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장성택 처형을 계기로 김정은 체제 불안과 붕괴설이 확산되면서 남한의 북한 흡수통일 기대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올해는 통일법제를 위해 각 부처가 협업하는 원년(元年)”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북한의 적화통일을 배제하고 우리의 흡수통일을 전제한다고 했다.
서울의 주요 일간지들은 흡수통일에 대한 특집 마련에 열을 올리고 있다. 흡수통일 되면 ‘2025년 국력 세계 5위로’ 등 장미빛 제호들로 지면을 채웠다. 한 일간지가 21일 국내외 연구소들과 공동으로 주최한 통일관련 국제회의에서는 “한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통일”에 관한 담론이 열기를 띠었다.
흡수통일론 확산에 편승, 대북 퍼주기 논란도 다시 고개 들기 시작했다. 한 일간지는 대학 연구소의 연구결과를 인용, 통일 비용을 줄이기 위해 통일 전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의 국민소득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했다. 현재 남한의 5% 수준인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2025년부터 우리 정부의 보조금을 통해 2050년까지 50%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도 살기 빠듯한데 북한에 남한적화를 위한 군자금을 대주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정부와 언론 매체들의 호들갑스러운 흡수통일 담론은 어느 새 흡수통일이 다 되어가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한다. 물론 흡수통일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통일은 우리의 소원대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북한이 버티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흡수통일 자만심은 65년 전 이승만 정부 당시 호언장담했던 북진통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 대통령은 1949년 10월 7일 미국 UP통신의 조세프 존스 부사장과의 회견을 통해 무력통일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그는 “우리는 3일내로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며 미국에 무기를 달라고 다그쳤다.
이 대통령이 무력통일에 자신감을 표명하자 신성모 국방장관은 한 술 더 떴다. 그는 11월 1일 기자회견을 통해 “미국의 만류로 북진하지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북진하여 며칠 내에 충분히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밖에도 그는 “수도 서울에 대한 아군의 방위는 완벽하며, 지금이라도 대통령각하께서 북진명령을 내리신다면, 우리 군은 즉각 38선을 돌파. 평양으로 진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과 장관이 북진통일을 공언하자 서울에서는 허무맹랑한 말이 떠돌았다. 국군의 북진이 시작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 대한민국은 북진통일 환상에 빠져 대북경계심마저 해체해 버렸다. 결국 “아군의 방위는 완벽”하다던 서울은 북한의 기습남침 3일만에 인민군 탱크에 의해 처절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작금의 우리나라도 흡수통일을 장담하다가 65년 전처럼 또 북한에 기습당하는게 아닌가 두렵다. 흡수통일 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이겨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만만치 않다. 경제적으로는 파탄상태이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120만 대군을 거느리고 있다.
주민들은 “어버이 수령”체제로 묶여있고 선군주의 병영국가이며 중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 도리어 북한은 남한 내 종북세력과 내통하면서 남한 자유체제 전복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흡수통일을 장담한다는 것은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치국부터 마시는 격이 아닌가 싶다.
65년 전 “3일내로 평양을 점령할 수 있다”던 허풍과 자만 속에 북한에 당했던 통한의 비극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흡수통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도 장미빛 흡수통일 자만심만은 경계해야 함을 덧붙여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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