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에 불이 났다. 아직도 기세 등등한 폭염을 조롱하기라도 하듯 이번에는 13억 인민으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열기가 중국대륙을 온통 벌겋게 달구고 있다. 아테네 올림픽에서 중국은 대회 첫날부터 사격에서 여자 10m 공기소총의 두리와 남자 10m 공기권총 부문에서 왕이푸의 금메달 획득을 비롯, 상승일로의 중국경제를 상징하는 듯한 예상외의 선전을 기록하고 있다. 외국에서의 이러한 상황은 부풀리기와 축소의 달인인 중국매스컴들을 통해 잘 조리되어 중국대륙으로 전달되고 있다. 그 결과 요즘의 중국 텔레비전이나 신문매체는 중국국기와 국가로 온통 붉게 도배되고 있다. 올림픽 경기를 위해 3일만에 무려 4kg을 감량, 그 노력에 힘입어 남자역도 62kg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쉬지용 등 ‘올림픽 영웅’들의 분투장면과 그들의 일대기가 오성홍기와 더불어 중국인민들의 눈길을 꽉 붙들고 있다.

“반드시 라오쉬(‘라오(老)’는 친밀한 사람에게 붙이는 중국식 호칭)의 식당에서 그가 만든 음식을 먹을 거예요.” 쉬지용이 단기간의 감량에서 오는 허기때문인 듯 선수 은퇴후 음식점을 개업하겠다고 인터뷰한 장면을 보고 자랑스레 말하는 대학생 따오용(陶勇)의 말이다. 대부분이 대학교의 좁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는(TV도 없는) 학생들을 위해 대학측은 식당을 24시간 개방하여 주었으니 따오용은 올림픽 시작이후 이곳 주변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을 당할 자 그 누가 있겠는가! 힘내라 힘내라! 중~국” 개인주의 성향으로 유명한 중국인들. 더구나 하나 둘씩 모여 든 낯선 이들의 집단이건만 어느덧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된 그들 입가에서는 중국국가 “의용군행진곡”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상하이 외곽에 위치한 한 조그만 이발관. 이곳에서도 중국팀의 선전으로 인한 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쭝꿔 찌아요!!(中國加油,중국 파이팅!)”, “미국을 깨부셔라!!”, “일본놈들을 아주 박살내버려라!!”자신은 미국이 너무 싫다고 소개하는 이발사 쭈량츈(朱良春·33세). 그는 중국이 특히 미국을 이길 때 너무 기분이 좋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반응은 비단 그에게 국한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중국 인민들의 ‘원수’요 ‘앙숙’인 일본은 말할 필요도 없고 미국에 대한 감정 또한 곱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한 이들의 감정은 잘 나가는 경제 덕에 한층 자신감을 쌓아가고 있는 중국이지만, 이를 곱게 내버려두지 않고 있는 미국이라는 정치역학적 구조속에서 비롯된 바 적지 않다.

게다가 중국인민들을 의식하고 부추기기라도 하는 듯 중국의 관영 CCTV등 언론매체들은 중국팀에 패한 미국팀의 처참한 모습을 반복해 방영, 인민의 뇌리를 자극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속에서 중국인민들은 그동안 짓밟히며 키워왔던 미국에 대한 자존심과 일본에 대한 울분을 해소하며 더 나아가 승천하는 중화민족주의를 감격스레 느끼고자 하나씩 둘씩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 정치학자 웬모(40대)씨에 의하면 중국정부의 말못할 고민이 시작된다. “현재 집권 공산당은 내심 긴장하고 있을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이건 인민들이 이렇게 자주 모이기 시작하면 자신들에게 결코 득이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일반적으로 스포츠는 독재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각종 국내문제에서 파급된 사회적 갈등및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리는데 자주 활용되어 왔다.

그리고 이는 작금의 중국상황과 관련, 상당수의 전문가가 동감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을 사랑하기 때문에 반체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그는 다소 다른 견해를 피력한다. 현재 중국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을 비롯한 외부세력으로부터의 공격이 아니라, 다름아닌 중국내부로부터의 인민봉기라고 한다. 그 많은 인구가 한 목소리가 되어 반정부운동을 전개하면 그 누구도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민봉기는 사람들이 모여야만 가능하므로 이를 원천봉쇄하고자 공산당은 스포츠 등의 경우를 제외, 여하한 형태를 막론하고 인민들의 군집 및 단결을 저해하여 왔다고 한다. 파륜궁에 대한 당국의 철저한 탄압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스포츠는 예외이고 보니 영악한‘불순분자’(중국정부에서 볼 때)들이 스포츠에 모인 군중들을 교묘히 물들이는 ‘불충한’언행을 보이므로 이에 공산당은 대규모 스포츠행사에서의 인민들의 운집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전에 있었던 중`일의 축구대전에서 중국측이 맹견까지 동원하는 삼엄함을 보인 이유는 일본인 보호라는 허울보다는 그 이면에 있는 중국정부의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라고 그는 분석한다.

“13억 중국인들의 저력과 우수함이 있는 그대로 잘 발휘되고 있는 올림픽이지만 중국의 사회갈등이 이 상태로 지속되면 스포츠에 대해 열광하는 13억 중국인들의 저력이 그대로 대정부 저항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웬박사는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자칫 이어질지 모르는 중국의 혼란과 균열이 우려되어 올림픽의 승전보를 액면 그대로 즐길 수 없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이와 관련 기자의 지인인 독일인 강사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떠오른다. “스포츠 민족주의가 중국인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자극이란 것이 럭비공과 같아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튀어나갈지 모르는 게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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