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면접에서 보육원 출신 밝히자 면접관 흠칫해”

[일요서울 | 전수영 기자] 보육원 출신자들이 여전히 차별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만기 퇴소 후 취직을 하고자 할 때도 보육원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합격되는 사례도 발견됐다.
또한 정부의 지원도 여전히 시설 운영 수준에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의 품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한 보육원 아이들에게 더 많은 복지수혜가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정부는 형평성을 근거로 보육원에 대한 지원에 난색을 표하고 있어 이미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차별마저 느낄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비용은 일반적인 식사 한 끼 비용인 5000원, 서울지역아동복지센터의 4000원에도 훨씬 못 미쳤다. 더욱이 초등학교 평균 무상급식비인 수준인 2500원 에도 턱없이 부족해 한참 자랄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영양을 공급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여전한 색안경과 차별된 복지로 인해 보육원생들은 속으로 울고 있는 실정이다.

“제가 어릴 때에 비해서는 정말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 따가울 때가 있어요”

어렵게 전화통화에 응한 김태현(가명·21)씨는 보육원 출신으로 현재는 보육원을 퇴소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생의 꿈을 키우고 있다. 김씨는 그간 몇 군데 중소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했지만 면접 때마다 “부모님은 어떤 일을 하시냐”는 질문에 “보육원 출신이라고 사실대로 말하니 면접관이 잠깐 멈칫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해 차별의 존재를 확인시켜줬다.

결국 김씨는 아직까지 회사에 입사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씨는 “제가 보육원 출신이라 입사가 안 된 것이 아니고 실력이 부족해서 떨어진 것 같다”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했다.

“보육원은 가정이자 가족”

김씨는 당분간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으며 대학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김씨는 시간이 부족하지만 종종 보육원에 들른다고 하였다. 그는 “보육원은 단순한 시설이 아닌 가족”이라고 강조했다.

전북지역의 A보육원 관계자는 “보육원에서 만기 퇴소한 아이들에게는 보육원이 가정이고 가족”이라며 “퇴소 후에도 가끔씩 들르기도 하고, 결혼할 때도 찾아와 인사하는 아이들이 많다”고 김씨의 말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주변의 시선에 대한 질문에 이 관계자는 “요즘에는 한부모 가정도 많은데 간혹 그런 가정의 아이들이 오히려 보육원에 있는 아이들을 부러워하기도 한다”며 “예전에는 시설 아동에 대한 왕따도 있기는 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어릴 때부터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비밀을 많이 공유하게 돼 보육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털어놓을 수 있으며, 일반 가정의 아이들도 부모의 교육으로 인해 보호시설 아이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사회적 편견이 존재해 보육원을 아무런 문제없이 퇴소했음에도 불구하고 보육원 출신임을 숨겨야 하는 아픔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턱없이 부족한 정부 지원

현재는 사회적 편견이 많이 사라져 아이들의 움츠림이 줄어들었지만 보육원 운영의 어려움은 여전히 심각한 문제임이 확인됐다. 특히 그동안 소액이지만 꾸준히 후원했던 후원자들도 경기침체로 인해 후원을 중단하게 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A보육원 관계자는 “현재는 간식비·피복비·수학여행비·교복비도 지원된다. 하지만 일괄적으로 적용해서 지원되는 거라 항상 부족해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런데 경기가 안 좋아서 후원이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라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보육원이 한 끼 식대로 지원받는 금액은 1400원 정도로 이는 초등학교에서 실시하고 있는 무상급식비인 한 끼 2500원에도 크게 못 미치는 실정이다. 그나마 큰 규모의 보육원의 경우 식자재를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어 온전한 식사제공이 가능하지만 수용인원이 적은 보육원의 경우 1400원으로 식단을 꾸리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A보육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아 항상 식단을 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피복비 또한 적어 계절마다 아이들의 옷을 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정부의 지원 확대를 요청했다. 결국 후원금의 일부를 식비와 피복비 등으로 지출하면서 다른 혜택의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관계자는 지난 5년간 보육원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임금이 거의 동결돼 물가상승률을 임금이 못 따라가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며 정부가 사회복지사들의 희생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하소연했다. 결국 사명감으로 일을 시작한 사회복지사들도 낮은 임금으로 인해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게 돼, 이 때문에 정을 나누었던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사회복지사에 대한 대우도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규 퇴소 후가 더 걱정인 아이들

보육원은 20세가 되면 만기 퇴소를 해야 한다. 이런 만기 퇴소자들을 위해 각 지자체에서는 만기 자립지원금을 주고 있다. 금액은 조금씩 차이 나지만 보통 500만 원 전후이다. 하지만 이 자립지원금만으로는 자립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로 김태현씨처럼 만기 퇴소를 할 경우 자립지원금과 보육원에 있을 때 결연을 맺은 후원자의 후원금이 전부여서 곧바로 일자리를 얻지 못할 경우 곤궁한 상황에 몰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김씨의 경우는 퇴소 후 빠른 시간 내에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지만 대학에 입학하는 퇴소자의 경우 등록금을 자신이 마련해야만 해 합격을 하고도 꿈을 접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다만 20세가 넘어서도 마땅히 자립이 어려운 경우 보육원에 남아 있을 수는 있으나 정부에서는 식비 정도만 지원한다.

A보육원 관계자는 “정부에서 보육시설에 대한 지원을 할 때 어떤 부분이 가장 필요한지 확인하고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보육원을 지원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필요경비 규모를 정확히 파악해 거기에 맞는 금액까지 지원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대부분의 보육원이 정부 지원금을 최대한 아껴 쓰면서 모자라는 부분은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일요서울]과의 통화에서 “정부와 많은 분들의 후원으로 저를 포함한 보육원 동생들이 잘 자라고 있다”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보육원에 있게 된 동생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이상하게 보지 않으면서 나와 같은 사람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보는 것에 슬플 때가 있다. 사회가 다변화 된 만큼 똑같은 시선으로 대해줬으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된 보육시설 아동에 대해서 당장 식비 지원 금액을 올리기는 힘들지만 해마다 인상할 계획이다. 또한 지자체에 별도의 지원방안을 모색토록 협조를 구할 방침이다. 현재 전국에는 1만7000여 명의 아동이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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