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편안함을 만끽해야 할 서울광장이 정당, 사회단체 등 시위자들에게 점거당해 폭염 속 몸살을 앓았다.
마치 고대 그리스시대의 열린광장, 아고라 광장을 보는 듯했다. 지지난 주말만 해도 민주당이 광장을 점유해 ‘민주주의 회복과 국정원 개혁촉구 3차 국민보고대회’라는걸 가졌다.
또한 참여연대 등 좌파 성향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국정원 시국회의’에서도 ‘범국민 촛불대회’를 열었다. 같은 시간 광장 맞은편에서는 보수단체 회원들이 맞대응 집회를 열어 서울광장 일대가 정치선동의 장이 됐다. 현장을 지켜본 사람이면 서울 시민들이 한없이 권리를 유린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졌을 것이다.
시민들 세금으로 만들어진 광장을 제발 돌려달라는 서울시민들의 분노스런 눈빛을 정치권이나 사회단체들, 일부 강성 노조 사람들만 못 느끼는 것 같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의 “천막 강도 높일 필요있다”는 투쟁 의지로 봐서 이 점령지 같은 광장 정치는 더욱 극심해질 판이다.
그럴 바엔 국회 국정조사가 왜 필요한지도 모르겠고, 규탄 받아야 할 대상이 정작 누구인지가 헷갈린다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야 정쟁의 종점은 과연 작년 대선 때 국정원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 선거 개입하고 득표 공작을 했는지의 판가름이다.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좌파 단체들은 ‘모’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박근혜 정권의 힘을 빼고 전열을 흩으러 놓을 수는 있다는 판단으로 올인 하는 양상이다.
국정원의 선거공작이 없었다고 해도 어차피 버선목 뒤집어 보이듯이 환하게 당시 상황을 드러낼 수 없는 일에 박 대통령을 억울하게 만들어서 밑질 일 없다는 계산이 분명해 보인다. 문재인 의원 등 ‘친노무현계’가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등을 기소할 때 “검찰 잘한다”고 칭찬했던 말이 아직 생생하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또 “특검 하자”고 주장하는 건 거의 국민 우롱 수준이다.
시비하고 투쟁하는 사람들 귀에는 옆쪽의 다른 말들은 들리지 않고 같이 편드는 소리만 들릴 것이지만, 소위 정치한다는 사람들은 비판하는 목소리를 고루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한사람, 한사람이 나타내는 불만과 비난하는 목소리는 막대기 1개 1개의 작은 회초리에 불과해서 시답잖아 할 수 있으나 회초리가 묶여지면 몽둥이가 되는 변모를 안다면 떼쓰는 정치는 이제 그만 좀 할 때가 됐다.
정치인의 소신이 중요한 것은 정치인은 외부 입김에 유혹 당하기보다 스스로 선택할 자질이 돼야하기 때문이다. 깨끗이 패배를 인정하고 선거 승복을 선언했던 사람이 스스로의 판단을 뒤집고 주위에 유혹되는 현상을 옳게 봐줄 유권자가 크게 있을 수 없다. 이명박 정권 때 천하가 다 알아버린 원세훈 국정원장의 정치개입은 ‘박근혜 사찰’이었다.
그 바람에 대선 직후 ‘친박’ 내부에서는 다른 건 다 몰라도 원세훈 만은 손봐야 한다는 소리가 팽배했다. 만약 원세훈이 선거에 개입한 게 맞다면, 그건 박근혜 후보 당선을 위한 게 아니라 박근혜를 떨어뜨리기 위함이었다고 격앙하는 터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 시비가 일어나자 즉각 “관련 문제들에 대해 국민 앞에 의혹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으나 왜 그런 일이 생겼고, 왜 그런 일을 했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덧붙여 “대선 때 국정원이 어떤 도움을 주지도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고 못 박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야권에서 조차 안했을 것 같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