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출연자 집단 성폭행 ‘두 자매 자살 사건’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성폭력 가해자 남성 11명과 이들을 피해자 여성에게 알선한 여성 1명. 이들은 피해자 여성 A씨에게 집단 성폭력을 가했고, A씨를 모텔에 감금해 변태적 성행위를 강요하기까지 했다. 2004년 발생한 ‘보조출연자 집단 성폭행-두 자매 자살 사건’이 다시 화제다. 피해자 어머니가 가해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에서 1일 법원은 ‘성폭력 행위는 인정되나, 손해배상 청구의 공소시효가 지나 이는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기 때문이다. 철면피 가해자들과 허술한 법망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본지가 피해자 어머니와 보조출연자 내부 관계자를 직접 만나봤다.


피해자 배려 않는 경찰에 분통…수사만 2년 걸려
손해배상 청구 공소시효는 고작 3년, 허술한 법망

사건이 발생한 2004년, 대학원을 다니며 장관을 꿈꾸던 A씨는 동생의 권유로 방학 동안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백댄서 등 방송계 일을 했던 동생은 A씨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었으나, 우연치 않게 A씨만 촬영지에 두고 동생이 먼저 자리를 뜰 일이 생겼다. 사건의 시작은 이 지점이다.


혼자 촬영지에 남게 된 A씨를 첫 번째 가해자이자 보조출연자 남성 B씨(현재 40)가 유심히 봤다. B씨는 A씨에게 ‘서울에 가서 만나자’며 이성으로서 접근을 시작했다. 이후 A씨는 B씨와 서울에서 만났고, 함께 간단히 술도 마셨다. 하지만 첫모금에서 A씨는 ‘머리가 핑 도는’ 어지러움에 쓰러졌다. 눈을 떠보니 이미 성폭력을 당하고 있었고, 반항하는 A씨에게 B씨는 ‘담뱃불로 얼굴을 지지겠다’며 협박했다.


첫 피해사실이 주변 보조출연자 C씨(현재 42)에게 알려졌다. A씨의 심신이 미약하다는 사실을 간파한 C씨도 A씨에게 강압적인 성폭력을 자행했다. 문제는 C씨의 동거녀 D씨(현재 51)가 이를 알고, 다른 보조출연자들에게 A씨를 알선한 것이다. 피해자 어머니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동거남이 성폭력을 했다고 하니, 같은 여자로서 질투심에 그런 건지는 확실히 모르겠다”며 다만 “D씨가 주변 보조출연자들에게 알선한 건 사실이고, 법원도 D씨까지 성폭력 가해자로 인정했다”고 말했다.

의문투성이 경찰 수사

사건 발생 당시의 경찰 수사 상태가 의문이다. 사건 관할 담당인 영등포경찰서에 A씨 가족은 피해 사실을 알리며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담당 형사들의 태도가 첫 번째 의문이다. 어머니가 만난 관계자에 따르면 ‘아무도 이 사건을 맡으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또 처음 맡았던 ㅈ형사는 참고 자료를 가져온 피해가족에게 ‘이런 사건은 수사할 사건이 아니’라며 집단 성폭행 사건을 수사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은연중에 내비쳤다. 담당 형사의 노골적인 언행과 행동에 피해가족은 담당 형사를 바꿔달라는 진정서를 냈다. 하지만 교체된 네 명의 담당 형사는 매번 수사할 의지가 없어 보이는 언행과 행동을 일삼았다.


문제는 네 번째 형사다. 네 번째 담당 형사였던 ㅇ씨는 피해자 A씨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식의 발언을 하며, ‘첫 번째 가해자인 B씨 성기의 모양을 그리고 정확한 색깔까지 칠하라’고 했다. 심지어 ‘mm' 단위를 언급하며 ‘제대로 그리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피해자 어머니는 분통을 터트렸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런 식의 진술을 강요하는 조사방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가 없다. 현재 남아있는 조사 자료에 이 그림만 빠져 있다는 점도 의문이다. 고의로 누락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은 조사 과정도 문제다. 당시 경찰은 칸막이도 없는 곳에서 A씨에게 진술하라고 요구했다. 같은 조사실에 가해자들이 있었다. 피해자가 진술할 때 가해자들은 야유를 하거나 ‘여자가 먼저 덤벼들었다’는 등의 말을 하며 A씨의 진술을 방해하기도 했다. 가해자가 담당 형사 ㅇ씨에게 피해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할 때, ㅇ씨는 함께 웃기도 했다.


“12명을 상대한 여자의 얼굴 좀 보자”는 경찰의 말을 피해자와 가족들이 듣기도 했다. 경찰서에 아무도 없다는 말을 듣고 한밤중에 찾아간 A씨와 어머니. 하지만 술에 취한 경찰들이 경찰서로 들어왔고, 이들 중 한 명이 A씨의 얼굴을 바라보며 ‘12명을 상대한 여자’ 등을 운운했다. A씨는 더 이상 경찰 진술을 할 수 없었고, 정신과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경찰 조사만 2년. 중간에 A씨는 정신적 충격을 이기지 못해 고소를 취하했고,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A씨에게 보조출연 아르바이트를 권유한 동생도 죄책감에 자살했다. 두 자매의 아버지는 정신적 충격으로 삶을 마감했고, 단란했던 네 식구 중 남아 있는 사람은 현재 어머니뿐이다.

가해자는 떳떳하고
법망은 허술하고

12명의 가해자 중 여성 D씨는 자영업을 하고 있다. 나머지 11명 중 1명을 제외한 가해 남성들은 모두 보조출연계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보조출연자 업계의 내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 보조출연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가해 남성 중 한 명은 심지어 보조출연자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있다”며 “여전히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피해자 어머니는 “고소를 취하할 때 가해자들이 이 업계에서 떠나는 조건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법정에서 만난 가해자들은 하나같이 떳떳해 했다고 피해자 어머니는 밝혔다. ‘딸 단속을 못했다’며 오히려 어머니를 비웃으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성폭력 혐의가 인정됐으나, 가해자들은 여전히 주변인들에게 자신의 ‘혐의 없음’을 말하며 다닌다고 했다.


1일 법원의 판결에도 비판적인 여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공소시효는 3년. 하지만 3년이란 공소시효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인 충격과 여파 등을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A씨의 어머니 역시 두 자매의 연이은 자살, 남편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자살을 시도한 바 있다. 살인죄 공소시효가 최근 폐지된 것을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손해배상 청구 공소시효도 폐지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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