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판 어셈블리’ 방영 중

[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정치의 핵심은 타협’이라는 백도현(장현성 역). 정리해고 3년차 실직가장이었지만 보궐선거를 통해 정치판에 뛰어든 인물 진상필(정재영 역). 투쟁적이고 대중 중심적인 정치를 말하는 진상필에게 타협을 가장한 꼼수가 판치는 현실정치는 가혹하다. 정치판을 실제처럼 묘사했다는 평을 듣는 KBS 드라마 <어셈블리>가 현실에서도 방영 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장소는 경기도 부천시의회.


與 의원과의 법안 거래 의혹…부천게이트
시민 의견 수렴하자는 시의원 찍어내기 논란


경제시 신항만 지역 개발 사업을 앞둔 진상필과 백도현의 갈등. 백도현은 ‘개발 사업’을 고리로 지역 유지들을 잡아 놓는다. 진상필은 개발정책에 반대하고, 그 이유로 ‘한 도시만 잘 살기 위한 개발정책’은 민주주의와 맞지 않다는 논리를 펼친다. 


BH의 뜻은 부동산거래 활성화정책. 여당은 당론을 ‘부동산 거래 정책 통과’로 정한다. 하지만 여당 내 딴청계 진상필(정재영)의원은 당론과 반대되는 입장을 말한다. VIP의 뜻을 거스르자 같은 당 내 친청계 의원들은 진 의원을 찾아와 당론을 따르라고 요구한다. VIP는 여당 내 반대파인 진 의원에 분노한다.


당론화 반대 등 집권여당 내 야당인 진상필은 결국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된다. 위기에 빠진 진상필에게 홍찬미(김서형)는 백도현과 박춘섭(박영규)의 야합을 폭로한다. 제보를 받은 진상필은 기자회견에서 둘 사이의 야합을 폭로한다.

드라마의 내용이 현실에서도 발생해 주목을 받고 있다. 전통적인 야당 텃밭인 데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는 부천시의회의 일이다. 일명 ‘부천판 어셈블리’로 통한다.


지난 1일 부천시의회 새정연 소속 의원 11명은 중앙당에 김정기 운영위원장과 우지영 비례대표 시의원에 대한 징계청원서를 제출했다.


일단 11명의 의원들이 밝힌 주된 이유는 김정기·우지영 의원이 새정연이 정한 당론을 지키지 않아 복합개발 매각승인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것. 우지영 의원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의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며 매각 승인 안건에 보류를 표한 바 있다.


‘이번에도 당론에 맞섰다간 중징계를 받게 되실 것’이라는 여당 대변인 홍찬미(김서형)의 대사가 ‘징계청원서’로 현실화됐다. ‘당론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당론화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라 응수했던 드라마 속 장면 역시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부천 게이트…당론 거스른 ‘부천진상’ 

‘국민진상’ 진상필은 경제시 개발사업에 반대하며 ‘한 도시만의 입장을 관철하는 건 민주주의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표명한다.


자신을 둘러싼 집권여당 내 친청·반청계의 야합. 하지만 진상필은 이를 과감히 뚫고 나간다. ‘부천판 어셈블리’ 복합개발 매각승인의 복사판이자, ‘부천진상’이 등장한 내막이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부천시 내 여당인 새정연의 뜻은 ‘복합개발 매각승인’이었고, 새누리 ㅎ 시의원은 ‘시립노인병원 관련 조례안’이 통과되지 않기를 원했다. 올 3월 ㅎ 의원과 새정연은 이 같은 내용을 약속한다. 서로의 안건을 원하는 대로 해 주는 조건의 빅딜인 것.


하지만 5월 매각승인을 두고 일이 꼬였다. 법안 거래를 약속한 한 의원이 잠적한 것. 지역 언론은 새정연 일부 의원들은 한 의원을 두고 ‘약속을 어긴 배신자’라는 공격을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곧 ‘약속=담합’임을 새정연 의원들 스스로가 자폭한 셈이었다. ㅎ 의원은 잠적과 등장을 반복했다.


복합개발 매각 승인 이면엔 새정연 소속 ㅂ 시의원이 있다. ㅂ 시의원은 개발사업 해당 지역에 본인의 상가 4개를 소유하고 매각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매입한 상가를 올해 개발에 들어가기 직전 팔았던 것. 이번 복합개발 사업에도 ㅂ 시의원의 개인 이권이 개입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또 지난 5월 임시회에 예결특위 위원장으로 선임돼 추경예산을 처리했는데, 이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5월은 복합개발 매각 안건이 승인되기 전이다. 하지만 ㅂ 시의원은 안건이 승인되기도 전에, 복합개발 해당 부지의 감정평가 예산 3억5000만 원을 증액 편성했다.


우지영 의원이 이 과정에서 새정연 의원들과 뜻을 달리했다. 당론을 거슬러 ‘찬성을 하더라도 시민들의 입장을 먼저 들어보고 결정하자’며 개발에 유보적인 입장을 표했다. 지난 상임위에서 우 의원은 보류 입장을 표했고, 이는 나머지 새정연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론에 거슬렀다’며 진 의원을 압박한 친청계 의원들의 반란이, 현실에서 의원들의 반발 및 징계청원서 사태로 나타난 것이 지금까지의 내막이다.

시민들을 위한 민주주의 실종 

부천시 자체 여론조사 결과 이번 매각승인 안건에 대해 부천시민 76%가 반대한 것으로 드러났다. 새정연 설훈 의원실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원미구(을) 주민들 55.6%가 매각승인 건에 대해 ‘모른다’고 답했다. 복합개발 매각은 ‘시유지’의 문제고, 곧 시민들의 의견이 중요한 사안이다. 하지만 정작 부천시민들은 이 사실에 대해 모르거나 알더라도 반대하는 이가 많다는 것이다.


우 의원은 개인성명서에서 “시민들의 의견 수렴 등 공론의 장 없는 안건 밀어붙이기는 민주주의의 정신과 맞지 않다”며 “당의 가치와 노선인 공공성과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시민과 소통하고 의견을 수렴하라는 것이 징계사유가 될 수 있는가”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강제적 당론에 대한 당헌·당규의 법적 구속력은 없다. 때문에 시의회 의원 징계를 중앙당에 청원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번 징계청원서가 중앙당에서 처리될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는 가운데, 중앙당에서도 징계청원 철회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의원들의 압박을 받던 진상필 의원은 탈당을 할 것이란 모두의 예상과 달리 ‘딴청계’라는 새 계파를 만든다. ‘서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며 야합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 시청자가 <어셈블리> 속 진상필에 열광하는 이유다. 하지만 여·야의 물밑 담합과 소신 있는 의원 찍어내기 등 드라마의 가혹한 이야기가 현실 정치판에서 버젓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문제다.


한편 부천시는 시유지 매각을 결국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새정연 내 주류세력인 ㅅ 의원이 새누리 의원 9명, 무소속 1명, 시민 5명을 고소한 가운데 다음주 임시회가 열릴 예정이라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yon88@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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