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군 65주년의 명암

[일요서울Ⅰ오두환 기자] 건군 65주년을 맞은 10월 1일 국군의 날. 이날 치러진 국군의 날 행사는 2003년 이후 10년 만의 최대 규모다. 당일 국방부는 병력 1만1000명, 지상장비 190여대, 항공기 120여대를 동원했으며 군의 최첨단 전략무기인 현무-2·3 미사일과 지상군 무기 109점의 실물을 공개했다. 하지만 이날 치러진 국군의 날 행사는 여러모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군대 내부는 육군사관학교 생도 성폭행 사건, 임신 장교 사망 사건, 차세대 공군 전투기 선정 취소, 국군춘천병원 흉기 난동 사건 등으로 어수선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기강해이·군기문란으로 얼룩진 사관학교
장기적·전문적 안목 부족한 위원회

국군의 날 행사에서 국방부는 ‘현무-3’를 공개했다. 우리 기술로 제작한 순항미사일로 최대 사거리가 1500km에 달해 한반도 내 어디든 타격할 수 있다. 특히 현무-3는 최신 위성항법장치를 장착해 좌표를 수정하며 날아가 북한의 스커드 계열 미사일과 달리 목표물을 1~2m 오차 내로 명중시킬 수 있다.


현무-3 외에는 지난 5월 서해 백령도 등 서북도서에 실전 배치된 이스라엘제 스파이크 유도미사일을 선보였다. 이 미사일에는 카메라와 적외선 영상 시스템이 장착돼 산 뒤쪽은 물론 갱도 안에 숨긴 해안포까지 정밀 타격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K1AI 전차를 비롯해 교량전차인 AVLB, 지휘장갑차인 K-277, 전투장갑차 K-200, 구난장갑차 K-288, 차륜장갑차 바라쿠다, 보병전투장갑차 K-21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서울공항 활주로를 지나갔다. 신궁, 자주발칸, 천마 등 대공 무기와 K-55A1, K-9, K-10 등 포병화기도 선보였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무인 정찰기 송골매와 감시정찰, 지뢰탐지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견마 로봇도 볼거리였다. 공중에선 F-15K, KF-16, TA-50, F-5, F-4 등의 전투기가 공중 기동을 펼치고, 8대의 블랙이글 편대는 화려한 에어쇼를 선보였다. 국군의 날 시가행진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때부터 5년 주기로 개최되고 있다.
 

국군의 날 행사를 관람한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가족과 함께 나온 김모(40·강남)씨는 “아이들과 함께 볼거리가 있을 것 같아 방문했다. 실제 장갑차와 각종 미사일 등을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직장인 윤모(33·관악)씨는 “마치 북한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볼거리를 위해서는 좋을지 몰라도 차라리 군인들에게 하루씩 쉬게 해 주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전했다.


한편 시가행진을 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질서정연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오와 열이 맞지 않거나 발맞춤, 팔높이도 제각각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은 군기가 빠진 것 아니냐”는 말까지 했다.

군 내 성폭력 열악한 의료·생활시설 문제 여전

올여름 육군사관학교는 혹독한 비판에 시달렸다. 교내 성폭행, 해외봉사활동 중 음주에 이어 미성년자 성매매 혐의로 생도가 구속되는 등 계속된 일탈행위로 육군사관학교의 명예는 땅에 떨어졌다. 결국 '육사 혁신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져 사관생도 일탈행위 방지를 위한 기강 쇄신 방안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 올초에는 한 여장교가 임신 중 쓰러져 과로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초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순직처리 문제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고 이신애 중위는 강원도 인제의 한 부대에서 복무 중이던 지난 2월 2일 갑자기 쓰러졌다. 여군사관 55기인 이 중위는 2010년 10월 소위로 임관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시 이 중위는 임신 7개월째에 접어들어 만삭인 상태였지만 다음날 있을 혹한기 훈련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특히 임신 중임에도 부서장의 공석으로 인한 대리 근무 등으로 1월에는 5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 중위는 결국 쓰러져 뇌출혈을 일으켰고 치료를 위해 강릉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제왕절개로 아기를 출산시켰지만 이 중위는 끝내 아이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뒀다. 부대는 이 중위의 임신에 따라 정상적인 진료와 생활이 가능하도록 배려했지만 이 중위는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 왕복 3시간을 오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당초 육군본부는 이 중위를 순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중위의 사망원인인 뇌출혈과 임신성 고혈압은 직무의 급격한 과중 등이 원인이 돼 발생 또는 악화됐다고 보고 9월 10일 육군 측에 이 중위에 대한 순직 인정을 권고했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 원점 재검토로 공군 전력 공백

육군이 성폭력 등의 기강해이와 열악한 의료·생활시설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동안 공군은 차세대전투기(FX) 사업으로 골치를 앓고 있었다.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창군 이래 최대 무기도입사업으로 불릴 만큼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은 전투기 60대를 구입하는 비용으로 8조3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었다.


