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여야가 역사전쟁의 전면전에 돌입했다. 내년 422대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을 보다 확실하게 결집하기 위한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논란이나 한국전쟁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의 친일시비 논란이 시끄러운 가운데 북한과 일본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는 문제가 새삼스레 불거진 것이다. 발단은 다소 이례적인 윤석열 대통령의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사였다. 전임 정부에서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역대 대통령들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주로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을 촉구해왔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규정했다. 미중 패권전쟁의 심화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에 따른 신냉전 구조의 고착화라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직시해 과거가 아닌 미래에 방점을 찍은 것이다. 또 독립운동을 건국운동으로 규정한 것은 물론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위험성도 경고했다. 기존 광복절 경축사에서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언급에 정국은 곧바로 요동쳤다. 윤 대통령이 쏘아올린 역사전쟁을 둘러싼 여야의 이해득실과 정치적 노림수를 집중 분석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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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과거사 여야 평가, 국민의힘 지원사격’ vs 민주당 융단폭격
광복절마다 역사전쟁 되풀이건국절·이승만논란 현재진행형
- 내년 총선 지지층 결집 승부수신의 한수냐 악수냐 평가 엇갈려

윤석열 대통령의 경축사 발언으로 여야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국민의힘은 반국가세력에 대한 단호한 대응 의지라며 합격점을 내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극우 유튜버의 독백이라며 맹공을 가했다. 역대 최악의 광복절 경축사라며 거친 비난까지 쏟아냈다. 여야의 갈등 사안 중 역사문제와 연관된 이념 문제는 휘발성이 매우 큰 이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과 한강의 기적을 일군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 논란이 대표적이다. 또한 1919년 건국론과 1948년 건국론으로 양분된 건국절 공방은 매년 광복절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슈다. 여야의 역사전쟁은 윤 대통령의 부친상에 따른 조문정국과 미국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상회담 탓에 한동안 소강상태를 맞았지만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이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지층 결집 차원에서 언제든지 재점화될 수 있다.

, 파격 광복절 경축사반국가세력 비판 파트너론

대통령의 연설문은 내치는 물론 외치의 주요 골격을 제시한다. 보통 4대 연설문이 가장 중요하다. 대통령 취임사, 신년 기자회견, 광복절 경축사, 삼일절 기념사가 대표적이다. 특히 광복절 경축사는 대외정책을 상징하는 지표다. 대체로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면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을 강조한다. 아울러 남북관계 발전과 관련해 담대한 대북제안을 내놓으면서 북한의 성의있는 호응을 촉구하기도 한다.

윤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파격 그자체였다. 여권 일각에서마저 우려가 쏟아질 정도였다. 윤 대통령은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건국운동 가치파트너 일본 등 4대 키워드는 국익 관점에서 미래에 무게를 둔 신()역사관을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국가정체성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한 종북 주사파의 척결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과거 북한을 따르는 주사파는 진보도, 좌파도 아니다. 적대적 반국가세력과는 협치가 불가능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대일관계도 전향적이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은 이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이는 역대 대통령들이 일본군 위안부, 독도영유권, 역사교과서 왜곡 등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한 것과 달랐다. 특히 한일관계 개선을 축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와 관련, “일본이 유엔사령부에 제공하는 7곳 후방 기지의 역할은 북한의 남침을 차단하는 최대 억제 요인이라고 강조하면서 안보협력 파트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독립운동에 대한 정의도 새롭다. 윤 대통령은 국민이 주인인 나라, 자유와 인권, 법치가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건국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광복절 때마다 되풀이돼온 건국절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 셈이다. 대한민국의 건국시점을 특정시점으로 규정하기보다는 독립운동 전체 과정을 건국의 로드맵으로 본 셈이다. 다만 발언 맥락이 1948년 건국론과 맞닿아있다는 점에서 비판도 없지 않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멘토로 알려진 이종찬 광복회장은 시각차를 드러냈다. 이 회장은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국회의장을 하면서 대한민국 30년이라고 했다.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면 독도는 일본 땅이 된다1919년 건국론을 강조했다.

여야 180도 엇갈린 평가속 이승만기념관·백선엽 친일시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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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는 180도 엇갈린 평가를 내놓았다. 그야말로 극과 극이다. 국민의힘은 선동과 공작으로 자유대한민국을 위협하는 반국가세력을 배격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합격점을 내렸다. 반면 민주당은 역대 최악의 광복절 경축사라며 융단폭격을 쏟아냈다. 광복절 기념사가 아니라 냉전시대 6.25전쟁 기념사와 같은 지적마저 나왔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을 지원사격했다. 김기현 대표는 자유·인권·평화가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대통령 경축사에 담겨있다고 평가했다. 장동혁 원내대변인도 논평에서 민주당의 비판을 꼬집었다. 장 원내대변인은 지금도 북한의 지령을 받고 반국가활동을 하다가 적발돼 재판받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고,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을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하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민주당이야말로 어느 시대를 살고 있으며 도대체 무엇을 보고 듣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다만 여권 일각에서는 아쉽다는 반응도 나왔다. 이준석 전 대표는 광복절에 내는 메시지로는 좀 일본에 대해 너무 과하게 언급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광복절 경축사라는 제목이 없었다면 대통령의 광복절 연설이 맞는지 도통 모를 연설이었다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지도부는 거칠게 윤 대통령을 비난했다. ‘한일수교 축전이라는 비아냥까지 쏟아졌다. 역사인식은 물론 남북관계 및 외교안보정책이 시대착오적이라는 것이었다. 광복절 경축사가 70·80년대 냉전시대의 인식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비판이다. 이재명 대표는 일본과의 군사협력 강화를 선언하는 경축사가 낭독됐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해방 이전으로 돌리는 패착을 정부가 더 이상 두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최고위원들도 가세했다. 서영교 최고위원은 묻지마식 친일 기조가 그대로 드러난 최악의 광복절 기념사라고 깎아내렸다. 장경태 최고위원 은 광복절이 아니라 굴복절인가 싶은 정도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둘러싼 역사전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건국절 논란이 대표적으로 우리 사회의 가장 뜨거운 감자중 하나다.

