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에선 부모도 형제도 없다” 최근 대전에서는 보험금을 노리고 자신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 ‘인면수심’의 30대 가장이 검거되어 사람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그는 6억원 상당의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부인과 열 살, 여덟 살 난 두 아들에게 독약이 든 물을 먹이고, 네살배기 아들까지 목졸라 살해한 뒤 집에 불을 질러 화재사고로 위장하는 등 패륜범죄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자신의 가족을 살해하는 패륜범죄는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증가한 이후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시한다’, ‘나무란다’, ‘사는게 힘들어서’, ‘용돈을 안준다’는 등의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믿었던 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막가파’식 범죄는 황금 만능주의의 극치를 넘어서 무너지는 인륜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돈 앞에선 천륜도 없다

올 3월, 모자가 짜고 아버지를 죽이려 한 ‘인면수심 살인극’은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기에 충분했다. 서울 유명 사립대를 졸업한 김모(25)씨는 지난해 12월 어머니 박모(49·사망)씨와 공모, 인터넷사이트의 ‘제거전문킬러’ 카페에 아버지(51·K대 교수)를 살해해주면 1억5,000만원을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는 어머니 박씨와 함께 카페운영자에게 착수금조로 240만원을 건네고 아버지의 출·퇴근 경로와 주차위치, 동정 등을 상세히 알려줬다. 어머니 박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수사시작 나흘만에 대치동 자택에서 목을 매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은 남편 몰래 진 빚 8,000만원으로 고민하던 어머니가 보험금을 노리고 평소 아버지와 갈등이 심했던 아들에게 먼저 제의해 이뤄진 것으로 밝혀졌는데,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인 대치동에서 발생했다는 점, 또 교수를 가장으로 둔 중상류층에서 빚어진 패륜범죄라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부모 나무람에 격분, 살해

“자식이 가장 무섭다”, “안방문을 잠그고 자야 된다”는 말은 더 이상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지난 5월 11일 광주 광산 구청 과장으로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양모(61)씨 부부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이 사건의 용의자로 양씨의 아들을 검거했다. 범행동기는 용돈을 주지 않고 여자친구를 못마땅해했다는 것. 사건 당일 “외박이 잦다”는 이유 등으로 자신을 심하게 나무라는 부모를 둔기로 수십차례나 때려 무참히 살해한 그는 범행 후 부모의 장례식장에서 태연하게 조문객들을 맞으며 장례를 치른 것으로 드러나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또 5월 24일 경북 경주서는 평소 어머니가 신용불량자인 자신을 무시하고 “하는 일이 뭐 있냐, 정신 차리라”고 꾸짖는 것에 격분, 수십억대 재산가인 어머니를 살해한 박모(27)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집에서 어머니 신모(54)씨를 목졸라 살해한 박씨는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대형가방 속에 시신을 담아 한밤중에 폐쇄회로 카메라를 피해 담벼락으로 가방을 넘겨 미리 준비해둔 화물차에 실어 야산에 갖다버리는 치밀함을 보였다. 뿐만 아니라 8월 2일에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버지를 흉기로 위협하고 폭행한 장모(27)씨가 구속됐다. 장씨는 올 3월 친할머니를 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와중에 또다시 패륜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술값 안준다” 노모 살해, 구타

특히 육순이 넘은 노모를 폭행, 살해하는 ‘철없는’ 삼사십대 패륜아들의 범죄는 위험수위를 넘었다는게 경찰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난 4월 제주에서는 자동차를 사주지 않는다며 육순 노모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으며 머리채를 휘어잡고 폭행한 K씨(37)가 경찰에 붙잡혔다. 또 8월 31일 서울 청량리 경찰서는 “술값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머니(78)를 목졸라 살해한 김모(45)씨에 대해 구속 영장을 신청했다. 조사결과 무직인 김씨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생활해왔는데, 그전에도 어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낳지를 말지” 비정한 부모들

경찰은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할 나이임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해 살아온 이들이 부모를 폭행하고 살해하는 것에 할말을 잃게 된다”며 “오히려 다 큰 자식에게 용돈을 대주던 칠순노모가 구박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한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특히 이들 범행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한 갈등 및 가정불화를 겪고 있는 가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귀찮아서’, ‘사는게 힘들어서’, ‘화가 나서’ 등을 이유로 자식을 살해하는 부모들이 급증했다는 것. 충남 논산경찰서는 8월 31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신의 네살배기 딸을 때려 숨지게 한 권모(37)씨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사 결과 아내와 별거중에 있던 권씨는 지난 29일 밤 딸이 방을 어지럽힌 것을 보고 화가나 딸의 머리를 수차례 때린 후 입과 코를 손으로 막아 질식해 숨지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평소 딸에게 별로 정이 가지 않아 입양을 시킬 생각을 했다”는 권씨의 말에 경찰은 ‘이보다 더 잔인할 순 없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또 같은날 경기도 양평에서는 빚에 쫓기던 정모(55)씨가 10살난 아들을 살해하고 자신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그간 2억여원의 빚으로 고민해왔다는 주변인의 진술에 따라 경찰은 정씨가 생활고를 비관, 아들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앞서 22일에는 생활고를 비관해 어린 딸을 살해하려한 비정의 아버지가 구속돼 충격을 주었다. 경찰에 따르면 노동일을 하던 이모(43)씨는 21일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인근 야산에서 둘째딸(9)을 흉기로 찌르고 돌로 때린 뒤 풀로 덮어두고 달아났다. 이씨는 범행 후 다 죽어가는 딸을 두고도 태연히 귀가해 집에 머무른 것으로 드러났다.


# “패륜범죄 방지 위해서는 새로운 가정윤리 정립돼야”

가정해체와 인륜파괴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천륜에 반하는 엽기적인 범죄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실태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존속살해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는 매년 30%이상 급증하고 있는데, 올해 발생한 강력 패륜범죄만도 50여건이 넘는다고 한다. 패륜범죄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전문가들은 기성세대와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 및 무너진 가정윤리, 도덕성 상실 등을 주요 이유로 꼽고 있다. 즉 가정과 사회를 지탱해온 전통윤리가 붕괴되고, 가족 유대감이 약화되어 극심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지게 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부모를 상대로 한 살해나 폭행 등과 같은 강력범죄와 관련, 동국대 이상현(범죄심리학) 교수는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나 과도한 통제를 경험한 경우, 콤플렉스가 심화되어 우울증이나 자살, 살인충동이 현실로 표출될 수 있다”며 “부모에 대한 증오와 자기욕구 보상심리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쳐 패륜범죄를 유발시킨다”고 분석했다.또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인한 좌절감이 범죄를 유발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고려대 이민수(신경정신과) 교수는 “불황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사회적 박탈감에서 오는 좌절과 분노감이 1차적으로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발현돼 패륜범죄로 연결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급증하는 패륜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그동안 사회통합기능을 도맡아온 전통적인 유교적 담론에 더하여 변화하는 가치관과 시대적 상황을 수용한 새로운 가정윤리의 정립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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