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앵벌이’ 기승 실태

최근 유흥업소에서 이른바 부킹 등으로 합석한 남자손님에게, 혹은 인터넷 채팅 등을 통해 알게 된 남자들에게 소액의 돈을 빌린 후 잠적해버리는 ‘신종 앵벌이’가 유행하고 있다. 자신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적게는 2~3만원에서부터 많게는 30~50만원까지 빌린 후 갚지 않는 것.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이용, 남성들의 경계심을 푼 뒤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대개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겼는데 마침 지갑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거나 ‘서울이 집인데 올라갈 차비가 없다’는 등 동정심을 유발하는 상황을 설정하고 남성들로부터 돈을 뜯고 있다고 한다. 본지는 신종 앵벌이의 세계를 집중 취재했다.


한달에 1~2번 정도 나이트클럽을 찾는 직장인 J씨는 며칠 전 친구와 함께 모 나이트클럽에 들어갔다. 춤을 추기 위한 것보다는 부킹을 통해 ‘원 나잇 스탠드’라도 해볼 요량이었던 것.

하지만 생각보다 부킹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포기할 즈음, 한 여성과 부킹이 되어 내심 마음이 설레기 시작했다. 한 10여분 이야기를 하던 도중 갑자기 그녀의 핸드폰이 울리면서 ‘연극’은 시작됐다.

그녀는 “갑자기 일이 있는데 카운터에 가방을 맡겨 지갑이 없으니 5,000원만 빌려주면 안 되겠느냐”고 했다.

J씨는 어차피 맘이 맞아 같이 나가게 되면 그녀의 술값도 내주려고 했던 판에 5,000원은 아무 것도 아닌 터라 선뜻 1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여성은 ‘금방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고, 그날 밤 J씨는 다시는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신종 앵벌이에게 당한 걸 깨달은 건 그로부터 2시간여 후. 평소 알고 있던 웨이터가 그에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자가 돈을 꿔달라고 하면 절대로 꿔주지 말라’고 했던 것.


앵벌이 사건 하루 수십건 웨이터 접수
하지만 이미 J씨는 돈을 꿔준 상태였고, 웨이터에게 최근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솔직히 그런 식으로 돈을 뜯을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합석해서 끈끈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한 일이 있다고 5,000원만 빌려달라고 하는데 솔직히 안 빌려줄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거기다가 운이 좋으면 하룻밤 같이 잠을 잘 수도 있는데. 푼돈이지만 이런 일을 당하고 나니까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식의 ‘앵벌이녀’들이 서울의 메이저 나이트클럽에 가끔씩 출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웨이터들 사이에서는 쫙 퍼진 얘기다.

대부분 20대 초반의 여성들인 앵벌이녀들은 특별히 직업이 없는 ‘백조’들이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남자들을 상대로 용돈을 얻어 쓴다고 한다. 만약 그런 식으로 하루에 5만원씩만 뜯어내도 한 달이면 150만원. 이 정도면 용돈의 수준을 넘어서 거의 직장인 초년생 월급 정도다.

앵벌이녀들이 이렇게 활개치고 다닐 수 있는 것은 남성들의 ‘묘한 기대감’ 때문이라는 것이 웨이터들의 설명. 서울 K나이트클럽의 한 웨이터는 “솔직히 나이트에 오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다 하룻밤 원나잇을 하려고 오는데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지 않겠느냐”며 “여자들은 남자들의 그런 심리를 이용해 앵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런 신종 앵벌이가 비단 나이트클럽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일부 남성들의 성매매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인터넷 채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 채팅서도 앵벌이 활개
최근 채팅을 통해 돈을 빌려달라는 여성에게 20만원을 선뜻 주었다는 K씨의 이야기다. “한 여성이랑 채팅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신의 사정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자신은 아버지랑 살고 있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고 그 때문에 월세를 낼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자신은 미성년자라서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대출도 받지 못한다고 20만원만 빌려달라고 해서 사정도 딱하고 해서 빌려줬습니다.”

특히 K씨가 안심을 했던 것은 앵벌이녀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전화번호, 계좌번호까지 모두 알려주었다는 점. 이 때문에 K씨는 안심하고 돈을 빌려주었지만 그 뒤부터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핸드폰도 꺼져있더라는 것.

하지만 K씨는 그냥 ‘지나가는 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고 돈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돈을 찾기 위해 경찰에 연락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따로 경찰서를 찾아가야하는 등 번거로운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것. 거기다가 채팅을 통해 혹시라도 성매매를 하지 않았는지 대한 의심을 받는 것보다는 그냥 차라리 20만원을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고 한다.


‘설마…혹시’하는 마음에 속아
때로는 ‘일반 유흥업소인 줄 알고 지방에 내려왔는데 성매매를 강요하는 등 처음에 한 약속과 달라 몰래 빠져나왔다. PC방에 있는데 서울로 올라갈 차비가 없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믿기 힘들면 확인해보라’며 PC방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을 바꿔주기도 하고, ‘나 통장이 없으니 PC방 아르바이트 학생의 계좌로 송금해 달라’며 지방은행의 계좌번호를 불러주기까지 한다고.

대부분의 남자들은 ‘진짜 힘든 경우에 놓인 여자를 도와주려는 마음에다 서울로 올라와도 잠잘 곳이 없으니 재워주면 안되겠느냐’는 등의 말에 솔깃해 입금을 해주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PC방 아르바이트 학생이라는 사람 역시 그녀와 한패이기가 십상.

뿐만 아니라 대구나 부산의 어느 PC방이라고 말하는 것도 거짓이다. 뒤늦게 역추적을 통해 확인을 한 사람들의 이구동성이기도 하다.

앵벌이녀는 ‘돈이 입금된 후 조금 있다 기차를 탔다고 하면서 서울역에 도착하기 전에 전화할 테니 마중을 나오라’는 등 서너 시간을 끌다가 연락을 끊어버린다고 한다. 이러한 신종 앵벌이녀들의 등장은 멀리는 높은 청년실업률과 인터넷을 이용해 쉽게 돈을 벌려는 여성들의 심리, 가까이는 그릇된 방법으로 성매매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남성들의 심리가 교묘하게 얽혀있다.
특히 남성들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돈을 포기하는 이상, 이러한 여성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서준 프리랜서>
pandora21.com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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