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권도전을 위한 독자적인 수순 밟기에 나설 것인가. 2007 대선을 앞두고 당내 2강구도(이명박-박근혜)를 형성하고 있는 한나라당의 대권 전쟁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태에서, 당권과는 거리가 먼 이 시장의 행보가 정가의 주목을 끌고 있다. 대선후보 ‘경선의 틀’이라 할 수 있는 혁신안을 두고 벌인 이 시장과 박근혜 대표와의 신경전에서도 이 시장의 독자신당 플랜이 감지된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 시장의 대권 마이웨이의 분수령은 대선의 전초전 성격을 띤 2006 지방선거 이후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제기된 상태다. 혁신안 추인 과정에서 친박근혜 세력과 친이명박 세력이 업치락뒤치락하며 예비전을 펼쳤으나 기선제압에 성공, 내년 지방선거까지 임기가 보장된 박 대표의 당권 장악이 본격화하며 한나라당 대권 레이스가 박 대표에게 유리한 구도로 진행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난 한 주 동안 한나라당에선 친이명박 세력과 친박근혜 세력의 한 판 대결이 벌어졌다. 2강구도를 형성하며 대선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명박-박근혜 두 주자의 대권 레이스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위한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최고조에 달한 것이다.

예상 뒤엎은 박근혜의 후퇴

따지고 보면 박 대표와 이 시장의 대권 신경전은 수 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월 혁신위원회를 구성한 시기부터 이들의 힘겨루기는 하한정국을 지나 지금에까지 이른 것이다. 2007 대선, 당내 최종 후보를 선출하는 데 적용될 혁신안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이냐가 문제인 것이다.그러나 ‘공정한’ 게임의 룰이라던 혁신안 원안은 시간이 지나면서 누더기가 돼가고 있었다. 당권-대권분리 시점은 친박근혜 세력의 요구대로 내년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졌으며, 박 대표를 비롯한 현지도부의 임기도 그때까지 보장됐다.

이 시장과 박 대표의 1라운드는 박 대표의 승리였다. 다소 시간차가 있었지만 2라운드는 지난 한 주 동안 진행됐다. 10월26일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4대0 완승을 이끈 박 대표의 호기를 등에 업고 친박세력의 의지가 또 다시 적중되는 듯 했다. 지도부는 혁신안 원안을 수정, 운영위원회를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최대 변수는 대통령후보선출선거인단 구성비. 당권을 장악한 박 대표에게 유리한 당원 대 비당원의 구성비가 8:2로 매듭지어졌다. 대통령후보선출선거인단 구성비가 2006년 지방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후보 선출에 ‘박심(朴心)’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등장했다.

친이명박파를 중심으로 한 반박세력에선 당권을 장악한 지도부의 의중이 반영돼 혁신안이 수정됐다며 반발, ‘무늬만 국민경선’이라고 비난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운영위를 통과한 혁신안의 궤도 이탈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혁신안 최종 추인과정에서 반박세력은 뒷심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14일 의원총회에서 박 대표 및 지도부는 혁신안 원안을 받아들이는 데 의견을 통일했다. 대통령후보선출선거인단의 당원 대 비당원 구성비를 5:5로 한다는 당헌 개정안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이어 17일 당원대표자대회에서 혁신안이 최종 추인됐다.

“한나라당 답지 못하다”

10일 혁신안이 당 운영위를 수정 통과한 직후부터 14일 의원총회에서 이 결정이 번복되기까지 반박세력들은 ‘반대’ 여론을 결집시켰으며, 이 시장은 물론 또 다른 잠룡인 손학규 경기도지사의 공개적인 당 지도부 비판이라는 ‘지원 사격’까지 받았다. ‘압박’을 가시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예견된 결과가 아니었기에 한나라당이 술렁거리고 있음은 당연하다. 당 관계자들은 박 대표 및 지도부가 한 걸음 물러났다는 해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사건이라는 결론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한나라당 창당 이후 가장 한나라당답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고 촌평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한나라당의 운영 시스템에 비춰 변화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운영위에서 결정된 안이 반발에 부딪혀 ‘번복’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박 대표 및 당 지도부가 반박세력의 반발로 인해 일보 후퇴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데 정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실 지난 10일 운영위를 통과한 혁신안 수정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한 이들은 홍준표 의원을 비롯해 원희룡 의원 등 소장·개혁파였으나, 겉으로 드러날 만큼 수적 강세를 보였던 것은 아니다. 또 지난 두 번의 대선 전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각 계파들의 기세 싸움에 비춰, 당헌 개정이라는 중차대한 현안을 코앞에 두고 대권 경쟁자측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등의 ‘배려’는 현실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박 대표가 이 시장과의 3라운드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

