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윤석열 대통령이 확 달라졌다. 여름휴가와 취임 100일 이후를 기점으로 여야협치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취임 초 좌고우면 없이 일방통행식의 마이웨이를 외치는 모습과는 정반대다. 이는 지지율 폭락사태는 물론 대내외적인 경제위기 상황을 고려해 국정운영 기조를 전면적으로 전환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의회 의석구조상 절대 과반을 확보한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현실적인 힘을 인정하면서 초당적인 협력을 통해 위기탈출에 시동을 걸겠다는 의지다. 윤 대통령의 구상이 성공한다면 대선승리의 원동력이었던 중도층의 지지 복원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해진다. 가시적인 효과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레임덕 수준인 20%대 중반까지 폭락했던 지지율은 소폭 반등하면서 30%대 초반으로 뛰어올랐다. 역대 대통령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한 수준이지만 지지율이 바닥을 찍고 반등세를 탔다는 점만큼은 상징적이다. 윤 대통령의 여야협치 승부수를 세밀하게 짚어봤다.

국기에 대한 경례중인 윤 대통령. 뉴시스
국기에 대한 경례중인 윤 대통령. 뉴시스

사저 경호 강화 조치로 국민통합·협치 행보 가속화
요구 수용해 인적쇄신 단행 및 특별감찰관 임명 찬성
- 여야 중진협의체 환영여소야대 돌파 위해 협치 재천명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100여일간 값비싼 수업료를 톡톡히 치렀다. 햇병아리 초보 대통령이라는 국민적 비아냥과 조롱 속에서 크고작은 좌충우돌을 반복했다. 특히 윤 대통령 특유의 직설적인 언행은 온갖 오해와 갈등을 야기했다. 게다가 김건희 여사 리스크는 물론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윤핵관 그룹과의 전면전 등 내부 논란마저 지속됐다. 아울러 고물가·고금리·고환율로 상징되는 경제위기 상황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대폭 끌어내린 악재였다. 이대로 가면 남은 임기 또한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혁명적인 반등의 계기가 필요했다. 결과적으로 여야협치에 시동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역대 대통령들 또한 위기국면에서 여야협치를 강조했지만 용두사미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위기탈출의 승부수를 내던진 윤 대통령은 과연 다를 수 있을까?

대통령 사저경호 강화화해손길 환영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은 매우 독특한 경로로 대권을 잡았다. 문재인정부 시절 적폐청산 수사의 칼을 휘두르며 보수와는 척을 졌고 진보와 손을 잡았다. 진보진영은 열렬히 환영했다. 다만 조국사태 수사를 거치면서 진보와는 또다시 불구대천의 원수가 돼버렸다. 진보진영은 배신자 프레임으로 맞섰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를 얻으며 차기 주자로 성장했다. 천신만고 끝에 보수진영 대선후보로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이 때문에 전임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관계설정은 중요한 과제였다. 윤 대통령은 단절을 선택했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에는 문 전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이전을 밀어붙였다. 또 취임 이후에는 서해피격 및 탈북어민 강제북송 수사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윤 대통령은 문 대통령과의 관계 재설정에 나섰다. 특히 경남 양산 평산마을 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의 경호 강화를 지시한 것은 유의미하다. 이는 지난 19일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김진표 의장의 건의를 수용한 것이다. 대통령 경호처는 즉각 움직였다.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의 경호 구역을 확장해 재지정했다평산마을에서의 집회·시위 과정에서 모의 권총, 커터칼 등 안전 위해요소가 등장하는 등 전직 대통령의 경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경호처는 220시를 기점으로 경호 구역 확장과 동시에 구역 내 검문검색, 출입통제, 위험물 탐지, 교통통제, 안전조치 등 경호경비 차원의 안전 활동도 강화했다. 윤 대통령은 이밖에 김종철 경호차장을 경남 양산으로 급파해 문 전 대통령 예방과 집회·시위 관련 고충 청취까지 지시했다.

사실상 현직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안전을 배려하는 국민통합적 행보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이 진보진영에서 갖는 상징성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화해의 손길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과거 발언과도 배치된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도어스테핑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 사저주변 보수 유튜버들의 과격시위 논란과 관련해 대통령 집무실 (주변)도 시위가 허가되는 판이니까 다 법에 따라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한 바 있다. 사실상 문 전 대통령 사저 주변 시위를 용인하겠다는 뉘앙스로 비춰지면서 적잖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윤 대통령의 통큰결단에 여야는 한목소리를 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날이면 날마다 비판논평을 쏟아냈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민주당은 늦었지만 환영한다김진표 의장이 제시한 해법을 윤 대통령이 수용해 경호처가 신속히 조치를 취한 것으로 안다. 윤 대통령과 김 의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 측 또한 잘된 일이라고 반겼다. 국민의힘 또한 이번 경호 강화 조치는 법과 원칙의 차원 및 협치와 국민통합 차원에서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경남 양산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경호가 강화된 가운데 하북면 평산마을 입구에 경호 구역을 알리는 표지판과 경호인력이 배치돼 있다. 2022.08.22. 뉴시스
경남 양산시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경호가 강화된 가운데 하북면 평산마을 입구에 경호 구역을 알리는 표지판과 경호인력이 배치돼 있다. 2022.08.22. 뉴시스

