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은 분단 속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에게 적지 않은 교훈을 주었다. 힘 없으면 영토도 국민도 빼앗기고 우방의 도움도 없다는 값진 교훈이 그것이다.

원래 크림 반도는 제정 러시아의 영토였다. 그러나 1954년 니키타 후르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크림을 9개 소련 연방국들 중 하나인 우크라이나 공화국에 편입시켰다. 러시아계 주민은 58.5%로 다수를 차지하고 우크라이나계는 24.4%이며 타타르계는 12.1%이다.

크림 반도는 우크라이나에 흡수 되었지만, 그 후 러시아계 주민들은 여러 차례 러시아 합병을 요구하였다. 그러던 중 지난 2월22일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친 러시아 정책을 강행하려다 폭력시위로 쫓겨나자, 그에 불만을 품고 크림의 러시아계 주민들은 러시아 합병을 주민투표로 결정하였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합병에 서명하였다. 러시아의 크림 합병은 다음 세 가지 뜻 깊은 교훈을 남겼다.

첫째, 우크라이나 집권층의 무능과 실정이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자초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후 소수 기업인과 정치인 유착의 과두정치로 전락되었다. 정치권은 철저히 부패했고 표를 의식한 복지 포퓰리즘(대중영합선동)에 빠져 세금 삭감, 최저임금 인상, 연금 인상, 무상 의료, 등을 외쳐댔다. 10년간 최저 연금은 10배로 뛰었고 최저 임금도 5.6배나 올랐다.

결국 2008년 경제는 파탄되어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아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경제파탄과 부패속에 러시아계 주민들은 소련 지배 시절을 그리워했다. 러시아의 크림 합병은 우크라이나 집권층의 무능과 부패가 자초한 저주이다.

둘째, 한 국가의 영토는 우방국들이 보호해줄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후 서방진영 편에 섰다. 그러나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가 러시아에 합병되는 것을 막아주지 못했다. 다만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 등 말로만 호통쳤을 뿐이다. 그러는 동안 러시아는 군대를 동원해 크림 반도를 접수해버렸다.

셋째, 국제관계는 합의문이나 약속이 아닌 힘이 지배한다는 냉혹한 현실을 입증해주었다. 1991년 소련 제국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혼돈 속에 무기력해졌다. 그 틈을 타고 서방진영은 냉전 시절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불가리아·헝가리·체코·폴란드 등 10여국들을 유럽연합(EU)과 나토(NATO:북대서양방위조약) 회원국가로 가입시켜 대 러시아 포위망을 좁혀갔다.

당시 빈사상태에 빠진 러시아는 바라만 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후 러시아는 내정을 안정시키고 경제력을 회복하면서 주변국들을 다시 러시아 영향권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2008년 조지아 공화국 내의 ‘사우스 오세티아‘가 조지아로부터 분리 독립을 기도하자, 러시아는 조지아로 전격 침공하여 사우스 오세티아를 독립시켰다. 이어 러시아는 크림 반도를 합병함으로써 옛날의 러시아 해군 요충지를 다시 수중에 넣었다. 다음엔 러시아 인구가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아니면 몰도바 등 어디로 뻗어갈지 예측할 수 없다.

그렇지만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지쳐버린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오세티아 분리와 크림 합병을 적극 나서서 저지하지 못했고 경제제재를 말로만 외쳐대는데 그쳤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고작 러시아의 G8 정상회의 참가 자격을 박탈하는 것으로 그쳤다. 사후약방문에 지나지 않는다. 국제관계에서는 오직 힘만이 통한다는 것을 입증해 준 것이다.

크림 반도 합병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존립과 통일 또한 힘에 의해 지배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케 되었다. 20세기 초 일본에 합병되었던 조선조의 무능과 비운을 떠올리며 오직 든든한 국력 배양만이 국가 존립을 지킬 수 있다는 교훈을 새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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