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들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각을 손에 잡을 듯이 알 수 있었다.
“지, 지금은 감정들이 너무 격양되어서 도저히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군요. 내일쯤 다시 오겠습니다.”

강 형사는 이이사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추경감과 함께 회사를 빠져 나왔다. 등으로 화살 같은 조롱이 꽂혀 왔다.
“강 형사, 뭐 새로운 생각이 좀 없어?”
추 경감도 답답한 모양이었다. 느긋하기만 하던 그가 불이 안 켜진다고 급기야 포라이터를 던지기까지 했다.

“경감님. 우리가 이렇게 조롱감이 되어서 흥분하는 것도 범인이 꾸며 놓은 심리전의 일환인 것 같습니다. 좀더 냉정해져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강형사도 책상 주위를 팔짱을 낀 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음. 그래 좋아, 이 정도에서 범인에게 농락당해서는 안 돼.”

추 경감은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맘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금세 다시 책상을 똑똑 두드리고 있었다.
“이봐, 강 형사! 이번의 두 사건은 결코 별개의 사건이 아니야. 우선 상황을 검토해 보도록 하자구.”

그러면서 추 경감은 종이를 몇 장 꺼냈다.
“우선 변사장 의견을 따라가 보자구. 그러면 김 묘숙이 자살을 하고 장 이사를 죽였다 이건가? 죽은 사람이 주사기를 묻을 수는 없잖아?”
“경감님두, 그건 가능하지요.”

정말 추 경감은 흥분이 가시지 않고 있었다.
“아 참, 그렇군. 충분히 가능하지. 일반인은 아무리 그 위를 걸어 다녀도 하나도 피해가 없으니까. 그 주사기 속의 약물도 청산가리가 틀림없겠지?”
“그 정도의 맹독은 흔한 게 아니니까 청산가리가 틀림없습니다.”
“그래, 좋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거지.”

“그리고 두번째로는 장이사나 김박사나 모두 자살을 했다는 가정도 성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야?”
추 경감이 놀라서 강형사를 쳐다보았다. 강 형사는 겸연쩍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뭐, 그저 단순한 가능성의 경우로 말입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이야기할 수 없어? 이건 괴기소설이나 연애소설에 나오는 일이 아니야. 범죄란 그 사실 자체로는 가장 합리적인 거야. 강 형사, 살인사건의 경우 제 1의 용의자는 누가 되지?”
“피살자의 죽음으로 이익이 생기는 사람이지요.”

“그래,바로 그거야. 그러면 이번의 경우 이익을 볼 사람은 누구일까? 하지만 강 형사,이 점을 명심해야 돼. 결코 김 박사와 장 이사의 죽음을 분리해서 생각해서는 안 돼. 둘은 한 사람에 의해서 살해된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경감님.”
강 형사는 잠시 말을 끊고 생각을 하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아닙니다. 저,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예요. 즉 둘이 같은 업무적인 차원에서 살해를 당한 것일까? 아니면 둘이 어떤 비밀을 알고 있어서였을까 하는 그 점인데......”
“만일 둘이 같이 어떤 비밀을 알고 있었다면 장 이사는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리고 누가 김 박사를 죽였는지 알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장이사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었지.”
그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수화기를 든  강형사는 눈짓으로 추 경감에게도 수화기를 들라고 전했다.
전화는 마약전담반의 최 경감에게서 온 것이었다.
“오늘 천경세가 마약을 입수하기로 되어 있어. 드디어 3개월간 놓은 수사망에 걸려드는 거지. 그쪽의 추 경감이 관련이 있으니까 전해주는 걸세.”
“이봐, 최경감. 잠깐만!”
추 경감이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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