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동호회 및 카페 등에 페티시스트(페티시즘을 즐기는 부류를 일컫는 말)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페티시즘(fetishism)이란 이성의 육체나 속옷, 팬티 등에서 성적충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성도착증’으로 분류되는 증상이다. 그러나 페티시스트들은 자신들이 독특한 성적 취향을 지니고 있을 뿐 변태나 정신병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국내 페티시즘의 현황과 그로 인한 문제점을 진단해봤다.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페티시스트 강준혁(27·가명)씨는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장하고 평범한 대학생이다. 외관상으로 뭔가 다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오히려 그는 패션감각이 돋보이는 훤칠한 미남이다. 강씨는 “페티시즘은 결코 정신병이나 변태가 아니다”라는 말로 입을 열었다.

스타킹 페티시를 즐기는 그가 본격적으로 페티시즘에 빠지게 된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 “직접적인 성관계보다 유독 스타킹 신은 여자들만 보면 묘한 흥분을 느꼈다”는 그는 “대학생이 되어 페티시즘 동호회에 가입하기 전까지 홀로 적잖은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당시에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 무척 괴로웠으나 나 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용기가 생겼다”는 것이 강씨의 말이다. 여성의 벗은 몸보다 그물이나 망사 스타킹을 신은 여성에게 더욱 흥분을 느낀다는 그는 스타킹을 단지 여성이 착용하는 옷의 일부가 아닌 ‘성적 상상의 도구’로 표현했다. 현재 강씨는 페티시 동호회를 통해 자신과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정보를 나누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구입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그는 “회원들 중에는 사회에서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고학력 전문직 남성들이 상당수”라고 귀띔했다.

애인에겐 비밀
여지껏 꽤 많은 연애경험이 있다는 강씨는 이상형에 대해 “스타킹을 즐겨 신는 여성에게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며 웃었다. 그동안 자신의 독특한 성향을 이해하지 못해 헤어지게 된 경우도 있다는 그는 “이 문제로 몇 번의 이별을 반복하다보니 사귀는 사람에게도 내 성향을 밝히지 않게 되더라”고 전했다. “관계를 갖는 것보다 스타킹에 집착하는 나를 변태로 몰아세운 여자도 있었다”고 강씨는 말했다. 강씨는 현재 동갑내기 애인과 연애중이지만, 애인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 있다. 스타킹을 신지 않은 여성과의 잠자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에게 스타킹 신은 여성이 주는 판타지는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성관계 없이도 스타킹 신은 다리를 만지고 그 감촉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절정에 도달한다”고 강씨는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애인이 내 성향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아 내가 페티시스트라는 것은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애인에게 넌지시 자신의 욕구에 대해 말을 해본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애인의 반응은 예상대로 싸늘했다는 것. 강씨는 “스타킹을 신고 잠자리에 들라거나 스타킹을 신은 채 관계를 갖자는 내 말에 그녀는 상당한 거부감을 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놓고 내색은 하지 않지만 그녀가 나를 변태취급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고 고백했다. “가끔 특별한 날이나 끈질기게 요구할 때면 마지못해 들어주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매번 사정해야 한다는 것이 치사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아예 페티시 사이트에 들어가 즐기는 것으로 욕구를 해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는 많은 페티시스트 남성들이 직면하는 문제일 것”이라며 “페티시를 한국 사회에서 드러내놓고 즐겼다간 변태 취급 받기 십상”이라고 말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섹스보다 페티시 자체에 흥분하는 나를 느낄 땐 솔직히 불안하다. 그러나 이런 나를 이해해주는 여성과 사귀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페티시 알바
“페티시를 이해해주는 여성이 과연 있을까”라는 기자의 말에 강씨가 털어놓은 얘기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강씨는 “페티시 사이트에는 페티시 알바를 하겠다는 여성들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페티시 알바란 돈을 받고 페티시를 즐기는 이의 취향에 맞게 요구를 들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또 페티시 알바의 주 이용층은 애인이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성향을 밝히지 못할 경우 욕구분출의 대상이 필요한 남성들이라는 것이다. 강씨는 “나도 페티시 알바를 이용한 적 있다”고 털어놨다. 설령 애인이 이해한다해도 애인에게 할 수 있는 행위의 정도에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불편하다는 것이 강씨의 설명이다. 조금만 수위를 높이거나 강도를 세게하면 바로 ‘변태’소리가 날아 온다는 것. “마지못해 들어주는 애인을 상대로 페티시를 하는 것은 유쾌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서로에게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그는 얼마전 23살의 여대생과 나눴던 경험에 대해 담담하게 털어놨다.

자신이 요구한 스타킹을 신고 온 여대생은 비록 알바로 왔지만 그녀 역시 페티시를 즐기는 화끈한 여성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고 강씨가 아무하고나 페티시를 즐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여성이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발목이 가늘고 발이 예쁜 여성을 선호하고, 아무리 미인이라도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성욕이 생기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만났다가도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냥 돌려보낸 경우도 여러번 있었다는 것. 강씨는 이어 “페티시 알바 역시 페티시를 즐기는 여성이 아니라면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해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페티시 알바는 돈이 거래되기는 하지만 행위 자체는 철저히 서로 즐기는 상황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페티시를 같이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성관계를 가진 것보다 더 깊은 경험을 공유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강씨의 주장이다. 그는 “일방적인 성관계가 만족스러울 수 없듯이 페티시 역시 애정을 갖고 서로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씨는 “개인적인 경험담이기 때문에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페티시 마니아가 아닌 이상 스타킹 신은 자신의 발을 핥고 흡입하는 행위, 풋잡(발을 이용한 성행위를 일컫는 말)을 하거나 과격하게 스타킹을 찢은 상태로 관계를 갖는 행위 등을 결코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계도 갖느냐”는 질문에 강씨는 “상황에 따라 다르다. 관계는 안하기로 합의하고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 같은 경우 여성쪽에서 먼저 원하더라”는 말로 대신했다. 페티시를 즐기는 여성들은 남성과 마찬가지로 페티시를 이용한 행위자체만으로 절정에 이르기도 한다는 것이 강씨의 말이다. 강씨는 이어 “페티시를 즐기는 여성 중 돈을 받고 알바를 하는 여성은 개인적으로 무척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여성들은 더욱 성향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 같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서 자연스레 사랑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편 강씨는 페티시에도 다양한 부류가 있다고 말했다.

“스타킹 페티시의 경우는 그나마 거부감이 약한 축에 속한다”는 강씨는 “일반인이 강한 혐오감을 느낄만한 것들에 집착을 보이는 페티시스트들도 상당하다”고 전했다. 그는 그 예로 같은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정민준(30·가명)씨를 들었다. 정씨는 여성의 팬티에 집착을 보이는 경우다. 강씨는 정씨를 일컬어 “여성이 입던 팬티에 목숨 건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정씨는 어느날 기가 막힌 물건을 손에 쥐었다며 기뻐하더라는 것이다. 그가 구입한 것은 여고생의 팬티로 분비물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최상품(?)이었다는 것. 정씨와 그 여고생과의 거래는 직접 만나서 이뤄졌다. ‘가짜’가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 여고생은 약속대로 정씨의 차안에서 입고 있던 팬티를 즉석에서 벗어 넘겨줬다. 여고생이 정씨에게 팬티를 판 대가로 받은 돈은 무려 현금 10만원. 결코 적지 않은 액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정말 구하기 힘든 ‘명품’을 구했다”며 기뻐하더라는 것이 강씨의 전언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일반인과 다른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이들의 취향을 그대로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변태적인 성적 취향자로 취급할 지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결정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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