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쓰지 않는 똑똑한 바보들

‘디지털 치매’란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해 뇌 기능이 손상되어 어느 순간부터 인지 기능을 상실하는 치매의 일종을 일컫는 말이다. 이 용어는 2004년 국립국어연구원의 신조어에 오를 정도로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익숙한 단어다. 그러나 인터넷 중독률이 10퍼센트에 이를 정도로(한국정보화진흥원 2011년 인터넷 중독 실태조사) 디지털 기기 사용의 폐해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이 신종 증후군에 대해 의학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디지털 치매》는 독일의 유명 뇌의학자가 방대한 분량의 자료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의료인과 교육자,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인이 이 병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하고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쓴 책이다. 저자는 특히 이 책의 여러 부분에서 한국의 상황을 언급한다.

  

우리는 이미 디지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서 날씨와 뉴스 속보를 확인하고 자동차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출근한다. 출퇴근 버스와 지하철 안에서도 영화, 게임, 전자책, 인터넷 서핑 등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문자서비스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한 발짝 움직이지 않고도 금융거래와 쇼핑을 할 수 있다. 아이들은 동영상을 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부모는 IPTV 드라마로 하루를 정리한다.
그런데 모두가 이렇듯 빠르고 편리한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여 살아가고는 있지만, 과연 이러한 생활이 우리의 정신과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건 아닐까. 교육적 효과나 업무 효율성에 유익하기만 한 것일까. 연령에 따른 디지털 기기 사용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빠르고 편리한 사회가 만든 전 국민의 바보화

어쩌다가 우리의 일상은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디지털 기기들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일까.
저자는 대중의 두려움과 호기심을 자극한 마케팅으로 경제적 이익을 챙기려는 기업과, 이들의 대변인 역할을 하는 정치인과 언론인, 학자들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정치인들은 금융권과 재계를 위해, 중산층 혹은 납세자들을 위해 무엇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하지만, 어린이들이 정말로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는다”라며 정부 정책의 벽에 막혀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자신의 다양한 경험들을 소개한다. 나아가 국가가 컴퓨터 폭력게임에 상을 주는 등 혈세를 낭비하고, 미디어 업계가 정치권과 학계, 언론매체와 NGO에 로비활동을 벌여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운 실제 사례들도 언급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각종 디지털 매체의 공격으로부터 나와 가족의 뇌를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제시된 ‘평생에 걸친 뇌의 형성’이란 도표에 따르면 가능한 한 영상매체, 비디오 및 컴퓨터 게임, 지속적인 온라인, 멀티태스킹을 멀리하는 것이 좋다. 이것들은 연령별로 언어 발달 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학교문제, 잘못된 식습관, 중독과 수면부족과 과체중, 실업과 질병, 우울증과 치매를 낳는다. 그 대신 2개 국어를 배우고 세상에 나아가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면서 세상을 배우며, 음악과 스포츠 활동을 하고, 가족이나 친구들을 통해 유대감 있고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이다.
특히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의 경우, 수많은 연구 결과를 볼 때 스마트보드나 노트북 등은 공부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보를 더 많이 그리고 더 깊이 정신적으로 처리할수록 학습효과가 있는데 이러한 디지털 기기들은 스스로의 정신활동을 방해하여 피상적으로 생각하게 할 뿐이다(무언가를 어딘가에 저장해놓았다는 것을 알면 더 이상 머리를 쓰지 않는다!). 온라인 소셜네트워크 또한 사회적 행동을 발전시킬 기회가 아직 부족한 청소년들에게는 통제력 상실과 사회성 부족을 강화할 뿐이며, 유아를 위한 교육용 DVD도 역시 기업에서 거액의 홍보비를 들여 긍정적 효과를 주장하고 있지만 수많은 연구결과들은 이로 인해 오히려 학습에 지장을 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와 반대로 손가락을 꼽으며 수를 배우고 몸을 움직여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학습과 건강에 훨씬 효과적이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을 줄여 치매 환자를 줄이면 국가적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의 경우 현재 130만 명의 치매 환자가 2050년에는 260만 명으로 늘어나고 간병비만 해도 연간 300억~400억 유로가 소요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치매 발병을 단 몇 년이라도 늦추면 그만큼 국가적으로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한국도 치매 환자가 현재 50만 명에 이르고 있으며 그 수는 앞으로도 늘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과체중이나 흡연과 관련된 정책과 마찬가지로 디지털 기기 사용으로 인한 치매 발병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만프레드 슈피처 지음 김세나 옮김 | 북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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