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에 놀아난 증시… ‘北루머’에 증시 출렁

[일요서울|최은서 기자] 지난 1월 6일 증시를 요동치게 했던 ‘북한 영변 경수로 대폭발’ 루머는 주가조작으로 한탕을 노린 작전세력의 ‘작품’으로 드러났다.

일당의 작전은 희대의 사기극을 다룬 영화 ‘범죄의 재구성’을 방불케 할 만큼 신속하고 치밀했다. 작전자금은 S사 모 과장이 자회사 자금을 횡령해 마련했고 작전계획은 주가 조작 전과가 있던 대학생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증권가 메신저로 악재성 루머를 퍼트린 지 16분 만에 각종 주가 지수는 급락해 장중 최저가를 기록했다. 파생상품을 이용해 시세차익을 노렸던 일당은 계획대로 차익을 실현할 수 있었다. 이들은 특히 증권가 메신저를 통해 퍼지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증시에 반영돼 주가를 움직이게 하는 특성을 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생상품 이용한 시세차익 노리고 메신저로 루머 유포
고급 룸살롱서 치밀하게 작전 짰지만 수익은 ‘글쎄’

지난해 12월 20일 밤, 강남의 한 고급 룸살롱에 5명의 남성이 은밀히 모였다. 이곳은 전·현직 국회의원 보좌관들이 10·26 재보궐 선거 당일 선관위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을 모의했던 곳이기도 했다.

회사원이던 이모(29)씨는 메신저로 알고 지내던 S사 과장 송모(35)씨를 작전 자금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작전세력의 ‘브레인’으로는 김모(19·대학생)씨를 섭외했다. 또 우모(27)씨 등 두 명은 유언비어를 제작하고 유포하는 ‘선수’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2중 수익구조 구축한 치밀함

5명 모두 모인 자리에서 김씨가 작전 계획을 브리핑했다. 김씨는 고교 시절부터 ‘고고생 주식 천재’로 유명세를 탄 인물로 해박한 증시 지식을 갖춘 인물로 일당의 ‘브레인’이었다. 그는 고3이던 2010년 작전 세력의 주가조작에 가담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경력도 있었다.

김씨의 계획은 이랬다. 루머 유포해 주가가 떨어지면 주가 하락을 노린 투자로 수익을 얻은 뒤 주가 반등 직전 반대 방향의 재투자로 2중 수익을 취하는 것이었다.

김씨는 루머가 유포되면 주가가 일시적으로 하락하고 곧 루머가 허위로 밝혀지면 주가가 반등할 것까지 예상한 것이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증권가에서 주로 이용하는 메신저인 ‘미스리 메신저’를 악용하기로 했다. 이 메신저는 실명인증을 하지 않는 메신저로 이름·직업·부서를 조회할 수 있는 기능이 있었다.

일당은 이름은 ‘애널리스트’, 직업은 ‘증권’, 부서는 ‘투자분석팀’으로 조회를 해 증권사 관계자 및 애널리스트 리스트를 확보했다. 이들은 이 중 정보성 메시지를 받으면 재전송할 가능성이 높고 주식시장에 영향력이 높은 증권 관계자 203명을 추렸다.

계획이 세워지자 일당은 PC방에서 작전을 실행하기로 했다. 지난 1월 6일 오후 1시 56분께 부산 해운대 한 PC방에서 김씨 등 3명이 작전을 개시했다.

이들은 미리 확보한 증권사 관계자 및 애널리스트 203명에게 ‘미스리 메신저’ 쪽지로 ‘북한 영변 경수로 대폭발, 고농도 방사능 유출, 북서 계절풍 타고 고농도 방사능 빠르게 서울로 유입 중’이라는 내용을 담은 쪽지를 유포했다.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구글 번역기’까지 사용해 일본어로 바꿔 ‘일본 교도 통신 보도’라는 기사와 지난 3월 일본 원전폭발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까지 첨부해 유포했다.

