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후. 서울 수서경찰서 강력 4팀에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소년이 수갑을 찬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한눈에도 앳되어 보이는 그의 나이는 불과 16살. 그러나 그는 특수절도 등으로 이미 전과 4범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미성년자 애인을 상대로 폭력 및 납치를 일삼아 또다시 쇠고랑을 차게 됐다. 형사들은 “16살 밖에 안된 나이에 어른들도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다 겪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다. 이들의 잘못된 만남은 약 1년6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릴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강민식(16·가명)은 보육원 생활을 견딜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중학교 1학년을 채 마치기도 전에 보육원에서 뛰쳐나와 거리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마땅히 오갈 데가 없었던 그는 PC방과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불안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지난해 1월 그는 우연히 김승희(14·가명)를 알게 된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강민식은 정에 잔뜩 굶주려있던 터였다. 그는 김승희에게 마음을 열고 급속히 빠져들게 된다. 김승희 역시 결손가정에서 자라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하고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던 차였기에 사정은 마찬가지였다.급속도로 가까워진 둘은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바로 강민식의 빈번한 폭행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멀쩡하다가도 ‘욱’하는 성질이 있었던 강민식은 모든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리고 그 불똥은 매번 여자친구인 김승희에게 튀었다. 강민식은 걸핏하면 김승희에게 폭력을 휘둘렀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폭행은 심해졌다. 김승희의 얼굴은 성할 날이 없었다. 견디다못한 김승희는 결국 강민식에게 이별을 선언하고 만다.

오랜만에 정을 붙이고 지내던 김승희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강민식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그는 여동생과 단둘이 사는 김승희의 집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며 폭행을 일삼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강민식이 찾아와 행패를 부리자 김승희는 알고 지내던 김인수(18·가명)에게 도움을 청한다.그러나 사태는 더욱 커졌다. 5월 7일 새벽 1시경. 김승희의 집에 와 있던 김인수를 본 강민식은 둘 사이를 오해하고 만다. 자기에 대한 배신감으로 강민식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앞으로 김승희를 만나면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면서 김승희가 보는 앞에서 김인수를 마구 폭행하는 한편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것으로도 강민식의 분노는 풀리지 않았다.

그는 같은 날 오전 8시 반경 김승희의 집으로 다시 찾아왔다. 겁에 질린 김승희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그는 문 유리를 손으로 깨고 들어갔다. 유리를 깨는 과정에서 심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부엌에서 과도를 가져와 ‘죽여버리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김인수와 김승희의 안면을 무자비하게 구타한 후 항거불능 상태인 김승희를 끌고 나갔다. 김승희의 납치신고를 받은 강력 4팀 형사들은 PC방과 김승희의 집 앞에서 잠복한 끝에 김승희의 집에 몰래 들어와 숨어있는 강민식을 긴급 체포했다. 결손가정에서 자라 정에 굶주려 있던 16살 소년의 집착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한 여성을 ‘소유’하려던 강민식의 잘못된 행동은 그의 손에 또다시 차가운 수갑을 채우고 말았다.


3일동안 30여차례 성폭행 조사결과 김승희를 납치한 강민식은 강동구 천호동 일대의 PC방 등지로 김승희를 3일 동안이나 끌고다니며 30여 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충격으로 피해자 김승희의 심신이 정상일리 없는 것은 당연지사.사건을 담당한 강력 4팀 임만영 형사는 “강민식이 28~30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했다고 진술했다. 얼마나 심하게 때렸는지 김승희의 얼굴은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피해자 김승희는 현재 정신적으로도 정상이 아니다. ‘강민식’ 이름 석자만 들어도 벌벌 떠는 등 극히 불안해하고 있는 상태”라며 “정신과 치료가 불가피할 것 같다”고 전했다.

임 형사는 “조사결과 강민식은 평소 길거리에서도 김승희를 폭행하는가하면 얼마전 김승희가 맹장수술로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찾아가 괴롭힌 것으로 드러났다”며 “호스를 꼽고 반실신 상태로 누워있는 피해자에게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휘둘렀다”고 전했다. 또 김승희는 평소에도 강민식의 강압적이고 무리한 성관계 요구로 인해 말 못할 고통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임 형사와 함께 사건을 조사한 장두진 형사는 “비정상적인 성행위로 인해 혼절 상태로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며 “김양은 14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자궁에 이상까지 생긴 상태”라고 귀띔했다. 그는 “결손가정에서 부모의 사랑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자란 두 청소년들의 잘못된 결합으로 일어난 일”이라며 “부모의 무책임한 방관과 애정결핍이 청소년의 앞날에 미치는 악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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