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굴종할 것인가,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될 것인가

과거 성공 경험은 기업의 자산이지만 종종 더 나은 미래 성취를 가로막는 장애물
트렌드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역량을 집중하는 회사인가를 살펴봐야

2007년 4월에 상장폐지된 종목 중 삼보컴퓨터란 회사가 있다. 1980년대 7명의 전자공학 전문가들이 모여 국내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를 선보이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한 때 신화창조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2005년 법정관리 신청 그리고 상장폐지를 거친 후 현재는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삼보컴퓨터뿐만 아니라 현대멀티캡, 현주컴퓨터 등 중소 PC제조업체들도 비슷한 길을 걸어 왔다.

1980년대 당시 PC제조업은 최첨단 정보기술 산업이었다. 하지만 이후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삼성전자나 인텔 등으로부터 부품을 조달해 조립만 하면 되는 단순 조립 산업으로 그 형태가 변화한 바 있다. 이 같은 트렌드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거나 설령 감지했어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결과 중소 PC제조업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와 자금력을 앞세운 삼성전자, LG전자, HP, Compaq 등에 밀려 시장을 내주고 말았다. 물론 트렌드의 변화를 파악하고 그 변화에 대응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비슷한 시기 온라인 중심의 다이렉트 주문 및 마케팅 방식으로 성공한 Dell 사례를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윈도우로 유명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업계의 공룡인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지금은 도산 2년 전”이라는 기업 마인드로 무장돼 있었다고 한다. 이 절박한 마인드는 조직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고 의사결정을 빠르게 하고 마침내 시장에서 확실한 성공을 가져온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그 빛나는 성공에 안주함으로써 조직문화는 초기의 도전적인 것에서 관료주의적으로 바뀌었다. 2010년 이후 성큼 다가온 모바일 시대에서는 세간의 이목을 끌지 못하는 2류 회사로 가라앉은 채 절치부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의 성공 경험은 자산이지만 때때로 더 나은 미래로의 성취를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과거의 성공은 최대의 적”이라는 경구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이유다. 첨단 정보기술 회사도 한 순간에 단순조립업체로 전락하기도 하고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도 새로 떠오른 산업분야에서 소외된 채 변방에서 머물기도 한다. 이렇게 비참한 상태로 전락하는 데에는 노키아의 예에서 보듯 불과 몇 년이 걸리지 않는다. 노키아는 한 때 세계최고의 휴대폰 회사로 승승장구하다가 변화하는 트렌드 대응에 실패한 결과 이제 혹독한 구조조정에 내몰리며 업계의 동정을 받고 있다. 닌텐도와 소니 역시 마찬가지. 

빠르게 변화하는 기업환경에서 투자가치가 있는 종목을 고르는 것은 넓고 긴 안목과 혜안이 필요하다. 또한 가장 유념해야 할 점은 트렌드의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핵심역량을 집중하는 회사인가를 살펴봐야 한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트렌드를 적극적으로 추종하고 나아가 스스로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회사야말로 미래에 가치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변화에 굴종할 것인가, 스스로 변화의 주체가 될 것인가 하는 화두는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조직에서도 생존의 필수요소다.

조선기 SK증권 분당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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