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공약 폐기·축소 ‘정권 위기론’ 대두

[일요서울ㅣ박형남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 이미지가 대선 당시 재원 마련 등 실현 가능성 논란이 일 때만 해도 “공약은 반드시 지킨다”, “실현 가능한 것만을 공약으로 제시했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던 분위기는 완전히 가셨다. 지난 9월 26일 기초연금 공약이 발표된 이후부터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약속이 나와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의문을 갖게 될 것 같다. 더구나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들이 하나둘씩 폐기되거나 축소되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도 늘고 있다. 대선 핵심 공약 후퇴 논란에 대해 냉랭한 사회적 여론을 볼 때 ‘박근혜 정부 위기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돌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 퇴조는 확연히 나타났다.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들이 줄줄이 축소됐거나 폐기됐다. 50~60대를 겨냥했던 기초연금이 ‘돈’에 발목이 잡혔다.

정부는 내년 7월부터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소득 기준 상위 30%를 제외한 나머지 70%에게 매달 10만~20만 원의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기로 했다.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을 지급하는 대선 공약과 비교할 때 일부 후퇴한 셈이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 청장년층에게 더 적은 기초연금액을 주는 방식으로 설계돼 ‘역차별’, ‘국민 갈등 조장’ 등 비판이 일고 있다.

인수위 때부터 출구전략 마련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등도 후퇴했다. 4대 중증질환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공약집을 보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를 모두 포함”이라고 강조한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에는 당연히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간병비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라며 반발을 예고했다.

그리고 4개월이 흐른 지난 6월,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의 이행 방안을 밝혔지만 ‘전액 국가부담’이라는 공약을 무색게 했다. 고가 항암제와 MRI 등에 한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시켰던 것이다. 카메라내장형 캡슐내시경 같은 ‘의학적 비급여’와 상급병실료·선택진료비·간병비 등은 3대 비급여로 나누었다. 의학적 비급여 일부에 대해선 진료비 20~50%를 지원하고 가격을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인수위가 “공약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힌 만큼 실질적인 공약 이행은 어려울 것이라는 게 복지부 안팎의 중론이다.

경제민주화도 기로에 서 있다.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실현하는 법안들이 곳곳에서 멈춰서 있다. 재계의 반발로 국회에서 발목이 잡혔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일부 법안이 통과됐지만 여전히 뒷전이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주요 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돼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입법 종료를 공식화했지만 상법 개정안은 재계의 반발로 후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담은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주거복지 정책인 행복주택 사업도 축소될 조짐을 보인다. 행복주택은 도심 유휴지와 철도부지에 임대주택을 지어 올해 1만 가구를 시작으로 매년 4만 가구씩 5년간 20만 가구를 짓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탓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목동·공릉·잠실·송파·경기 안산 등 국토부가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지정해 반발을 샀다.

더구나 정부는 다음 달로 예정했던 2차 후보지 선정을 미뤘고, 지난 5월 발표했던 후보지도 오류·가좌 등 2개 지구를 제외한 나머지 5개 지구는 지정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따라서 연말까지 인허가는 오류 1500가구, 가좌 650가구 등 2150가구에 그칠 공산이 크다. 목표치 1만 가구를 달성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검찰개혁 공약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인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 도입은 입법 논의 초기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26일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고, 재논의를 하더라도 제도의 성격과 권한, 운영방법 등 여·야 간의 의견 차가 너무나도 커 쉽게 타결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안보 공약도 아예 폐기된 분위기다. 전시작전통제권을 2015년까지 전환키로 한 공약은 지난 3월 국방부가 미국에 전환 시기 연장을 요청하며 파기됐다. 당시 북핵 위기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은 온데간데없다.

대선 하루 전 깜짝 발표했던 ‘군 복무기간 임기 내 18개월 단축’ 공약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단축을 위한 여건을 조성한다”는 조건을 붙여 사실상 무산시켰다. 중·장기 과제로 정했지만 시행 시기가 명확하지 않아 공약 이해 여부가 불투명하다.

심지어 말 바꾸기 논란까지 일고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해양수산부를 부활하겠다”며 “입지는 부산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최근 당정에서 해수부를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세종시로 이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대규모 예산이 들어가는 지역 사회간접자본(SOC) 공약도 실제 지켜질지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 외에도 반값등록금, 고교 무상교육 등도 축소되거나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대선 공약이 축소되거나 폐기되면서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신뢰’ 이미지는 훼손됐고 ‘불통’ 이미지를 키웠다. 한 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원칙과 신뢰’의 이미지를 통해 국민적 지지를 받았으나 이번 공약 축소로 무너졌다.

특히 박 대통령은 기초연금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할 때 대국민 담화 형식이 아닌 국무회의 말미에 밝히는 형식을 취해 비판여론이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은 “대통령이 국민과의 약속을 못 지켜놓고 국무회의에서 사실상 사과를 하면 국민이 이해를 해줘야 하는 것인가”라며 “국민들 앞에 직접 나서 사과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공약을 지키면 된다”고 질타했다. 야당 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의 실체가 드러났다”며 “준비된 대통령도 쇼에 불과했다”는 반응이다.

朴 캠프 내에서 논란되기도

여권 내에서도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는 분위기다. 새누리당 한 당직자는 “대선 당시 공약을 만들 때 실현 가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엄청난 논란이 일었다”며 “캠프 내에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으나 그 당시 공약을 뒤집을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선 공약이 하나 둘씩 축소되거나 폐기되면서 원칙과 신뢰의 위기로까지 비화되는가 하면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전반에서 추진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대선 공약 축소·폐기 논란과 마주한 박 대통령이 ‘위기론’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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