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대표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후 박영선 위원장의 제일성이 “협상은 아직 안 끝났다”였다. 박 위원장은 이미 당내 강경세력의 반발을 예상했고, 어려웠던 합의가 ‘도루묵’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예감까지 가졌던 것 같다. 2008년 광우병 시위를 주도했던 단체와 인물들이 특별법에 합의한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 ‘야합’ ‘배신’이라며 ‘지원’이라는 명분으로 세월호 유가족들 옆을 24시간 지키고 있는 상황을 당내 강경세력이 놓칠 리 없다고 본 것이다.

당내 비례대표 의원들 절반 이상이 강성 시민단체, 노동운동,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정치적 현안 때마다 자신이 속했던 단체의 생각과 투쟁방향을 대변하고 있는 점을 박 대표가 너무 잘 아는 바다. 광우병 대책위의 핵심인사였던 박석운 씨 등이 “새정치연합이 새누리당 이중대로 전락했다”는 공격을 하고나선 상황에서는 박 위원장이 도리어 참담함을 느낄만했다.

유족과 대학생들이 새정치연합 당사와 박 원내대표 지역구 사무실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소속 국회의원 46명이 성명을 내고 재협상을 촉구하자 무력감 또한 컸을 것이다. 합의안 발표 후 나흘 만에 날아가 버린 지난 7일의 세월호법 합의는 세월호 참사 113일 만에 여야 간 양보와 결단으로 얻어낸 극적인 대승적 타협의 결과물이어서 많은 유권자들이 ‘삶의 정치’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터였다.

박영선 대표의 여성 리더십이 화려하게 빛을 발한다는 생각을 가졌고 성급한 대망론을 점치기까지 했으리라. 그런데 그 대승적 결단이 물거품이 돼 버렸다. 당내 강경파가 박 원내대표의 지도력을 흔들고 있는 이유가 그들 강경세력의 입지가 좁아지고, 야권의 차기 대권구도 격변이 우려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문재인 의원이 트위터를 통해 “여야가 다시 머리를 맞대는 게 도리”라며 재협상의 불을 지피고부터 당내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한다.

“장외 세력에 조종당하는 ‘리모컨 야당’으로는 집권 못한다”는 야권 원로, 중진 인사들의 우려하는 목소리 따윈 구우일모(九牛一毛)처럼 가볍게 취급당했다. 박 대표는 세월호법 합의 파기에 대해 “의원총회에서 표결했으면 여야 합의안이 추인됐을 것”이라며 “실제 내 생각에 동의하는 의원들이 야당에도 많지만 말을 하고 있지 않을 뿐”이라고 밝혔다. 새정치연합의 안팎 형편이 면경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7.30 재·보선 참패 후 새정치연합 의원들 모두가 통렬한 반성의 언어들을 폭포수같이 쏟아냈다. 그리고 만들어 진 것이 박영선 원내대표가 이끌도록 한 ‘국민공감혁신위원회’의 비상 체재다. 그게 불과 며칠사이 난파선으로 변한 야당을 더는 신뢰할 구석이 없어 보인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지난 3월 창당 후 최저치인 21%로 폭락돼 나타났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면 제1야당 말 조차하기 어려울 노릇이다.

그동안 대여 공격수로 강경 투쟁에 앞장섰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뒤 모처럼 달라진 모습을 보인 것은 ‘삶의 정치’를 실현해야할 제1야당의 책임을 느껴서 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 동력은 상당 시간을 멈춰서있었다. 정부가 세월호 무게에 짓눌려 우왕좌왕 할 때 오히려 야당이 분노한 민심을 달래고 경제 살리기를 힐책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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