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 연하녀의 육탄공세… 당할 재간 있어야지”


40대 노총각의 연정을 돈벌이에 이용한 20대 미녀 사기꾼이 법정에 섰다. 자신을 ‘명문 재벌가의 딸’이라고 소개한 그는 삼촌뻘인 피해자에게 접근해 불과 10개월 만에 6억원이 넘는 돈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당돌한 사기꾼은 통 큰 씀씀이를 과시하기 위해 양로원에 통닭 100여 마리를 사보내기도 했지만 이것 역시 고스란히 피해자의 지갑에서 빠져나갔다. 사기극의 실체를 안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자 홍콩으로 도망친 그는 현지에서 또 다른 남자를 사냥하다 인터폴의 공조 수사에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명품’으로 둔갑해 남심(男心)을 뒤흔든 20대 사기녀의 황당한 ‘짝퉁’ 인생 전모를 들여다봤다.


전문대 출신 ‘서민’이 재벌가 엘리트?

최근 법원에서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은 정모(여·29)씨는 빼어난 외모를 지닌 처세술의 달인이었다. 춘천에서 어엿한 팬션을 운영하고 있는 피해자 서모(45)씨는 ‘미모의 재원’인 정씨에게 단숨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지난해 8월 손님으로 찾아온 정씨는 자신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기업 회장의 딸”이라고 소개했다. 또 외국어에 능한 정씨는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부산의 모 전문대를 나온 ‘서민’ 정씨가 순식간에 ‘재벌가 출신의 유능한 통역 프리랜서’로 변신한 것이다.

띠 동갑을 훌쩍 넘기는 두 사람이 연인으로 발전하는 데는 불과 1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고급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재벌가 전문직 여성’에게 홀린 서씨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물심양면 ‘자신의 여자’를 돌봤다.

그가 올 3월까지 정씨에게 퍼부은 돈은 모두 6억7160만원. 통역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위해 바(Bar)를 운영한다며 960만원을 빌린 게 시작이었다. 용돈조로 수백만원을 꾸어가던 정씨의 씀씀이는 갈수록 커져만 갔다.

출장지인 외국에서 쓸 체류비가 필요하다는 애인의 말에 선뜻 신용카드까지 내 준 서씨의 통장 잔고는 밑 빠진 독처럼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씨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를 5장이나 빌린 정씨는 국내외 유명 호텔을 비행기로 오가며 1억여원을 날리기도 했다.

수십 차례에 걸쳐 정씨의 계좌로 돈을 보내던 서씨는 마침내 지난 3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 챘다.


“좋은 일 한다” 남의 돈으로 생색

평소 자선사업에 관심이 많다며 복지 기관에 돈을 보내던 정씨가 춘천에 있는 모 양로원에 통닭을 100여 마리나 사서 보낸 것. 그러나 여기에 들어간 돈은 고스란히 서씨의 몫으로 남았다.

2개월에 걸쳐 2400만원을 자선기금으로 써댄 카드 내역서를 확인한 서씨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중년의 마음을 뒤흔든 ‘미모의 재원’은 이미 홍콩으로 몸을 피한 뒤였다.

서씨의 고소로 경찰 수사가 시작되자 중국은행 명의의 예금통장에 5천975만위안(약 90억원)이 들어있는 것처럼 문서를 위조하는 등 처벌을 피하려 발버둥치던 정씨는 수사망이 좁혀오자 지난 6월 홍콩으로 도피했다.

결국 인터폴에 공조수사를 요청한 끝에 꼬리를 잡힌 정씨는 지난 9월 19일 몰래 귀국길에 올랐다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홍콩에서 도망자 생활을 하던 중에도 싱가포르 동포를 상대로 똑같은 사기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났다.

법정에 선 정씨는 최근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춘천지방법원 형사 1단독 진상훈 판사는 지난달 30일 정씨의 형을 확정했다.

진 판사는 “피고인이 미혼이고 재력이 있는 것처럼 행세해 돈을 가로챘을 뿐 아니라 수사관을 속이기 위해 예금통장 사본을 위조하는 등 범행수법이 불량해 실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정씨는 형사처벌 뿐 아니라 서씨와의 민사 소송에도 발목이 잡힌 상태다. 철저하게 배신당한 서씨는 사기극으로 날린 돈을 돌려받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씨는 이미 돈 대부분을 탕진한 상태. 때문에 옛 연인 간 지루한 법정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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