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를 노리는 야권 주자들 사이에 지각변동이 시작된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연정 회담 이후 보폭이 커지고 있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최근 일을 냈다. 이회창 전 총재와 두 시간 밀담을 나눈 것이다. 내년 7월까지 임기 보장과 함께 당력이 박 대표에 쏠리는 시점이다. 정치권은 박 대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현실 정치 복귀에 의욕을 갖고 있는 이 전 총재, 당권과는 거리가 있으나 청개천 개통식을 계기로 박 대표를 추격하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 그 중 보수·기득권층에 여전히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 전 총재와의 밀담은 곧 차기 대선 구도의 윤곽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어제와 오늘, 한나라당의 수장 사이에 오간 120분 밀담의 내용은 과연 무엇일까. 이날의 회동은 박 대표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양측에서 전하는 이들 사이에 오간 대화를 요약하자면,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등 국내 정치 현안과 6자회담 등의 민감한 국제정세다. 그러나 이는 상식 차원의 해석일 뿐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재·보선 결과 정계개편 도화선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한나라당 차기 대권 구도와 관련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시점에 회동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박 대표와 접전을 벌이고 있는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 개통식을 기해 대선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재·보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박 대표가 심중을 드러내며 개별적으로 의원들을 접촉하고 있었다. 또한 대연정의 후속타라 할 수 있는 ‘정계개편’ 및 ‘개헌’도 박 대표와 이 전 총재의 회동에 변수로 작용했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청와대는 노 대통령이 연말까지 연정 얘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으나, 대연정의 여진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 이전 정계개편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처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정국을 감안할 때, 그리고 2006 지방선거가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정치권의 오랜 경험상,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박 대표가 두 번이나 대선을 준비했던 이 전 총재에게 단순한 격려나 조언을 듣자고 오찬을 요청했다고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이다. 차기를 노리는 한나라당의 잠룡들이 이미 대선을 향해 기지개를 켜고 있는 가운데, 보수·기득권층으로부터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이들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대표와 이 전 총재를 둘러싼 전후의 상황으로 볼 때 두 사람이 한나라당 차기 대선 구도를 비롯해 정계개편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고, 더 나아가 차기를 담보로 한 밀약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재·보선은 물론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서도 깊은 대화를 나눴을 것이란 분석이다. 1,100만 득표 두번씩이나
그렇다면 차기 대선 구도 및 정계개편과 관련, 이들이 나눴을 깊은 대화의 내용은 무엇일까. 먼저 박 대표 주변부터 살펴보자면, 당내 전·현직 지도부에선 대선 전략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반노무현 연대인 ‘빅텐트정치연합론’을, 김덕룡 전 원내 대표 등 당내 다수의 그룹에선 박 대표와 또 다른 유력 대선 주자와의 ‘연대론’을 제시한 터였다. 여기에는 고건 전 국무총리를 비롯해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그 대상에 포함된다. 그리고 이 전 총재 주변. 삼고초려를 통해서라도 이 전 총재에 역할이 주어져야 한다는 홍문표 한나라당 의원의 주장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정계복귀를 간절히 바라는 이 전 총재의 지지자 모임인 ‘창사랑’의 대표는 이 전 총재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백승홍 전 의원이다. 이처럼 그의 측근그룹으로부터 ‘이회창 정계복귀론’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다. 자칭 정치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이 전 총재의 향후 행보와 관련,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는 박 대표와 이 시장의 틈새를 공략할 것”, “박 대표 또는 이 시장과의 연대를 통해 명예회복에 나설 것”이라고 다양한 예측을 내놓곤 했다. 물론 그 방향은 이 전 총재의 대선 도전 또는 킹메이커 역할론으로 모아진다. 한나라당의 유력 대선 주자측에서도 2007년 대선과 관련 이 전 총재의 복심에 ‘상왕정치’가 자리잡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미 은퇴한 분”이라고 정치적 해석을 경계하는 이 전 총재측의 반응과는 무관하게 말이다. 1,100만 표를 두 번씩이나 얻은 지지도에서 발전한 보수·기득권층에 대한 영향력이 여전히 유효한 상태기 때문이다. 이는 이 전 총재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이 시장과 손 지사의 움직임에서도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시장은 박 대표와 이 전 총재가 회동한 이틀 후 “청계천 개통식을 기념하기 위해”라는 이유로 이 전 총재 및 이 전 총재와 친분이 두터운 전직 의원들을 부부동반으로 초대했다. 개인적인 만남은 알려진 바 없으나, 손 지사 역시 이 전 총재와 함께 하는 모임 및 행사에 모습을 드러낸다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당내 대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있어 누구라도 이 전 총재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관측이 최근 들어 비로소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차기 잠룡들의 손익과 공천
다음은 재·보선 및 지방선거. 지난달은 10월 재·보선과 지방선거를 겨냥한 물밑 작업 및 공천에 대한 대화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던 시기다.이들이 회동했던 23일은 10월 재·보선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났을 때였다. 경기 부천원미갑, 경기 광주, 대구 동구을 등 3곳은 이미 정해진 시기였으며, 재선거 여부가 결정되는 4곳의 경우도 29일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29일 이전 3곳의 공천심사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한나라당 한 핵심 당직자는 “재·보선 공천 과정과 그 결과를 보고 대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17대 총선만 해도 참신한 인물에 쏠리던 당력이 10월 재·보선에선 공천 후보와 관련된 잣대가 대선과 연결돼 있다는 것. 예비 후보들을 물밑 지원하고 있는 당내 복잡한 계파들의 물밑 작업은 물론 전직 의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도전도 차기 잠룡들의 손익과 연결돼 해석됐다는 얘기다. 게다가 재·보선 공천심사가 진행되는 와중에 박 대표는 개별 의원들과 접촉하며 의견 교환을 나누고 있었다. 이러한 정황상 박 대표가 대선 길목에 놓여있는 재·보선과 지방선거라는 점에서 계파별 교통정리의 노하우를 전수받고자 했다는 설도 무성하다. 물론 당내에서 여전히 세력을 확보하고 있는 이 전 총재에 대한 배려도 감지되는 대목이다. 과연 박 대표와 이 전 총재가 마주 앉아 나눈 120분 대화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정치적 확대 해석을 경계하는 양측의 입장과는 달리 민감한 시기, 둘 사이에 오고간 은밀한 대화야 말로 한나라당의 차기 대권 구도의 윤곽을 드러나게 해주는 단서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금미 기자>nicky@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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