이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박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강력한 대선 주자로서 이 시장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것에 이견을 달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여론조사에서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 시장과의 사전 게임이니만큼 ‘과다 출혈’을 피하고자 했다는 결론이다. 사실상 이 시장은 어떠한 경우라도 대망론을 접지 않을 것이란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올해 64세로 이 시장은 차차기를 기다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게다가 현직 서울시장으로서의 공적은 대선에서 시너지 효과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바로 지금이 적기인 것이다.

지방선거 경선도 후보단일화 예상

이 시장의 측근으로 통하는 한나라당 모 중진의원 역시 “현 정국 상황은 대권 주자인 이 시장에게 가장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 시장의 입장에서 부족한 게 있다면 중앙당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내년 지방선거 이후 경선구도를 예상,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면 독자노선을 걷는다는 복안도 갖고 있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게다가 대국민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에 밀리지 않는 이 시장은 최근 들어 부쩍 대권 도전을 입에 올리고 있다. 이 시장 주변에서는 한나라당의 또 다른 우군이라 할 수 있는 ‘뉴라이트’의 움직임도 자주 거론되곤 한다. 아직은 물밑 탐색전 시기이지만 정치적 선택의 순간에 반드시 이 시장과 연대를 모색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기대다.

이 시장의 강력한 대권도전 의지엔 최근 영남권에 기반을 두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등장한 터다. 결국, 박 대표의 일보 후퇴에는 이 시장의 후보단일화 불가, 경선 참여 등 강수를 띄우며, ‘올인’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 시장과 박 대표의 3라운드는 언제쯤 벌어질까.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 박 대표와 이 시장의 공식 대리전은 내년 지방선거 후보 경선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히 강력한 대권 주자로 부상한 이 시장의 뒤를 이을 차기 서울시장 경선은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사실상 출마를 공식 선언한 후보들 사이에서도 친이명박 인사와 친박근혜 인사로 분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홍준표 이재오 의원과 맹형규 박진 의원 등이 그들이다. 아직은 물밑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박빙의 승부가 예상될 경우, 이들은 ‘후보단일화’ 등을 통해 이 시장 또는 박 대표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정가의 분석이다. 앞서 중진의원의 말대로라면, 이 시장은 지방선거를 치른 후 판세를 보아 여의치 않을 경우 우군세력을 결집한 후 ‘대권 마이웨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 박근혜의 이유 있는 충청행

박근혜 대표의 충청공략이 가시권에 접어들었다. 지난 10일 대전 방문에 이어 18일 충북 보은 지역을 방문한 것이다. 이에 정가에선 대선의 캐스팅보트라 할 수 있는 충청권 ‘기반 다지기’에 본격 나선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박 대표의 충청권 공략은 내년 1월 창당이 예정된 국민중심당(가칭)의 움직임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친여 성향이 강했던 이 지역 민심의 향배가 국민중심당 창당과 맞물려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는 것 역시 한나라당 공략의 적기로 판단한 듯 하다.

실제로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예비 후보들 중에는 복잡한 충청민심의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여권과 국민중심당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수다. 게다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40%를 상회하고 있으며, 충북지역의 경우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당세가 확장되고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지지기반을 넓히겠다는 박 대표의 의지도 엿보인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박 대표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의 고향이 충북 옥천이라는 데 주목하고 있다. 박 대표의 잦은 충청행은 긴 대권 레이스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