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스티븐 핑커의 열광적 낙관론이 당혹스럽다”

지은이 제리 포더Jerry Fodor는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이자 인지과학자다. 1935년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56년 컬럼비아대학교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1960년 힐러리 퍼트넘의 지도 아래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 이후 지금까지 뉴저지 주 러트거스대학교에서 철학 및 인지과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1993년 심리인지철학 분야에 수여되는 제1회 장니코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이탈리아의 토리노과학기술대학교 인지과학센터가 수여하는 ‘마음과 뇌’ 상을 받았다. 미국철학회의 동부 지구에서 부회장(2004~2005)과 회장(2005~2006)을 역임했으며,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의 회원이기도 하다. 계산주의 마음이론을 발전시키고, 모듈성 이론을 제안한 인지과학계의 살아 있는 거장이다.

현대과학기술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왔다. 하지만 적어도 인공지능에서만큼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무척 크다.
만화나 영화 속에서야 스마트하고 화려한 능력을 지닌 로봇이 요리도 해주고, 말 상대도 해주고, 또 때로는 질풍노도의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현실의 로봇들은 말 그대로 ‘기계적인’ 작동을 프로그램에 따라 구현할 뿐이다. 개발된 로봇들은 대체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지금까지 등장했던 수많은 자동번역기나 음성인식기들은 엉뚱한 결과를 내놓기 일쑤였고, 한국의 휴보HUBO를 비롯한 인간형 로봇들은 자신에게 입력되어 있는 것을 벗어난 것 앞에서 극도로 무력했다. 이런 인지과학의 실패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혹시 지금까지 인공지능에 대한 학자들의 접근법 자체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은 매우 논쟁적인 태도로 기존 인지과학의 패러다임을 비판한다. 즉 1960년대 앨런 튜링의 제안 이래 인지과학 연구를 자극해온 ‘심적 과정은 곧 계산’이라는 관점에 대해 철학적·개념적·논리적으로 성찰한다. 저자는 이른바 계산주의 마음이론이 가정하는 것처럼 인간 인지가 통사론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마음은 어떤 제한된 요소와 이를 관장하는 유한한 규칙에 의해 지배되는 “국소적 통사 기계”가 아니다. 그보다는 어떤 현상이 주어졌을 때, 그 현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순한 가설을 전체적 맥락에 의존하여 이끌어내는 식으로 인지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 이와 같은 귀추 추론은 인지의 전국성全局性과 맥락 민감성을 명백히 드러내기 때문에, 계산주의가 내세우는 국소적 계산 기계인 ‘모듈’과 근본적으로 부딪힌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주장이다.
이러한 입장은 오늘날 인지과학의 한계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안목을 제공해준다. 계산주의 마음이론은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튜링의 고전적 계산주의는 여러 차례 수정 보완되어 예전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지만, ‘심적 과정은 곧 계산’이라는 핵심적 가정을 유지한 채 연구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름이 높은 인지과학자 스티븐 핑커를 필두로 하는 ‘신종합설New Synthe sis’이 대표적이다. 신종합설은 계산주의와 대량 모듈성 논제, 그리고 적응주의를 세 축으로 하는 이론으로서,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비교적 큰 규모의 답을 내놓고 있다. 즉 계산주의가 가정하는 국소적 통사 기계인 ‘모듈’ 개념을 구조하기 위해 ‘다수의 모듈’을 상정하는 이론을 내놓고, 다시 이 다수의 모듈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것이 ‘진화적 적응의 산물’이라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저자는 계산주의 마음이론에 대한 비판을 시작으로, 이들 신종합설의 세 축을 하나하나 효과적으로 공박해나간다.
인지과학계에 대한 저자의 진단은 참담하다. “인지과학이 마음에 대하여 발견한 것이라고는 대개가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모른다는 것뿐”이며 “인지과학의 현 상황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부터 몇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한다. 하지만 이 책은 인공지능 연구에 찬물을 끼얹기 위한 의도의 책이 아니다. 오히려 연구를 활발하게 이끌기 위해 기획되었다. 새로운 대안으로 방향을 선회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기존의 잘못된 입장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다.
저자의 독설 섞인 주장은 사실, 튜링의 통찰과는 그 줄기는 물론이고 뿌리까지 다른 새로운 인지과학을 향한 구애인 것이다.
제리 포더의 국내 번역서는 1991년 대우학술총서로 발간된 《표상》(민음사)이 전부였다. 저자가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지과학자이자 철학자라는 점을 고려해볼 때, 한국에서 너무 드물게 소개되었다.
특히 이 책은 저자가 본문에서 거듭 강조하듯이 일반 대중을 위해 쓰였다. 만만치 않은 주제의 내용을 다루고 있음에도, 시종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으며 최대한 쉽게 서술하려 한 흔적이 엿보인다. 인지과학의 현황과 쟁점에 대해 한눈에 꿰뚫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안내서가 될 것이다.
제리 포더 지음 | 김한영 옮김 | 선우환 감수 |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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