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짱’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의 모임으로 알려진 ‘일진회’가 또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난 12월13일. 수원의 5개 중학교에서 집단난투극을 벌인 일진회 학생들이 경찰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주민의 신고에 의해 세간에 알려진 이번 사건은 그동안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일진회’ 등 중·고등학교의 학교폭력이 크게 줄었다는 교육당국의 발표를 무색케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영화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등의 스토리와 맞아떨어져 ‘영화가 폭력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를 입증한 셈이 됐다.

게다가 각 학교 일진회 ‘짱’들이 서로 연루돼 있고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단합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쪽팔리면 학교생활 쫑이죠.”수원 K중학교 일진회 ‘짱’ 정모군(13)의 말이다. 수원중부경찰서(형사2부)에 따르면 정군은 겉으로 보면 여느 중학생들과 다를 바 없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조금 더 ‘건들거린다’고 느껴지긴 하지만 결코 ‘튀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군의 권력(?)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였다. 정군을 떠받들지 않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

인터넷 채팅이 화근

정군은 지난 11월12일 인터넷 모 채팅사이트에 접속해 소위 ‘노는 물이 다르다’는 일진들 모임방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었다. 수원 H중학교 ‘짱’ 김모군(13)과 시비가 붙은 것. 이들은 ‘너네 학교는 구리다’, ‘그 학교에 그 학생’ ‘쓰레기 같은 애들만 모여있다’ 등 서로의 학교를 비방했다. 게다가 거침없는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말다툼 끝에 이들은 1주일 뒤 ‘맞짱’ 싸움을 하기로 합의한다. 1주일 후인 19일 오후 4시경. K중, H중의 각 일진회 회원들은 수원 권선구 모 아파트 인근 야산에 모였다. 처음엔 각 학교 일진회 회원 일부만 모였으나 이들은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기 위해 수원지역 6개 중학교와 안산, 화성 등 8개 중학교 일진회 학생들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인 일진회 학생들만 수십여 명에 달했다. K중 정군과 H중 김군은 각 학교를 대표해 ‘1대1’로 맞붙었다.

학생들은 이들을 빙 둘러싼 뒤 싸움을 부추기며 난투극을 독려했다. 싸우고 쉬고를 반복하며 먼지나게 싸우기를 30여 분. 그러나 이들은 이내 인근 주민의 신고에 의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다. 일명 ‘맞짱’ 싸움을 벌인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다.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됐지만 문제는 그때부터다. 집단난투극의 모든 정황은 영화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등과 매우 흡사하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학교폭력을 미화한다는 것이다. 극중 ‘일진’ 학생들은 남보다 우위에 있고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의리있고 영웅적인 존재로 설정돼 있다. 학생들에게 있어선 우상이 될 법도 할 터. 실제로 경찰조사결과 일진회 학생 대부분이 일진회 집단을 ‘동경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회는 아직도 잔존하는 권력집단

자칭 ‘이진’이라는 수원H중 유모군(13)은 “‘짱’이 아니더라도 일단 일진회 소속이라고 하면 애들이 까불지 못하거든요. 제가 또래친구들보다 우위에 있는 것 같아 특별해진 기분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안산B중 최모군(13)은 “뽀대(멋있고 폼난다는 뜻의 속어)있어 보이잖아요. 여자친구가 일진이라고 든든해할 때 어깨가 으쓱해지죠”라며 일진회 가입이유를 말했다. ‘영화 주인공처럼 행동하면 나도 짱’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화성K중 이모군(13)은 “솔직히 연예인들은 사투리 쓰면서 욕해도 멋있고 싸움까지 잘 하니 더 멋있고…. 유행도 되고 하니까 따라하는 거죠, 뭐. 극중 ‘짱’으로 나오는 연예인에 대한 동경이 모방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라며 이같은 미묘한 심리도 자리잡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요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진회는 아직도 잔존하는 ‘권력집단’임이 분명해 보인다. 일진회에 가입하진 않더라도 일진회 소속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으면 따돌림 당하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 수원C중 안모군(13)은 “최근엔 일진회 가입여부를 떠나 다같이 어울리는 추세예요. 여기에 동화되지 못하면 무시당하고 따돌림 받기 십상이죠”라며 요즘 분위기를 전했다. 경찰은 “일진회 학생들도 천차만별”이라며 “진짜 ‘조폭’ 같은 학생이 있는가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진짜 ‘순진한’ 학생들도 부지기수”라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이는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한 학생들의 ‘몸부림’으로도 해석된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신을 과시하고 ‘짱’이라는 권위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서 출발한 ‘일진회’가 학생들 사이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모방소비와 폭력문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끊임없는 자기개발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짱’으로 만들어가야 할 학생들이 ‘권력의 노예’가 돼가는 것은 분명 심각한 문제다. 따라서 경찰은 일진회 적발시 엄벌에 처하고, 정부는 학교폭력을 부추기는 문화를 제재하겠다며 강경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가치나 능력보다 아직은 ‘체면치레’를 중요시하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진회’ 등 폭력집단이 완전히 사라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교육부, ‘학교폭력 사례집’ 발간 화제“학교폭력 예방 및 근절은 이렇게…”

지난 6일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에서 학교 폭력에 합리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관계법령 해설과 유형별 대처방법 등을 담은 사례집을 발간, 배포했다. 현재 학교 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령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일선 학교의 대처 방식에 당국이 지침을 마련한 것. 사례집에는 4월부터 6월까지 전국 초·중·고 교사들로부터 수집한 1,500여건의 학교 폭력 사례가 유형별로 제시돼 있다. 그간 일목요연하게 학교 폭력의 사례와 대처 요령 등을 담은 매뉴얼이 없었기에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기를 교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또한 이 사례집은 기본적으로 학생·교사 및 학교 중심의 예방 및 근절 활동 추진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단위학교에서 학생들의 자치활동과 학교장 및 교사들의 관심과 배려를 통한 학교폭력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사례집을 보고 또 학생들이 모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는 “이 자료는 학교폭력이 발생한 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한 사례를 제시하고 있고 법적 절차에 대해 상세히 제시하고 있다”며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자료로 활용하면 많은 국민들이 우려해 온 학교폭력에 대해 학교가 미온적·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례집의 발간으로 학교 폭력이 줄어들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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