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보이지 않을 때, 신은 당신 편이 되어줄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인도 오지 기행》, 《운둔》, 《하늘이 감춘 땅》 등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저자 조현의 대표도서에서 알 수 있듯이, 그동안 동양문화의 원류로 그리스 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인도와 이집트, 이스라엘과 티베트, 중국과 우리나라의 오지 기행 등 방대한 지역을 순례하며 정신의 원형을 탐구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살아 있는 역사와 신화의 땅, 그리스로 향했다. 전통적인 동양의 경계를 넘어 서양으로 향한 것은 또 다른 모험이자 도전이라 하겠다. 저자는 책으로 만나는 그리스 신화나 ‘관광적’ 그리스가 아닌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며 얻은 생생하고 풍부한 자료를 보여준다. 또한 세속의 삶을 기꺼이 버리고 은둔 수행자의 신비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수도자들의 삶과 우리 삶에 크나큰 영향을 미친 수많은 철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이 탐험은 태초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 지금까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수도자들의 땅 아토스 산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제우스가 호령하던 올림포스신전, 알렉산드로스의 기도신전이 있는 고대 디온과 세상의 운명을 점쳤던 예언신전 델포이를 지나, 이상국가 스파르타와 철학의 본고장 아테네 그리고 자유의 섬 크레타와 《요한계시록》의 파트모스 섬, 천재 지식인들이 살았던 사모스 섬과 트로이 목마가 있는 고대도시 트루바를 넘나드는 탐험을 계속한다.
저자와 함께 2500년을 넘나들며 떠나는 그리스 시간 여행을 통해 우리는 한 인간이 던지는 삶과 죽음, 소유와 무소유, 탐욕과 자족에 관한 근원적 질문에 맞닥뜨리게 되고, 인류 문명의 탄생과 발전, 쇠퇴와 멸망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오늘날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된다. 이것은 마치 아리아드네의 실타래처럼 우리가 끌어안고 있던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할 때 우리의 사고를 자유롭게 해 새로운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는 그리스 최고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에게 소크라테스와 한 끼 식사할 기회를 준다면 애플이 가진 모든 기술을 그 식사와 바꾸겠다.”

왜, 지금 그리스인가?

명민한 그는 아무리 많은 돈과 기술도 ‘삶의 지혜’를 터득하는 것에 비하면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스파르타와 치른 두 차례의 전쟁으로 혼란을 느끼고 있던 아테네 시민들은 사회 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 걸던 소크라테스를 밉살스러운 괴짜 노인 정도로 여겼던 듯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리스가 금융위기 이후 과도한 재정적자로 인해 부채가 급증했고 지금 이 지경에 있지만, 문제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그리스에게 금융지원을 제안했지만 그리스는 거절했었다. 이유는 미국의 금융지원으로 당장은 살아나겠지만 그 후 미국의 경제적 노예가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스가 구제금융을 지원받고 긴축재정을 시행하는 것은 국민 자신들의 몫이다. 그러나 그리스를 둘러싼 국제 이해관계들이 이를 가만히 놔두지는 않을 것이고,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리스의 미래를 지배하지만, 돌파구가 생겨날 가능성은 아직도 충분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살은 사회 안전망이 구멍이 난 데도 큰 원인이 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의 상대적 결핍과 박탈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독자들과 나눈다. “나도 생의 의미를 잊고 표류한 때가 있었다. 죽으려던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이를 극복한 순간은 어떻게든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던 문제를 동반자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덧붙여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한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 아침이 오지 않을 것 같고, 깜깜한 밤이 지속되리라는 절망감은 가장 큰 어리석음임을 말한다.
저자가 그리스를 여행할 무렵 경제 위기에 놓인 그리스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넘쳐났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내면서 오히려 이방인에게 사랑과 지혜를 나눠주는 그리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말한다. 또한 “지혜의 선구자들을 품었던 그리스는 헉헉거리던 숨을 돌려 쉬며 생각을 전환하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고 말한다.
“세상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이고, “인생은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것”이라며 ‘그렇고 그런’ 도그마만을 강요하는 질서에 항거해 의문에 찬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그리스에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인 소크라테스는 신화에 맞서 신성모독으로 죽어가면서도 묻고 또 물었다. 신의 뜻이 하늘에서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그리고 우리 모두의 가슴에서 이루어지도록.
조현 지음 |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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