진보진영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보수진영은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였던 대한민국이 수립된 1948년을 건국시점으로 보고 있다. 논란이 불거진 것은 이명박정부 시절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8년은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이 되는 해라면서 1948년 건국론을 공식화했다. 다만 건국절 추진을 둘러싼 혼선과 진보진영의 반발 속에 유야무야됐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첫해인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라며 1919년 건국론에 무게를 뒀다.

건국절 논란은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 재평가와 직결된 문제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보수진영은 국부로 추앙하고 있다. 반면 진보진영은 반민특위 해체와 장기집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에 따른 4.19혁명의 여파로 실패한 독재자로 혹평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이승만기념관 건립작업은 본격화되고 있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우리가 현재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이승만 대통령이 만든 토대 위에서 이뤄졌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공이 90%, 과가 10%”라면 기념관 건립의 정당성을 강조해왔다.

이뿐만이 아니다. () 백선엽 장군의 친일논란 역시 화두다. 백선엽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국군 1사단장으로서 이른바 낙동강방어선의 핵심 축이었던 다부동전투에서 북한군을 격퇴한 전쟁영웅이라는 평가에도 독립운동을 탄압한 반민족행위자라는 친일 논란에 시달려왔다. 박 장관은 이와 관련, “최대 국난인 6·25전쟁을 극복한 최고 영웅인 백 장군의 명예를 지킬 것이다. 백선엽 장군이 친일파가 아니라는 데 장관직을 걸겠다며 대전국립현충원 홈페이지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 문구를 삭제했다.

이승만·백선엽 공과논쟁 건국절까지여야 공방 지속

이종찬 광복회 회장과 박민식 보훈부 장관. 뉴시스
이종찬 광복회 회장과 박민식 보훈부 장관. 뉴시스

역사인식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직결된 문제다. 특히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2000년대 초반 제기한 건국절 논란은 일제 식민지근대화론과 연장선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의 논쟁적 화두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1945년 광복 이후 해방정국에서 분단과 한국전쟁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문제와도 맞닿아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이 전 대통령이 친일파 청산에 소홀한 것은 물론 장기집권을 추구한 독재자라고 혹평해왔다. 반면 보수진영은 이 전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한 정부수립과 공산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면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주춧돌을 다진 국부(國父)라는 정반대 인식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보수·진보 진영은 매년 광복절 때마다 치열한 역사전쟁을 벌여왔다. 문재인정부 시절 또한 마찬가지였다. 김원웅 전 광복회장은 2020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이승만은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시키고 친일파와 결탁했다. 친일 반민족 인사 69명이 국립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관련 자료를 독일 정부로부터 받았다.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등의 돌출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정가에서는 지지율 하락에 직면한 문재인정부가 친일청산이라는 해묵은 화두로 정국반전을 노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윤 대통령이 쏘아올린 역사전쟁은 궁극적으로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주당이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확보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주요 정책은 번번이 좌초됐다. 만일 내년 총선 이후에도 여소야대 상황이 지속되면서 윤 대통령은 임기 중후반기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악몽이다. 이 때문에 대통령 지지율 35% 안팎의 핵심 지지층인 집토끼를 강력하게 결집하면서 중도층으로의 외연확대를 추구하는 다단계 전략인 셈이다. 특히 글로벌 신냉전의 여파로 동북아에서 한미일 vs 북중러 대립구도가 명확한 가운데 윤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추진 중인 한미일 3국공조의 가시적 성과 속에서 남북관계 및 한중관계의 점진적 개선이 이뤄진다면 불가능한 목표도 아닌 셈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보수진영 일각에서도 우려가 나올 정도로 역대 대통령들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파격의 연속이라면서 대한민국 국가정체성의 보다 분명한 확립 의지는 물론 대일관계에서도 명분에 사로잡혀 과거사에 매몰되기보다는 안보·경제 파트러라며 미래지향적인 접근에 보다 방점을 찍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진보 우위의 역사전쟁 구도에서 보수의 힘있는 목소리를 보다 강조하면서 내년 총선을 겨냥한 지지층 결집 전략이 깔려있다여야 기성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중도무당층이 급속하게 돌아서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묘수가 될지 아니면 자충수가 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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