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드는 해운대 ‘저팬 타운’

▲ <뉴시스>

일본 정부가 동부지역에 이어 서부지역에 규모 9이상의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일본 열도가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대지진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해외 장기체류를 희망하는 일본인도 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기후조건이 비슷한 부산이 대안으로 떠올라 부산으로 터전을 옮기는 일본인이 늘고 있다. 최근 일본 해외장기체류자 지원기관인 ‘롱스테이재단’도 부산 해운대에 둥지를 틀었다. 이를 계기로 부산에 ‘저팬 타운’이 형성될 가능성이 고개를 들고 있다.

지리적 접근성·비슷한 기후조건·저렴한 물가에 일본인 ‘호시탐탐’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태 이후 충격과 불안을 느낀 일본인들의 해외 장기체류가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롱스테이 한국 살롱’이 부산에 첫 설립됐다. 롱스테이재단은 해외에 장기 체류하는 일본인들의 현지 적응을 돕기 위해 1992년에 설립된 공익법인으로 유료회원만 2만 명에 이른다. 이 재단은 현재 미국 로스앤젤레스, 태국 방콕 등 세계 14개국 31개 도시에 살롱을 두고 있다.

대지진 이후 급증하고 있는 일본인들의 부산 거주가 롱스테이 한국 살롱 설립으로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부산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한편 해운대에 ‘저팬 타운’이 조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새로운 거주지로 부산 주목

롱스테이재단 한국 살롱을 유치하는 데는 한국관광공사와 의료관광 사회적 기업인 코비즈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롱스테이 한국 살롱’이 수도인 서울이 아닌 부산에 설립되고 부산 해운대로 일본인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까닭은 뭘까.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서울 못지않은 대도시이면서 생활환경이 쾌적하고 싼 물가, 좋은 접근성 때문에 한국에서는 부산이 가장 경쟁력 있다고 본 것”이라며 “향후 발전 가능성이 커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의 분양대행사인 ‘더감’ 관계자는 “일본인들이 자연재앙을 겪으면서 해외체류지 선택 시 자연환경 부분을 고려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며 “일본인들은 일본과 기후가 비슷하면서도 지진 위험이 없고 주요 인프라가 다 갖춰진 해운대 지역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부산은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지진이 없는데다 비슷한 기후, 저렴한 물가 때문에 일본인들의 새로운 주거지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장기체류지로 동남아를 선호하던 일본인들이 기후 차이로 인한 불편함을 느끼고 부산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다.

경제 파급 효과 상당할 것

세계 곳곳에 세워진 롱스테이 재단의 살롱을 통해 일본인 거주지역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센텀시티나 마린시티 등을 중심으로 해운대에 ‘저팬 타운’이 조성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해운대 중에서도 고급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밀집한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와 문화, 상업 시설, 대규모 쇼핑몰이 집중된 센텀시티에 일본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본인들의 부산 거주도 꾸준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2005년 103명이던 해운대 거주 일본인은 올해 207명으로 늘어났다. 부산 소재 부동산을 매입하는 일본인들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인의 부산 지역 부동산 신규 취득건수는 지난해 1분기 3건에 불과했지만 대지진 여파로 연말까지 22건으로 급증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일본인들은 해외 체류시 커뮤니티를 형성해 동일한 지역에 사는 특성이 있다”며 “저팬 타운이 형성되기보다는 일본인들이 한국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부동산 거래 실적 등 구체적 결과가 나오지 않아 일본인들이 부산의 어느 지역에 모인다고 단정짓기 어렵다”면서도 “일본인들이 해운대를 선호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더감 관계자는 “해운대는 건물 간판들도 일본 간판을 거의 갖춰놓았을 정도로 일본인이 체류하기 좋은 조건은 가지고 있다”며 “일본인들이 다른 지역보다도 해운대를 가장 선호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일본 대지진 이후 소프트뱅크와 같은 정보기술 첨단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한국으로 옮기는 등 투자를 늘리고 있다”며 “대지진이라는 재앙 때문에 일본인뿐 아니라 기업 이전도 가속화될 것이고 이 추세는 꺾일 수 없는 추세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코비즈 관계자도 “저팬 타운이 현재 형성되지는 않았지만 저팬 타운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말했다.

또 롱스테이 재단을 통해 해외에 장기체류하는 일본인 관광객도 한해 평균 150만 명에 달해 부산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관광공사와 부산시 관계자들은 부산지역의 부동산과 경제적 파급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보부족으로 한국 내 부동산 매입이나 체류를 망설이는 일본인이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롱스테이 한국 살롱은 일본인들에 한국 생활여건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는 등 체계적 이주지원으로 한국 체류에 순풍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산의 관광, 의료, 부동산 등 각 분야에 걸친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관계자는 “국제 교류가 활성화 될 것”이라며 “일본인들이 부산에 장기체류를 하게 되면 일본이 아닌 부산지역에서 소비활동을 하게 돼 지역에 미치는 경제 파급효과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저팬 타운’ 국민 반감 살 수도

한편 일각에서는 일본인들의 해운대 장기체류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잡고 저팬 타운이 형성되면 이에 따른 반감도 상당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례로 전북 장수군과 산청군에 ‘일본 마을’이 들어설 가능성이 언급되자 논란이 일었다. 일본인 이주반대와 방사능 오염을 우려하는 글 등 부정적 여론이 군청 홈페이지를 비롯해 인터넷을 달궜다. 이에 해당 군청은 ‘검토한 적 없다’며 발빠르게 공식 해명에 나섰다.

최근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도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 6일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외교청서를 공식 발표해 한일 갈등이 심화될 전망이다. 일본 외무성은 “한일 간에는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문제가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비춰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 정부의 입장은 일관된다”고 명시하는 등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공세적으로 폈다. 따라서 저팬 타운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올 경우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국민적 부정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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