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정보수집의 중추신경 기관인 국가정보원이 간첩 혐의자의 증거를 조작해 사면초가에 몰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국정원 “증거 자료의 위조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며 “문제가 드러나면 반드시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증거 자료 위조논란의 중심에는 중국 화교출신 유우성(34세)씨가 있다. 그는 북한에서 의학을 전공했으나 북한의 어두운 현실에 실망, 중국을 거쳐 2004년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는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후 2011년 서울 시청의 계약직 공무원으로 취업했다.

그러나 그는 시청 공무원이 되기 전인 2006년 5월 북한에 거주하던 모친 상을 당해 함북 회령에 다녀왔다. 여기에 국정원은 유씨가 그 후 다시 북한에 들어갔다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뒤 간첩으로 암약했다고 보았다. 국정원은 유씨의 컴퓨터에 저장된 200여 명의 탈북자 명단이 북한에 넘겨진 것으로 판단, 간첩 행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유씨는 국정원의 모든 간첩혐의들을 부인했다.

유씨의 주된 간첩혐의 입증 근거는 그의 여동생 진술에 기반하였다. 하지만 유씨 여동생이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진술을 국정원의 강압에 의한 것이었다며 번복하였다. 작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유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자 국정원은 1심 무죄판결을 2심에서 뒤집기 위해 무리수를 썼다. 국정원은 1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선 유씨가 북한을 두 차례 왕래했다는 출입국 증거가 필요했다. 국정원은 2차 왕래 서류 생산을 위해 지난 5일 자살을 기도했던 중국 국적의 김 모씨(61)를 동원하였다. 김씨는 중국에 가서 유씨가 ‘출-입-출-입’ 두 번 했다는 기록 서류를 뗐다며 허룽(和龍)시 공안당국의 확인 관인까지 가짜로 찍어 국정원 측에 넘겼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증거조작이 발각되자 자살을 기도했고 유서에서 중국 측 자료는 가짜라고 고백했다. 국정원 소속의 중국 선양(瀋陽) 총영사관의 이 모 영사는 허룽시 공안당국을 찾아가 김씨에 의해 조작된 2차 출입국 기록문서 발급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는 확인서를 서울로 보냈다. 그러나 이 영사는 허룽시에 가지도 않고 앉아서 가짜 확인서를 만들었던 것이다.

유씨가 간첩인지는 사법당국의 최종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국정원의 간첩혐의 증거 조작은 이 기관의 새로운 치부를 드러냈다는 데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건대 국정원은 1961년 김종필씨에 의해 ‘중앙정보부’란 이름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그 후 반세기 동안 권위주의 정권 시절 집권자의 권력시녀, 야당인사 탄압, 권력형 부정부패 등으로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 국정원의 탈법적 관행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되면서 크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종북정권 시절엔 종북정책 도구로 전락되었다. 그동안 상당수 국정원 수장들은 정권이 바뀌면 천문학적인 부정취득 재산을 몰수당하거나 탈법행위로 쇠고랑을 차고 감옥으로 끌려갔다. 아니면 조사를 받는 수모를 당했다. 초대 김종필 부장을 비롯 이후락, 김형욱, 장세동, 권영해, 임동원, 김만복, 등이 그런 불행한 사람들이다.

다행히 국정원은 민주화와 함께 권력 도구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긴 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최근 유씨 혐의 증거조작을 계기로 새로운 양태의 탈법집단으로 전락되었다. 집권자를 위한 게 아니라 국정원의 존재적 가치와 구성원들의 실책을 덮고 업무 실적을 띄우기 위해 증거자료를 조작하기에 이른 것이다. 여기에는 국정원 대공수사국 팀이 관여했다고한다. 국내외적으로 대한민국 정보기관의 신뢰와 국격을 떨어뜨린 작태이다. 뼈를 깎는 자기반성과 과감한 인적 제도적 쇄신으로 끝없이 추락한 국정원의 신뢰와 위상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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