반응은 즉각 왔다. 이들의 쪽지를 받은 증권사 직원들은 메신저에 등록된 직원들에게 즉각 전달했던 것. 이들이 루머를 유포한 지 불과 16분 만에 코스피, 코스닥, 코스피200 등 각종 주가 지수가 급락해 장중 최저가를 기록했다.

이날 하락세를 이어가던 증시는 이들의 루머로 직격탄을 맞은 것. 실제로 범행 직전 대비 코스피는 9.07p, 코스닥은 3.97p, 코스피200은 1.30p가 각각 하락했다.

이 틈을 타 송씨는 미리 구매해뒀던 ‘코스피200풋ELW(주식워런트증권)’ 종목을 팔아 1500만 원의 차익을 얻었다. 코스피200풋ELW는 지수가 하락할 경우 차익을 얻는 구조다. 송씨는 김씨 등 작전세력들과 수시로 통화하며 사고팔 시점을 논의했다.

삽시간에 퍼졌던 북핵 경수로 폭팔 루머는 거짓임이 밝혀졌다. 금융당국이 해당 소문은 허위사실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 역시 일당이 예상했던 바였다. 요동치던 주식시장이 안정을 되찾자 송씨는 지수가 급락할 때 매수했던 코스피콜ELW 종목을 팔아치워 1400만 원의 수익을 얻었다. 콜 옵션은 주가지수가 오를 때 차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다.

다시 나선 주가조작

S사 과장으로 자회사에 재무팀장으로 파견된 송씨는 20억 원의 회사자금을 빼돌려 이 중 1억3000만 원을 작전자금으로 투입했다.

송씨는 회사에서 자금을 총괄 관리하고 통장 입출금도 직접 관리해 송씨의 횡령 사실을 회사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송씨는 이번 작전으로 올린 수익 2900만 원 중 1400여만 원을 김씨 등 3명에게 나눠줬다.

범행이 순조롭게 성공하자 일당은 지난 2월 초 또 다른 작전 구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송씨가 경찰의 수사착수에 겁을 먹고 작전 참여를 거부했다. 이에 이씨는 투자자를 물색하다 선물계좌대여업을 하는 표모(48)씨를 작전 자금 투자자로 끌어왔다.

이들은 이번에는 한 종목 주식을 대량 매입한 뒤 허위 정보 유포로 주가를 올려 처분하는 집중 공략 수법을 쓰기로 모의했다.

김씨 등 2명은 제약회사 직원을 사칭하고 ‘언론보도 대행사’를 이용해 특정 제약사가 백신을 개발했다는 내용의 호재성 보도자료를 유포했다. 이들은 신빙성을 얻기 위해 회의록과 임상결과보고서 등을 작성해 홍보대행사 측에 보냈다.

이들의 홍보자료는 사실 여부 확인 없이 언론사에 제공돼 실제로 이를 믿은 일부 언론은 기사화하기도 했다. 이들의 유언비어 유포로 주당 6800원 하던 주식은 7500원까지 상승했다.

7억4500만 원을 투자한 일당은 4일 만에 32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 중 표씨가 1700만 원을 그리고 김씨 등이 1500만 원을 자신의 몫으로 가져갔다.

이처럼 이들의 두 차례에 걸친 작전은 수억 원이 투입됐음에도 수익은 성공적이지 않았다. 결국 이들의 주가조작은 북한 경수로 폭발 루머를 수사하던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관계자는 “증권가 메신저가 작전세력에 의해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며 “또 작전세력에 의한 허위 정보가 사실인양 기사화 돼 범죄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등 취약점이 노출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송씨는 1년 내내 기업 자금을 횡령했다. 현재 드러난 것만 20억 원으로 더 늘어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이 중 1억3000만 원을 작전 자금으로 투입하고 나머지자금은 작전주가 아닌 주식에 투자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전했다.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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