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자로서 부조와 화환은 일절 받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부조하실 분은 통장계좌로 보내달라. 청와대 비서실장 김우식.”청와대관련 인사를 사칭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이번엔 최근에 아들의 혼례를 치른 청와대 비서실장을 사칭해 한탕 하려던 3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지난 2일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을 사칭해 결혼 축의금을 챙기려했던 김형민(33·가명)씨에 대해 사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7억 손실 보자 한탕 노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99년 대학을 졸업하고 S 증권에 근무했던 전직 증권맨 출신이다. 하지만 김씨의 직장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증권회사 대리로 근무하던 중 무리한 투자를 했다가 2001년 9·11테러 여파로 주가가 폭락하면서 고객 들에게 7억여원의 손해를 입혔다. 김씨는 부모님의 손을 빌려 막았고, 자신은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2년 회사를 그만 두었다. 김씨는 이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재기를 노렸지만 실패를 거듭했고 부모님에게 7억원의 부채를 안긴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그럴수록 김씨에게 ‘한탕’에 대한 생각이 강해졌다. 그러던 중 PC방에 들렀다 우연히 ‘청와대 김우식 비서실장의 아들이 결혼한다’는 기사를 접했다. 청와대 관련 인사를 사칭해 사기를 벌였다는 뉴스를 몇 차례 접한 적이 있었던 김씨는 이를 ‘한탕’의 좋은 기회로 여겼다.

비서실장의 이름을 사칭하면 거액의 축의금이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비서실장 대학 동문들과 대기업 CEO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로 한 것. 김씨는 곧바로 행동에 착수했다. 먼저 축의금을 받을 통장이 필요했던 김씨는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떠올렸다. 이에 인터넷을 통해 대포통장 유통업자와 접촉, 김모(23·여)씨 이름의 계좌등 1계좌당 15만원씩 주고 10계좌를 구입했다. 편지를 보낼 대상은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인물정보 검색란을 통해 30명을 확보했다. 김씨는 이들에게 “연세대 동문 귀하’라는 제목으로 ‘5월 29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제 막내아들의 결혼식이 있다”며 “공직에 있는 관계로 공식적으로 축의금을 받을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축의금을 내실 동문은 아래의 계좌로 송금해 주기 바란다”고 적은 편지를 발송했다. 편지하단에는 ‘청와대 비서실장 김우식 올림’이라는 문구와 함께 모 은행 계좌번호를 적었다.

검찰고위직 인사를 사칭

김씨의 편지는 실제 한국 마사회장, H약품 부회장 등 주요 경제계 인물과 연세대 동문들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김씨의 바람은 허사로 돌아갔다. 김씨의 편지를 받은 인사들이 청와대로 확인전화를 했고, 이같은 사실을 접한 청와대측은 곧장 사정비서실을 통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 또 청와대 윤태영 대변인이 27일 직접 브리핑을 통해 “29일 김우식 비서실장의 아들 결혼식을 앞두고 김 실장을 사칭해 연세대 동문들을 상대로 모 은행 계좌로 축의금을 입금시키라는 사기편지가 발송되고 있다”며 조심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청와대로부터 사건을 접수받은 경찰은 즉각 해당 계좌에 대해 거래정지를 내려 다행히 축의금이 전달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또 편지에 적힌 계좌번호를 역추적한 끝에 계좌주인 이모(23)씨를 찾아냈고 이씨가 이 통장을 인터넷을 통해 대포통장 수집책에게 팔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 대포통장이 흘러간 경로를 추적, 김씨를 검거했다. 경찰조사결과 김씨는 청와대 비서실장만을 사칭한 게 아니었다. 고려대 출신인 김종빈(현 서울고검장) 전 대검차장과 성균관대 출신인 서영제(현 대전고검장) 전 서울고검장을 사칭해 돈을 챙기려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사칭해 편지를 보낸 수법과 비슷했다. 인터넷을 통해 수집한 각 대학 동문들에게 “우리 대학 출신의 검찰총장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 총장 승진을 위해서 17대 국회의원을 만나서 로비를 할 수 있도록 동문회와 동문들이 도와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고 돈을 요구한 것. 결국 김씨는 ‘한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철창으로 향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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