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가고 싶으면 ‘핫(HOT)’한 보고서 올려라

▲ 박근혜 캠프. /정대웅 기자
네거티브·야권·언론 동향 등 1인당 3~4개 올려
중복된 보고서 많아, 같은 팀원들끼리 견제하기도

요즘 박근혜 캠프 안팎에서는 ‘청와대를 가려면 핫(Hot)한 보고서를 올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안철수 전 후보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를 적극지지하면서 향후 대선 판도가 ‘박빙’이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신선한 보고서를 올려야 캠프 내에서 주목받는 상황이다. 그래야 대선 이후에도 ‘청와대에서 한 자리 할 수 있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더구나 박 캠프에서 ‘이벤트’가 없는 이상 보고서를 통해 야권 동향, 언론동향을 먼저 파악해 사전의 모든 악재를 막자는 의도가 있다. 이 때문에 때 아닌 ‘보고서 전쟁’이 벌어지면서 내부 경쟁도 극심하다는 전언이다. 그 속사정을 들어봤다.

“보고서를 올려도 ‘휴지조각’처럼 여겨졌다. 심지어 캠프 내 A부서에서 올리면 바닥에 버려지고, B부서에서 올리면 팀장이 자르고, C부서에서 올리면 그나마 본부장에게 올라간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때문에 캠프 관계자들이 보고서를 작성하더라도 쓰레기 취급받고 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

박근혜 캠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 부서 관계자는 캠프가 우왕좌왕하며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경쟁으로 인한 허와 실

이 관계자는 최근 보고서 문제로 박근혜 캠프 핵심인사들이 박 후보에게 혼쭐이 났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박 후보가 ‘보고서를 올리더라도 추려서 올려라. 이 많은 보고서를 어떻게 다 보느냐’며 권영세 종합상황실장, 유정복 직능총괄본부장 등을 크게 혼냈다. 그 이후 보고서를 꼼꼼히 챙겨보고 있다. 이 때문에 보고서 경쟁이 붙었고, 신선한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청와대를 갈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캠프 내 관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보다는 제각각 ‘돋보이기’ 위해 각개전투를 하고 있다. ‘본부별-후보-야권-언론 동향’ 등에 관련된 보고서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3~4개씩 꾸준히 작성하고 있다. 네거티브 대응에 대한 보고서도 적잖게 올라오고 있다. 이 모두를 합치면 적어도 하루에 수백 개의 보고서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캠프 실무진들의 때 아닌 보고서 작성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이를 통해 청와대 갈 인사와 청와대 들어가지 못하는 인사도 정해져 있다는 얘기가 캠프 내에서 공공연하게 흘러 나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고서 경쟁’이 보고서 질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사내용의 보고서가 너무나도 많이 올라온다는 것. 실제 박 캠프 한 관계자에 따르면 민주통합당이 MBC 항의 방문과 관련해, 기사를 쓴 기자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들어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와 관련된 내용에 대해 또 다른 캠프 관계자가 작성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캠프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만났을 때 서로 나누었던 내용 중 일부를 보고서에 작성해 올렸으나, A기자가 캠프 내 다른 인사와 같은 얘기를 해 중복된 내용의 보고서가 많이 올라오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언론 및 각 당별 동향 분석에 대해 각 팀별로 다른 분석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올라온 보고서를 보더라도 내부에선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다. 아예 폐기처분을 하거나 아니면 좀 더 구체적인 보고서를 올리는 형국이다.

그래서일까. 수백 건의 보고서 중 A급 보고서를 분류하는 게 더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부에서는 A급 보고서를 누가 더 많이 올리느냐보다 지속적으로 A급 보고서를 올리느냐가 청와대행 여부를 결정짓는 ‘잣대’가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일각에서는 ‘누가 청와대를 가려고 안달이 났다’, ‘누구는 갈 욕심이 없다’라는 식의 얘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박 캠프 한 관계자는 지난 4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보고서 경쟁이 심하다보니 같은 팀에 있는 인사들까지도 서로 경쟁을 하고 있다. 심지어 무엇을 올리는 지 서로 견제하는 눈빛이 역력하다”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보다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 같다”고 캠프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특히 캠프 내에 몸담고 싶지 않지만 의원의 명령에 의해 몸 담은 인사들은 보고서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각한 지경”이라며 “마지못해 캠프에 합류한 인사들은 무력감이 팽배해져 있다”고 귀띔했다.

직능-조직 ‘불협화음’

한편, 박 후보 일정을 놓고도 불협화음이 발생하고 있다. 직능팀과 조직팀간의 경쟁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박 후보의 유세일정 중 직능팀과 조직팀 중 누가 더 많은 조직을 동원하느냐에 대한 경쟁이 붙었던 것. 이는 박 후보에게 얼굴을 내밀어 눈도장을 찍어, 대선 이후를 대비하자는 행보인 셈이다.

박 캠프 한 관계자는 지난 4일 [일요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선거 막판이 될수록 누가 더 많은 조직을 가동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거리유세는 조직의 수준을 보여준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가운데 후보를 서로 모시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며 “서로 더 많은 조직을 동원하느냐에 따라 일정이 바뀔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일정 담당팀과 친박계 인사들간의 파워게임이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처럼 박 캠프는 대선 이후를 고려해 벌써부터 ‘눈도장’ 찍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박 후보가 당선될 경우 ‘눈도장’을 찍은 이들은 청와대행을 내심 바란다. 박 캠프가 ‘보고서 전쟁’ 등 내부경쟁이 치열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박형남 기자>
7122love@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