결에 승보해 사건이 종결되는 것) 모두 평균보다 높다”고 설명했다.

이상호 기자의 말처럼 서 판사의 성적은 결코 재임용에 탈락할 정도는 아니었고 오히려 전국 평균을 대부분 상회했다.

특히 서 판사는 신영철 대법관으로 인해 불거졌던 집단행동 당시 서울중앙지법 평판사회 회장으로 신 대법관의 퇴진을 요구했던 인물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며 오히려 피해자가 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의 중심에 섰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서 판사의 재임용 탈락은 결국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법원 내부의 시각이 반영된 것이 아니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성적이 아닌 정치적 행동으로 인한 보복이라는 주장인 것이다.

서 판사는 이에 대해 “헌법상 신분이 보장된 판사에서, 10년 계약직 직원으로 전락한 이 순간,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픔을 절실하게 공감하게 됩니다”란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렸다.

그러나 서 판사는 ‘가카의 빅엿’ 표현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연이은 판사회의 이어져

서 판사가 재임용에 탈락하자 법조계 내부는 크게 술렁였다. 재임용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진 것이 아닌 정치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술렁임은 결국 판사회의로 이어져 17일 서울중앙지법과 남부, 서부지법에서는 판사회의가 열렸다. 또한 수원지법은 21일 판사회의를 열 예정이며, 서울북부지법은 판사회의 개최에 대해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판사회의가 열린 것은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논란으로 지난 2009년 이후 3년 만이다.

이번 판사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은 법관 연임 심사제도를 비롯해 근무평정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논의했다.

법관들은 10년 단위로 행해지는 법관 연임 심사제도가 갖는 문제점과 이에 대한 해결책에 대해 열띤 토론을 진행했다. 특히 이번 서 판사의 경우처럼 근무성적만이 아닌 정치적 관점에 의해 재임용에 탈락하는 것은 문제점이 많다는 의견에는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판사들의 집단 움직임이 이어지자 법원 내부에서는 이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자칫 법원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커다란 태풍의 눈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서기호 판사(좌)와 이정렬 판사(우)

사법파동, 언제 무슨 일로

법원내부에서는 이번 판사회의가 5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안고 있다.

사법파동은 지금까지 총 네 차례 있었다.

첫 번째 사법파동은 1971년 판사와 서기관이 증인검증을 위해 제주도로 출장을 갔다가 현지 변호사들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혐의에 대해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발생했다. 이에 판사들은 이전 국가배상법에 대한 위헌판결을 내린 사법부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하고는 사법권독립을 외치며 150여 명의 법관이 사표를 제출하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민복기 당시 대법원장은 이들의 사표를 반려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2차 파동은 노태우 전 대통령 재임시절인 1988년 전 정권 인물을 사법부 수뇌부에 재임명하면서 불거졌다. 이에 소장판사 335명은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 때 김용철 대법원장이 물러났고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는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서 대법원장에 오르지 못했다.

3차 사법파동은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인 1993년 발생했다. 개혁성향인 40명의 소장판사들이 사법부의 개혁을 촉구하는 건의서를 대법원장에게 전달했다. 여기에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낸 강금실 판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결국 판사들의 집단행동에 김덕주 대법원장은 결국 사퇴했다.

2003년에 발생한 4차 사법파동은 대법관 임명 방식을 놓고 발생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법관 임명은 기수, 성별 등을 고려해 임명제청방식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를 두고 판사 160여 명은 이런 방식에 문제가 있음을 꼬집으며 건의서를 작성해 법원에 전달했다.

하지만 이런 판사들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김용담 대법관은 임명되었다.

그러나 판사들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전효숙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여성 최초로 헌법재판관이 되었으며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가 여성 최초의 대법관으로 임명되는 등 그 전과는 다른 양상을 만들어냈다.

사법파동까지는 아니지만 가장 최근에 발생한 판사들의 집단행동은 3년 전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일어난 촛불집회에 참석한 이들을 두고 벌어진 재판으로 인해 발생했다.

당시 신영철 대법관은 재판과 관련해 일선 판사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결국 조사를 벌인 법원은 신 대법관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했고 대법원장은 신 대법관에게 엄중 경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 때 전국의 판사들은 판사회의를 소집해 재판에 개입한 신 대법관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뜻은 이뤄지지 않았다.

5차 사법파동으로 이어지나

법원이 판사회의를 주목하는 것도 바로 앞선 네 차례의 사법파동과 집단행동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서 판사의 재임용 심사 탈락은 판사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된 것이어서 이들의 목소리는 격앙될 가망성도 충분하다. 누구든 자신의 소신을 얘기했다가 정권의 눈 밖에 나면 언제든지 자리에서 물러나야 된다는 위기감이 판사들에게 직접적인 위기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 판사회의에 참석하는 판사들은 대부분이 단독재판을 맡고 있는 단독판사들이어서 개별성향이 뚜렷하고 아무래도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소장파여서 판사회의 결과가 어떻게 날지는 미리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일부에서는 이번 판사회의가 보수적인 성향의 양승태 대법관과 개혁적인 성향을 가진 소장 판사들 사이의 갈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를 인지한 듯 17일 진행된 법원장 취임식에서 신임 법원장들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다짐을 하며 판사회의가 확산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밝히며 수습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판사회의가 사법파동까지 이어진다면 여권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고 반대로 사법개혁을 주장해 온 야권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관망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야는 이번 판사회의의 결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이번 판사회의가 판사란 신분으로 인해 그동안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내놓고 밝히지 못했던 판사들도 개인적·정치적 의견을 공개할 수 있는 일대 변혁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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