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고위원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ㅣ정찬대 기자]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고위원이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며 최고위원직에서 사퇴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지도부 출범 후 다섯 달 동안 민주당의 변화와 쇄신을 실천하지 못한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자책한 뒤 “지도부의 일원인 내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 대선후보가 민주당내 기득권 정치를 깨겠다고 약속한 만큼, 문 후보가 쇄신을 거리낌 없이 이끌 수 있도록 현 지도부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용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한 뒤 “나부터 내려놓겠다.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그는 “정치쇄신은 시대정신”이라며 “대선승리를 위해서는 문재인 후보가 우리 정치의 쇄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최고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그간 정치권 안팎에선 제기된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2선 후퇴론을 의식한 발언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앞서 전날 열린 ‘대선 승리를 위해 노력하는 초선의원 모임’ 초청 토크 콘서트에서도 김 최고위원은 이 대표와 박 원내대표의 퇴진론을 겨냥한 듯 “대선에 약이 되는 줄 알면서도 취하지 않고, 독이 되는 줄 알면서도 버리지 않으면 12월 19일 밤 통곡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득권을 껴안은 채 이기면 다행이고, 지더라도 제1야당을 껴안고 가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는 절대 정권교체를 이룰 수 없다”며 쓴 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그는 “이미 지도부의 전권을 후보에게 위임했기 때문에 대선기간동안 지도부의 공백은 없을 것”이라며 “어제 초선 의원 초청 토론회에서 밝혔듯이 나부터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사퇴의 뜻을 거듭 밝혔다.

지난 6·9전당대회 당시 이해찬 대표와 접전을 벌인 김 최고위원은 지역순회 경선에서 연승 행진하며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그러나 당내 최대계파인 친노(친노무현)계 좌장 ‘이해찬 대세론’을 넘지 못하고 2위에 머물러야만 했다.

김 최고위원은 이해찬-박지원 담합 논란으로 친노진영에 대한 반발이 상당한 가운데 ‘반(反) 이해찬-반(反) 박지원’의 구심점 역할을 했으며, 그 결과 이 대표와는 1471표(0.5%) 차이로 박빙의 승부를 펼치기도 했다.

김 최고위원은 중도 이미지가 강하고 탈(脫)계파를 자임하는 만큼 특별한 세(勢)를 갖고 있지 않다. 지략이 뛰어나며 당내 전략가로 손꼽히는 그는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1997년 대선 때는 방송총괄팀장으로 활약하며 국민의 정부 탄생의 공신이 됐으며, 2002년 대선에서는 미디어특별본부장을 맡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협상을 주도하는 등 정권 재창출을 이끌어내는데 크게 기여했다.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이후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으로 활약했고, 15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냈고, 문화관광부 장관 시절에는 한류 문화를 확산시켰다.

2002년에는 단일화의 주역이었으며, 17대 국회에선 건설교통위원장을 지내며 행정중심 복합도시법 통과를 극적으로 통과시켜 협상의 명수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2007년 2월 열린우리당 탈당을 주도한 뒤 통합민주당 공동대표를 지냈고, 2007년 12월 대선에서 정동영 후보가 패하자 책임을 지겠다며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19대 총선에 출마해 서울 광진갑에서 당선됐다.

대중적 친화력이 뛰어난 그는 여러 직업과 별칭을 갖고 있으며, 베스트셀러 작가, 방송인, 유명 탤런트인 최명길씨 남편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김한길은 누구?
△일본 도쿄 출생(1953년) △이화여대 부속고등학교-건국대학교 졸업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 △문화관광부장관 △노무현대통령 당선자 기획특보 △열린우리당 총선기획단장 △국회 건설교통위원장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15, 16, 17, 19대 국회의원 당선

<정찬대 기자> minch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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