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시대, 인간의 욕망 보여주는 한 편의 드라마

1897년 6월, 뉴욕 곳곳에서 시체 토막이 발견된다. 토막 시체들은 모두 한 사람의 것으로 판명이 나고, 머리가 없는 시신의 주인을 찾는 데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19세기 말 뉴욕을 발칵 뒤집어 놓은 이 토막 살인 사건은 언론계 거물 조지프 퓰리처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노골적인 선정성을 전면에 앞세운 살인적 부수 확장 전쟁이 시작될 무렵이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있을 수 없었다.

처음에 단순히 의대생들의 장난이라 여겨졌던 이 사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묘한 기운이 감지된다. 뉴욕 곳곳에서 발견된 시체 토막들이 한 사람의 것이고, 시체 조각들을 싸맨 방수천이 같고, 머리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뉴욕의 모든 신문들이 대대적으로 보도 경쟁에 들어가면서 이 사건은 1897년을 뜨겁게 달군, “세기의 살인 사건”이라 불릴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이 시체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이며,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저자 폴 콜린스는 방대한 양의 신문 기사, 사후 수기, 인터뷰, 광고, 법원 기록 등 실제 자료를 토대로 이 충격적인 토막 살인 사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하나도 덧붙임 없이 흥미진진한 법정 추리 소설(Fiction) 같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19세기 후반, 뉴욕은 선정적인 보도 경쟁을 벌이던 황색 신문들의 전쟁터와 같은 곳이었다. 산업혁명의 여파로 인쇄술이 발달하고, 칼라 인쇄가 막 보급되던 시기였다. 라디오조차 발명되기 전이었던 이때에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신문이었다. 당시 신문은 모든 여론을 주도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조지프 퓰리처의 <뉴욕 저널>과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의 <뉴욕 월드>는 황색 언론에서도 가장 치열하게 기사를 써대며 이슈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던 라이벌이었다.
언론계 거물 조지프 퓰리처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에게 이 사건은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노골적인 선정성을 전면에 앞세운 살인적 부수 확장 전쟁이 시작될 무렵이었으니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이 있을 수 없었다. 퓰리처와 허스트는 특종을 잡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살인 전담팀을 꾸려 경찰보다 먼저 현장에 기자들을 보냈다. 기자들은 사건 현장에서 얻은 증거를 몰래 빼돌리고, 조작했다. 범행에 쓰였다고 생각되는 마차를 빌려 거리를 돌면서 목격자를 찾았다. 심지어 범인을 찾는 사람들에게 줄 포상금을 걸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범죄 현장을 독점하기 위해 아예 범죄 현장이 된 집을 통째로 세 들고, 다른 신문사가 서로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아예 전화선을 끊어놓기도 했다. 경찰 본부 앞 건물에 진을 치고 밤낮으로 경찰들을 감시했다.
작전은 성공했다. 1987년 하루 평균 20만 부가 안 팔리던 <저널>은 사건 발생 1년 후, 50만 부, 100만 부, 150만 부까지 판매 부수가 치솟았다. 신문들은 매일같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댔다. 이목을 끌기 위해서 시체 그림을 큼지막하게 그려 칼라로 인쇄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발견되지 못한 머리를 찾는답시고 경찰보다 더 요란하게 수색 작업을 벌여댔다. 유능한 기자들을 빼내어 가느라 돈으로 매수하는 일도 일상이었다.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명예롭게 생각하는 ‘퓰리처 상’의 그 퓰리처가, 실은 신경증에 시달리며 기자들을 닦달하고, 판매 부수를 올리기 위해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처절하다 못해 우스꽝스러운 이 법석들이 전혀 낯설지 않은 것은, 신기할 정도로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다. 여전히 언론들은 전쟁터로 기자들을 보내어 전쟁을 실황중계하고, 여배우의 신상을 폭로하고, 사람들은 마치 영화를 보듯 재난 뉴스를 본다. 인터넷 포털에서는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해 ‘충격적인…’, ‘경악할 만한…’ 등의 제목을 단 기사들이 24시간 끝없이 생산된다. 여전히 우리는 남의 불행을 이야기하길 좋아하고, 보다 선정적인 것에 더 끌려한다. 우리는 모두 이 책에 나오는 허스트와 퓰리처의 후예들인 셈이다.
얼마 전 뉴욕 지하철에서 사람이 선로에 떨어져 죽을 때까지 그를 구하지 않고 카메라 셔터만 눌러댔던 카메라 기자가 도마에 오른 사건이 있었다.
다음날 <뉴욕포스트>는 1면에 ‘이 사람이 곧 죽는다’는 선정적인 제목을 달아, 사고 순간의 사진을 올리는 비정함을 보였다. 요즘도 ‘언론에 의한 살인’이라는 말이 입에 오르내리고, 대중은 선정성에 열광하는데, 언론에게 도덕성과 공정성을 요구해야 하는 딜레마도 여전히 그대로다.


폴 콜린스 지음 | 양철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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