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북한의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안북도 신의주의 철강생산 설비인 ‘제철종합기업소’를 현지지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웃한 평안북도 용천군에 있는 한 기계설비 공장을 돌아본 것과 함께 신의주 지역 방문에 나섰다는 게 보도 요지다.올해 첫 현지지도 보도가 군부대 방문 같은 군부에 대한 배려행사가 아닌 경제현장의 시찰이란 점에서 김 위원장이 올해 경제 챙기기에 나설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특히 용천지역이 지난해 4월 용천역 폭발사고의 참상이 벌어졌던 곳이란 점에서 민심 달래기 성격도 있다는 풀이였다. 산업시찰 성격이라지만 용천소학교와 주택 등 복구현장을 둘러봄으로써 신의주 일대 주민들에 대한 김정일의 배려를 과시하려는 성격도 있다는 게 정부 당국의 판단이다.

그런데 이날 김 위원장의 동정보도에는 날짜가 없었다. 김 위원장의 신의주 지역 방문 소식을 전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방문날짜가 빠져버린 것이다. 김정일의 동정을 추적하는 일을 맡고 있는 우리 정보기관은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한 당국자는 “이라크전쟁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시점을 전후해 북한 관영 매체들에서 김정일 동정과 관련한 날짜가 사라졌다”고 말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동정을 보도하면서도 날짜를 명시하지 않는 것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반체제 세력에 의한 위해기도나 외부세계의 김정일 체제 전복움직임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가의 정보기관이 평양은 물론 북한 곳곳의 시설물들과 김정일 위원장을 비롯한 핵심 권력층 인물의 일거수 일투족을 체크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김정일 체제를 전복하기 위한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들어 부시 행정부의 김정일 체제에 대한 노골적인 반감이 드러나고 있고 9·11 테러 이후 국제 테러단체들이 준동하고 있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한 국가의 정보당국 최고책임자는 김 위원장이 유럽의 한 국가에 있는 여성과 나눈 통화내용을 사석에서 공개했다가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을 정도다.특히 지난해 4월 용천역 폭발사고 당시 단순 사고가 아닌 김 위원장을 노린 계획적인 폭발이었다는 설도 제기된 터라 북한 당국의 우려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이 중국방문을 마치고 신의주를 거쳐 특별열차편으로 귀환하는 시점에 맞춰 가공할 위력의 열차사고가 났다는 배경에서다. 또 당시 폭발이 핸드폰을 이용한 타이머 장치로 벌어졌다는 관측까지 제기됐고, 뒤이어 북한 당국이 외국인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핸드폰을 수거한 일이 알려지면서 김 위원장의 신변을 보호하는데 북한 정보기관이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는 게 감지됐다고 한다.김 위원장의 경호문제는 우리의 경호실 격인 호위사령부가 맡는다.

또 군부대 방문 시에는 우리의 국군기무사령부 격인 인민군 보위사령부가 담당한다. 부대방문의 경우 수 개월 전부터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에서 전투훈련과 시범공연 연습이 이뤄지며 부대 내의 탄약류 등은 모두 수거해 봉인한 상태에 들어간다. 또 경호문제는 전적으로 군복차림의 군이 담당하며 김 위원장의 차량 부근은 물론 가시거리나 화기로부터의 사거리 내에는 일절 주민들의 접근을 불허함으로써 위해요인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한 고위 군출신 탈북자는 “과거에도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은 날짜를 공개하지 않거나 아예 틀린 날짜를 내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때문에 자기 부대를 방문한 김정일이 엉뚱하게 다른 날짜에 자기 부대를 다녀간 것으로 나오거나 일정 자체가 뒤죽박죽돼 중앙TV등에 나오는 일도 많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병출신 탈북자는 “우리 부대를 방문한다고 해서 전투훈련과 태권도 시범까지 죽어라고 해서 시범을 보였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는데 나중에 나오는 화면은 다른 시범단이 한 행사여서 놀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군부대 방문 시 늘 수행하던 군부 핵심인물만을 지근거리에 접근을 허용한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이들은 10여명으로 대부분 이른바 혁명 2~3세대로 불리는 인물들이다. 김정일과 연배가 비슷한 50~60대 인물로 앞으로도 북한군 핵심으로 군사정책을 좌지우지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들 군부 핵심그룹은 김정일의 군 인사개편과 진급수혜자, 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들이 주를 이룬다. 또 총참모장, 총정치국장과 각 군 사령관 등 주요 직책 보직자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서도 김정일의 군부대방문시 늘 따라다니며 사진촬영을 함께 하거나 하는 등의 군부 인물은 출세를 보장받고 있는 셈이다.이처럼 철저한 김 위원장의 측근관리와 경호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에 대한 위해설은 심심찮게 나왔다. 북한군 친위대의 고위 장교가 부대방문 중인 김 위원장을 총격하려 했다거나 차량으로 밀어붙였다는 소문 등이다.

지난해 말에는 김정일 위원장에 대한 피격설까지 서울을 비롯한 국제 증권시장 등에 나돌아 주변국 정보기관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결국 해프닝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김정일에 의해 실각된 장성택 전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의 아들이 김 위원장을 권총으로 저격했다는 그럴 듯한 스토리는 언제든지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북한 김정일 체제에 대한 권력핵심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주민들의 반감도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김 위원장의 후계체제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커질 조짐이 있다는 점에서 한미 정보당국의 정보채널을 총가동하고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김 위원장이 군부를 확고히 장악하고 있고 핵심 측근들로 방어막을 치고 있다지만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절대 권력자일수록 가장 믿었던 최측근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은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행보에 서울의 정보통뿐 아니라 주변국의 정보망이 총가동돼 안테나를 돌리고 있는 것도 이런 정황 때문이다.

조명록·김영춘·이명수 김정일 지근거리 보좌‘3인방’

김정일 위원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95년10월부터 10년간 군총정치국장을 맡고 있는 조명록 차수는 그 가운데서도 핵심이다. 2000년 북미간에 화해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이 특사로 워싱턴에 보내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면담한 사람이 조명록이다. 또 총참모장 김영춘 차수는 작전국장을 거쳐 조명록과 함께 95년 북한군의 수뇌부로 등장했다. 대장그룹에서는 총정치국의 조직담당 부국장인 현철해가 핵심이다. 그는 엘리트 장교의 산실이라는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후방총국장으로 근무하면서 북한군의 군수분야를 책임졌다.

김정일 위원장이 그에 대해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는 96년 조카 현성일이 남한으로 망명했는데도 여전히 건재하고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다. 현철해와 함께 김정일을 수행하는 인물은 총정치국 선전담당 부국장인 박재경 대장이다. 그는 93년 이후 김정일의 군내 우상화 작업을 마무리 한 공을 인정받아 중용됐다. 2000년 9월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선물한 송비버섯을 고려항공기에 싣고 직접 군복차림으로 서울에 왔던 인물이다. 북한군 작전국장인 이명수는 2000년10월 김일성 광장에서 진행된 군사퍼레이드에서 김정일에게 직접 행사 상황을 브리핑하는 모습이 관찰되는 등 핵심측근으로 분류된다. 이들 대장그룹은 김정일의 현지지도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3인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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