'꺼지지 않는' 처가리스크, 특감임명 요구 조건부 수용

윤 대통령의 최근 행보 중 가장 눈여겨볼 또하나의 대목은 바로 특별감찰관 임명 여부다. 부인 김건희 여사에 대한 리스크 해소를 위해 가장 근본적인 해법으로 제시된 내용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다소 부정적이었다. 그동안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크고작은 잡음이 지속되면서 윤 대통령의 고뇌는 깊어만 갔다.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물론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는 정치적 분석마저 제기되기도 했다. 여름휴가 이후 상대적으로 정제된 언행과 중도확장 광폭행보를 선보이는 윤 대통령으로서는 지지율 30%대 회복을 넘어 추석연휴 전후로 40%대 회복이 필수적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제2부속실 설치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 대한 공적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거셌다. 특히 야당은 대통령 친인척과 대통령실 공직 기강 확립을 위한 특별감찰관의 조속한 임명을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 표명이 없었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윤 대통령도 김 여사를 컨트롤할 수 없다는 소문까지 꼬리를 물었다. 다만 이 문제 또는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넘기면서 미묘한 기류의 변화가 엿보였다. 수용 불가에서 조건부 수용으로 입장이 선회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21일 윤석열 대통령의 특별감찰관 임명 문제와 관련해 국회 결정을 전제로 수용 의사를 밝혔다. 대통령실 브리핑에 나선 김대기 비서실장은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이 수용하겠다, 안 하겠다의 차원이 아니다국회에서 결정되면 100% 수용하게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별감찰관 도입에 대한 찬성 의사와 더불어 공을 국회로 넘긴 셈이다.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4년 신설된 특별감찰관은 대통령 배우자와 4촌 이내의 친족, 대통령 비서실 수석비서관 이상을 감찰 대상으로 한다. 국회가 후보 3명을 추천하면 이 가운데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다. 문제는 20169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물러난 이후 후임이 임명되지 않았고 문재인정부에서도 5년 내내 공석이었다.

민주당은 물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특별감찰관 이야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여야 합의만 이뤄진다면 전격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 5년 내내 특별감찰관 임명을 주장해왔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여의도의 격언대로 순항할지는 미지수다. 국민의힘이 북한인권재단 이사와 특별감찰관 동시 임명 카드를 내건 것에 대해 민주당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 인적쇄신 요구 사실상 수용중진협의체성사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5.16.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2.05.16. 뉴시스

인적쇄신에 대한 기존 윤 대통령의 입장도 달려졌다. 여야 모두 위기탈출을 위한 인적쇄신 요구가 빗발쳤지만 윤 대통령은 인위적 쇄신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다만 취임 103일만인 지난 23일에는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하고 홍보수석 교체 등 소폭의 대통령실 개편을 단행했다. 검찰출신 측근 중용, 인사실패 논란, 대통령실 사적채용 논란 등 대통령실을 둘러싼 크고작은 잡음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신설된 정책기획수석에 이관섭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을, 새 홍보수석에 김은혜 전 국민의힘 의원을 각각 내정했다. 대통령실 조직개편이 국민적 눈높이에는 미달했지만 국정쇄신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는 여의도 정치권에 대한 존중을 나타낸 것이지만 사실상 야당의 요구를 일정 부분 수용한 셈이다. 취임 첫해 정기국회에서 여소야대 현실에서 돌파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야당과의 원만한 관계 형성을 위한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이번 대통령실 개편을 시작으로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인적쇄신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김대기 비서실장은 이와 관련, “조직은 늘 필요에 따라 계속 바뀌는, 살아있는 유기체라면서 비서실 쇄신의 상시화를 예고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 스타일의 변화는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특히 인사문제와 관련해서는 공석 중인 교육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 인선에서 보다 구체화될 전망이다. 인재풀을 보다 늘려서 국민통합적 인사로 내각이 채워진다면 윤 대통령의 인적쇄신 의지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여야협치의 제도적 방안인 여야 중진협의체성사 여부도 관심사다. 첨예한 여야 대치를 고려하면 전망은 불투명하지만 실제 가동시 여야정간 의미있는 소통채널이 될 수 있다. 여야 중진협의체는 지난 2014년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의 제안으로 마련된 국회 규정이지만 개점휴업 상태로 사문화됐다. 여야 중진협의체는 국회의장단 3명과 여야 5선 이상 중진, 원내대표·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하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국무위원도 참석할 예정인데 김진표 국회의장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이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참 좋은 생각이라며 공감대를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9월 정기국회는 여야 모두 강성팬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그 어느 때보다 거센 파열음이 예상된다. 극렬한 대치전선 속에서 여야 원로와 중진들이 나서 서 갈등 중재하고 이견 조정에 나설 경우 여소야대 극복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장단 만찬에서 민생이 워낙 힘든 때인 만큼 여야가 힘을 합쳐 어려움을 이겨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현 정부 최대 국정과제인 교육·노동·연금개혁을 위해서 야당의 협조는 필수적인 만큼 협치전선 구축에 보다 공을 들이겠다는 태도다. 김 의장도 이에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회와의 협치를 중시한다는 것을 국민들은 든든하게 생각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대통령이 그동안의 좌충우돌에서 벗어나 취임 100일 이후 여야협치를 통한 초당적 국정운영 의지를 드러낸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2IMF가 거론되는 대내외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 윤 대통령이 야당을 국정 파트너로 보다 존중하고 야당 또한 비판 일변도에서 벗어나 거시적인 국정운영에는 전폭 협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대선 이후 지방선거에 이어 여야 모두 당내 혼란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협치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이준석 전 대표가 전방위적인 난타전을 벌이는 것도 부담라면서 최대 관건은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이재명 대표 체제의 등장이다. 사실상 대선 연장전이라면서 “20대 대선의 양대 라이벌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의원이 영수회담을 통해 통큰 협치에 합의할 수 있느냐가 향후 정국의 최대 변수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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