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벼운 관객마저도 두드리는 파동과 몰입감

[일요서울|이창환 기자] 2014 두산인문극장(324~75)불신시대라는 주제를 가지고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불신시대란 키워드에 걸맞는 무료 강연과 영화 및 다큐멘터리 상영, 전시와 연극까지 다채롭다. 이 단어 자체는 시의적절하게도 현재 우리가 분노하는 쟁점과도 들어맞는다.

엔론은 2014 두산인문극장 동안 공연되는 3편의 연극 중 두 번째 작품이다. 미국 초거대 기업의 비리와 스캔들을 소재로 지어졌으며, 실제 사건의 재판은 아직까지 진행 중이다. 엔론은 영국의 차세대 천재 희곡가 루시 프레블의 극본으로, 2009년 영국 초연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연출 루퍼드 굴드는 연출상을 수상했다.
 
 
 
엔론은 CEO와 경영진들의 비도덕성이 기업을 어떻게 흔들고 파멸 시키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기업판 맥베스로 불리는데 국내판 또한 뛰어난 연출과 연기로 원작 강렬함을 잇고 있다.
연출 이수인은 현대 자본주의 속 인간의 탐욕과 허영을 블랙유머를 깃들여 표현했고, 배우들 또한 135분이라는 시간을 전혀 흐트러짐 없이 쥐고 간다.
 
 
 
그중 배우 유연수는 올해 초 호평 받았던 연극 은밀한 기쁨에서의 진중하면서도 코믹한 존재감을 그대로 이어왔다. 배우 김영필의 경우 올해 초 공연됐던 헤르메스에 이어 또다시 돈에 집착하고 지배당하는 인물을 맡게 됐는데, 그 능숙함과 절제가 한 단계 발전한 듯한 인상을 받았다.
 
흔한 이야기로 한 개의 좋은 작품이 비인기 스포츠나 전공학과의 관심을 이끈다고 한다.
두산인문극장의 불신시대를 통해 선보인 엔론이 소재 한계에 봉착한 국내 연극계에 자극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경제 흐름이나 용어가 등장하기 때문에 대중들이 거부감을 가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지만 좋은 작품은 이를 상쇄할만한 매력을 갖고 있다. 관객들이 전문 지식이 있어서 수학자, 증권가 배경의 할리우드 영화에 감동 받는 것은 아니니까.
엔론에서 아쉬운 점은 없었다. 다만 공연기간이나 마케팅의 규모가 작은 것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생긴다.

 

줄거리:
맥킨지 자문 회사의 임원이던 제프리 스킬링은 엔론 회장 켄 레이의 입사 제의를 받고 엔론에 합류한다. 해외 부문 사업을 담당하는 클로디아 로와 사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던 스킬링은 에너지 공급 외 전력, 천연가스 등 상품 매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것을 제안해 추진하고 엔론은 미국 내 가장 혁신적인 기업으로 호평을 받으며 연일 최고가의 주가를 기록한다.
하지만 무분별한 사업 확장과 기업 인수로 자금 부족에 시달리게 되자 스킬링은 자신의 추종자 앤디 패스토우를 CFO에 임명해 분식회계로 대차대조표를 조작하고 특수목적 법인을 설립해 건실한 기업으로 위장한다. 하지만 결국 엔론의 상황에 의구심을 품게 된 시장과 분석가들에 의해 엔론의 재정상태가 폭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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