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2세·화려한 재기 성공… ‘동병상련’

[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시대’가 막을 내리자 ‘스타급 정치인’이 한국 정치를 좌우했다. ‘청문회 스타’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권을 거머쥐었고 ‘불도저형 CEO’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바통을 이어갔다. 이어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자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재차 정권을 잡으면서 대중 정치인으로서 성공 가도를 이어갔다. 하지만 3김과 스타급 정치인이 떠난 자리는 무소속 안철수 의원을 제외한 여야 인물군은 ‘풍요속 빈곤 현상’을 낳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주목하는 인사로 4월 재보선에서 돌아온 ‘왕의 남자’ 김무성 의원과 ‘비주류 좌장’으로 당 대표에 선출된 김한길 당 대표가 눈에 띈다. 두 인사 모두 한 매체가 선정한 ‘대한민국 파워 60인’ 중 10위안에 들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공통점도 많다. 정치인 2세에 5선, 4선에 중진 의원, 그리고 3김 시대에 승승장구한 점 등 화려한 경력과 내공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에 원내 제1 야당의 막강 당 대표가 돼 ‘미래 권력자’로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최근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5선, 51년생)을 고무시키는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 5월 16일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차기 지도자로 김무성 의원(29.8%)이 1위로 꼽혔다. 이어 정몽준 의원(17.3%), 오세훈 전 서울시장(15.6%), 김문수 경기도지사(9.1%), 홍준표 경남도시사 6.2%, 이완구 의원(4.3%)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김 의원이 대권 후보가 되느냐와는 별개로 여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김 의원은 ‘정중동’ 행보를 보이면서도 당내 중진급 의원으로서 할 말은 하는 투트랙 전략을 보이고 있다. 김 의원은 최근 박근혜 대통령 미 순방길에 벌어진 ‘윤창중 성추행 파문’관련해서 그동안 침묵을 깨고 “청와대 공직자들은 금주선언을 해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박 대통령 방미성과에 대해서 ‘최대의 찬사를 보낸다’고 윤 전 대변인과 박 대통령에 대해 별도로 평했다.

‘막후 조정자’ 김무성 정중동
이처럼 김 의원의 행보에 주목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5선 중진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친박 중심에 있었다 잠시 박 대통령과 서먹해져 ‘탈박 김무성’이라는 말도 들었지만 지난 대선을 통해 확실하게 다시 박 대통령과 관계 복원이 됐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무엇보다 차기 유력한 당권 주자로서 내년 지방선거에 공천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점도 큰 힘이다.

당내에서도 친박 주류에 비주류까지 아우를수 있는 김 의원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야를 아우르는 인맥을 통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기대하고 있다. 작금의 청와대와 새누리당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정치 상황에서 김 의원이 당정청 관계뿐만 아니라 대야관계에서 ‘막후 조정자’로서 손색이 없다는 게 당내외 지배적인 평가다.

실제로 김 의원의 이력을 보면 화려하기 그지없다. 1996년 김영삼 총재 시절인 15대 총선서 처음 뱃지를 달았다. 이후 16, 17, 18대에 이어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당선돼 5선이 됐다. 김 의원은 고교시절 3선 개헌 반대 연합시위를 주도했고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던 민추협 창립멤버로 참여해 87년 6월 항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 의원이 5.18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공식 행사곡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배경이다. 이후 청와대 민정 비서관, 내무차관,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 국회 재경위원장, 사무총장, 원내 대표, 최고위원, 비대위원장을 거쳤다.

김 의원은 당권과 대권을 제외한 정치인으로서 거치지 않은 당직이 없지만 탁월한 리더십과 조직관리로 김영삼.박근혜 대통령 탄생의 주역을 맡았다. 김 의원은 지난 대선에서 낙천의 아픔을 딛고 박근혜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정치인 2세출신으로 김 의원의 부친은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낸 김용주 전 의원이다.

친노 주류 영원한 맞수 김한길 총재?
1953년생인 김한길 민주당 대표 역시 김 의원과 마찬가지로 민주당내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4선의 김 대표는 지난 5월4일 열린 민주당 당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모두의 예상을 깨고 커다란 격차로 친노 주류 진영의 후보인 이용섭 의원을 누르고 압도적으로 당선됐다. 특히 이번 당권이 인사와 예산에 내년 지방선거 공천까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총재직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베스트셀러 작가 출신인 김 대표는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선 후보의 선거 캠페인을 기획하며 당내 최고의 ‘선거 기획통’으로 알려져 있다. 김 대표 역시 김무성 의원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한다. DJ가 총재 시절인 1996년 15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뱃지를 단 그는 여야 양 진영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김 총재와 손을 잡았다. 김 의원은 ‘민주화 경력’은 없지만 부친인 아버지가 진보정당 활동을 펼친 김철 전 통일사회당 당수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선택이었다.

이후 김 대표는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과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거치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2002년 대선에서도 노무현 후보의 ‘미디어 선거전’에서 완승을 이끌어냈고 재차 ‘전략통’이라는 이름값을 톡톡해 해냈다. 하지만 2007년 대선전 친노와 등을 등리면서 김 대표는 열린우리당내 비노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을 주도, 중도통합민주당을 창당했다. 이어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에 참여했던 구 민주당과 통합해 대통합민주신당을 탄생시키면서 정치적 시련기를 맞이한다.

결국 김 대표는 17대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18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야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지난 19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갑에 전략공천되면서 재기의 신호탄을 쐈다. 특히 지난해 6.9전당대회에서 친노 핵심인 이해찬 후보와 당권을 두고 맞붙어 간발의 차로 고매를 마셨지만 1년만에 당권 도전에 성공함으로써 화려하게 귀환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김한길 대표 모두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지만 갈 길은 멀다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차기 리더’로 떠오른 김 의원의 경우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치적 운명이 갈릴 전망이다. 특히 1차 과제인 당권 도전을 위해서 당분간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기보다는 중진의원으로서 목소리를 내고 10월 재보선 이후 본격적인 행보를 보일 전망이다.

김 대표는 이중고에 시달릴 공산이 높다. 당내에서 어떻게 친노 비주류와 관계를 가져가고 밖으로 안철수 무소속 의원과 ‘경쟁적 보완관계’를 유지할 지가 관건이다. 특히 김 대표는 오는 10월 재보선 결과에 따라 당권을 유지할수도 놓을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 신중할 수밖에 없는 정치 현실이다.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금언을 여야 양김씨가 몸소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행보가 벌써부터 여야로부터 주목받고 있다. 

mariocap@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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