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감님! 모르시겠어요? 잠깐만!”
강 형사는 사체를 운반하는 경찰관을 불러 세웠다. 추 경감을 데리고 간 강 형사는 장 이사의 왼쪽 발을 들어 보였다. 무엇인가 찔린 듯한 흔적이 희미하게 보였다.
“바로 이겁니다.”

추 경감은 그때야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강 순경, 최 순경, 가서 망치하고 끌, 뭐 그따위 것들을 좀 가져오게. 마룻바닥을 뜯어 봐야겠어.”
“경감님,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나와, 아니 보통 사람 모두와 다른 장 이사의 특징이 장 이사를 죽음으로 내몰았어요. 110킬로그램의 몸무게가.”

추 경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고도의 치밀한 계획범죄인 것이다. 김 묘숙 박사의 죽음도 이렇게 된 이상 결코 자살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계획된 음모이다.
순경들이 연장을 가져와 배양실 바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이러면 안 된다고 야단이었지만 추경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 사람이 죽었소. 실험은 실패하면 다시 할 수 있지만 죽은 사람은 어떻게 해도 되살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경찰도 최대한으로 협조를 해가며 일을 하고 있지 않소.”
추 경감은 자신의 발을 가리키며 말했다. 직원들도 더 이상은 말을 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마루의 널빤지 두 장을 벗겨 내자 마루 틈새에서 주사기가 하나 발견되었다.
“역시 이것이었군요.”

강 형사가 씁쓸하게 말했다.
“같이 걸어 다니더라도 이런 마룻바닥에서는 장 이사의 몸무게 때문에 널빤지가 꺼지게 마련이지. 70킬로나 80킬로 무게로는 안 꺼지던 마룻바닥이 110킬로가 되면 꺼지게 해놨지. 그 점을 이용해서 살인 주사기를 묻어 놓은 거야.”

추 경감은 중얼거리며 주사기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주사기의 뒤쪽에는 검고 딱딱한 고무가 붙어 있었다. 웬만한 힘으로는 찌그러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마루 밑의 공간을 지탱하며 주사기가 작동될 때 탄력을 주기 위해 붙여 놓은 것 같았다.
그때 주사기 바늘이 구두 대신 비닐 버선만 신은 장 이사의 발바닥을 찌르게 된다. 그리고 그 압력으로 청산가리가 발바닥으로 들어간다. 기가 막힌 살인장치다.
“강형사.”

추 경감은 강형사를 툭 쳤다. 추경감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마석의 별장에서 발견된 주사기 케이스는 빈 것이었지...... 그런데 이 주사기도 같은 회사 제품이야.”
강 형사는 깜짝 놀라 추경감을 돌아다보았다. 추 경감도 낸들 알겠느냐는 표정으로 형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 경감과 강 형사가 배양실을 나서자 거기에는 변 사장과 이이사가 와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변 사장은 얼굴을 붉히며 추 경감의 멱살을 잡았다.
“장 이사를 살려내시오! 경찰이 있으면 이런 일이 안 생겨야 하잖소! 장이사를 살려내란 말이오!”

경찰관과 강 형사가 달려들어 변 사장을 떼어 놓았다. 하지만 변 사장은 전혀 진정을 하지 못한 채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이거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하지만 범인이 워낙 교묘한 인간이라서.”

추 경감은 등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싸늘한 식은땀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는 주위의 눈들이 그만큼이나 경멸에 차 있는 것이었다. 옆에서 그 눈초리와 추 경감의 위치를 뼈저리게 느끼는 강 형사도 결코 오래 있고 싶지 않은 자리였다.
“어떻게 범인이 예고한 대로 살인이 경찰관이 지키고 있는 현장에서, 그것도 백주 대낮에 일어난단 말인가.”
 

[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