당초 사업비 한도 내에서 구입이 가능한 F-15SE(사일런트 이글) 전투기가 낙찰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동안 F-15SE 선정이 잘못됐다는 여론과 전문가들의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고 결국 지난 9월에는 이한호 예비역 대장 등 역대 공군총장 15명이 F-15SE를 반대하는 건의문을 청와대와 국방부, 국회에 전달하면서 반대 여론이 극에 달했다.


건의문에는 “북한과 주변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FX사업의 핵심은 스텔스 성능이라며 현재 절차대로 FX사업이 추진될 경우 스텔스 기능이 미약한 F-15SE가 선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F-15SE는 아직 생산된 적이 없어 효용성에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업비를 초과하더라도 3개 기종에 대해 종합 평가한 뒤 1위 기종이 선정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방위사업추진위원회는 9월 24일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번 차세대 전투기 사업 재검토로 공군 전력에 공백이 생기게 됐다는 점이다. 공군은 당초 2019년까지 F-4와 F-5 전투기 100대를 퇴출시킬 예정이었다. 그 빈 자리를 차세대 전투기로 메울 계획이었으나 이제는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  

freeore@ilyoseoul.co.kr

 

“티코를 개량해봐야 마티즈밖에 더 되겠냐?”
2000년 이후 F-5 사고 8차례, 조종사 13명 순직


 방위사업추진위원회의 F-15SE 선정 부결로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는 보잉 F-15SE, 록히드마틴 F-35A,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 유로파이터 등 3개 기종이 입찰했으나 F-15SE만 총사업비 8조3000억 원 이내의 가격을 제시해 단독후보로 방추위에 상정됐었다.


하지만 F-15SE은 1970년대 개발된 구형 전투기 F-15를 개량한 것이어서 사업 초반부터 노후 기종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에게는 티코를 개량해봐야 마티즈밖에 더 되겠냐는 비아냥거림까지 들었다.


기체를 변형하고 도료를 새로 칠해도 적의 레이더망을 피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앞으로 30년 이상 한국 영공을 책임질 차세대 전투기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공군에서는 스텔스 기능이 뛰어난 록히드마틴의 F-35A를 선정해야 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의 F-15SE는 보잉이 합병 전 맥도널 더글러스의 F-15E 스트라이크 이글을 기반으로 개발한 전투폭격기다.


컨포멀 무장창과 레이더파 흡수코팅, F/A-18E/F와 같이 외측에 10도 경사각을 둔 수직 꼬리 날개나 엔진 공기 흡입구에 레이더 블로커를 장비해 스텔스 기술을 시도한 수출용 전투기다.


보잉은 F-15 패밀리를 미국 공군 이외에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 5개국에 도입을 제안했으나 2012년까지 도입한 나라는 없었다.

최상의 전력 유지 가능한 전투기 선정 필요

F-15SE는 기체 일부에 레이더파 흡수코팅을 했다. 기체 정면의 레이더 반사 면적을 줄이기 위한 대책이다. 하지만 스텔스기로 설계된 기체가 아니기 때문에 정면을 제외한 측면이나 후면에는 레이더파 저감대책이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비가시거리 전투상태의 공대공전에서는 어느 정도 효력을 발휘하지만 공대지 작전에서는 효과가 전혀 없어 5세대기 임무를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공군은 당초 차세대 전투기가 선정되면 F-5와 F-4E 팬텀을 퇴출시킬 예정이었다. F-5는 1974년에 들여와 40년간 한반도 영공을 지켜왔고 F-4E는 국내에 도입된 지 37년째다. 은퇴시기를 훌쩍 넘겼지만 이들의 퇴임은 더 미뤄지게 됐다.


최근 공군 대위로 전역한 박모(34)씨는 “차세대 전투기 선정과정을 지켜보면 씁쓸한 마음뿐이다. 최신 기종의 최고 전투기는 아닐지언정 최상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는 전투기를 선정해 줘야 조종사들도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전역 직전까지 F-5를 조종했다.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한국 공군이 운영하는 F-5 계열 전투기에서 사고가 발생한 것은 모두 8차례다. 기체 11대가 손상됐고 조종사 13명이 순직했다. 조종사가 사망하지 않은 사고는 2008년 11월 1건과 지난 9월 26일 증평에서 추락한 사고 1건뿐이다.

증평에 추락한 비행기에서 조종사가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새롭게 교체된 사출좌석 때문이었다. F-5에 원래 장착돼 있는 사출 좌석은 40년 가까이 돼 일정한 고도와 속도에서 탈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았다.


그래서 공군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460억 원가량을 들여 180여대의 F-5 사출 좌석을 영국산 신형으로 교체했다.<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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