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별로 달라진 정치 테러와 음모론  
李 피습 이후에도 이어진 '백색 테러·자작극' 논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l 박철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불의의 피습을 당했다. 제1야당 대표를 향한 흉기 테러의 여파는 곧 정치권 전체로 확산됐다. 여·야는 이구동성으로 극단 정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물론 그 순간에도 상대를 악마화하는 행보는 계속됐다. 우리 정치사에서 유명 정치인을 향한 테러 행위는 언제나 반복됐다. 하지만 22대 총선을 앞두고 이번 피습의 '적색 경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DJ 폭발물 사건의 배후설과 음모론 공방 
민주화의 양대 거목인 고(故)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 나란히 정치 테러의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야당 정치인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투쟁을 주도하던 1969년 6월 20일 서울 상도동 자택 인근에서 괴한 3명으로부터 차량에 질산(초산) 테러를 당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 망명 중인 1973년 8월 8일 도쿄에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됐다. 동해에 수장당할 위기에 처한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생환할 수 있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선박에 감금된 채 동해로 끌려갔다가 129시간 만에 서울 동교동 자택 인근에서 풀려났다. 

2022년 개봉한 영화 '킹메이커'의 배경이 된 1971년 김대중 전 대통령 자택 폭발물 사건은 양 진영이 서로의 배후설과 음모론을 주장한 사례다. 1971년 4월 27일 7대 대선은 민주공화당의 대선 후보인 박 전 대통령과 신민당의 대선 후보인 김 전 대통령의 대결이 펼쳐졌다. 

자택 폭발물 사건은 대선을 3개월 앞둔 1971년 1월 27일 발생했다. 이날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 중인 가운데 김 전 대통령의 동교동 자택 앞마당에서 미상의 폭발물이 터졌다. 사건 발생 2주 뒤인 2월 10일 경찰은 김 전 대통령의 15세 된 조카인 김홍준씨를 구속했다. 당시 김씨는 명절을 맞아 장난으로 한 행동이라고 진술했으나, 이튿날 수사기관의 위협과 가혹행위로 인한 허위자백이라며 자백을 번복했다.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폭발물 사건의 원인은 ①북한의 소행 ②백색테러(극우·우익 측의 좌파 정치인을 향한 테러) ③야당의 정치적 자작극이 거론됐다. 이에 여·야는 국회 차원의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했으나 일주일 만에 소득 없이 종료됐다. 1971년 2월 6일 자 '조선일보'에는 여·야의 특조위원이 해당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나타난다. 여당인 공화당의 고(故) 김창근 전 의원은 "이번 폭발물 사건은 양대 선거를 눈앞에 두고 야당 대통령 후보 집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단순한 폭발물 사건이라기보다는 선거와 함수관계가 있는 정치적 조작극이 아닐까 하는 점에서 그 중대성을 찾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야당인 신민당의 김수한 전 의원은 "수사당국의 수사 방향이 처음부터 어떠한 선입주견과 정치적 목적의식에서 이 사건을 '김대중 후보 주변 자체 내부에서 조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전제하에 수사를 진행 시키고 있는 인상을 짙게 한다"고 지적했다. 

같은 날 '동아일보'에는 '서로 믿는 풍토'라는 제목의 사설 기사가 실렸다. 해당 사설은 "선거철을 맞아 각종 말썽이 그치지 않고 부정과 타락이 오래도록 후유증을 유발하는 까닭은 성실하게 민의를 물을 생각보다 어떻게 해서든지 승자가 되겠다는 맹목적인 집념 때문인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朴부터 宋까지 '개인 동기'로 이어진 정치 테러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뉴시스]

민주화 이후인 2000년대 들어 정치인을 향한 테러는 가해자의 개인적 동기에 의한 사례가 다수다. 2006년 5월 20일 4회 지방선거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유세에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50대 남성 지충호씨의 커터칼에 피습 당해 얼굴에 10cm가 넘는 상처를 입었다. 당시 지씨는 "장기간 형무소 생활 등에 대한 억울함을 풀기 위해 큰 사건을 저지르기로 결심했고, 박 전 대통령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고 밝혔다. 

2018년 5월 5일에는 '드루킹 특검'을 주장하며 국회 본관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이던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한 남성이 휘두른 주먹에 턱을 가격당했다. 같은 달 14일에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제주도지사 예비후보로서 참가한 제주 제2공항 건설 문제 관련 토론회에서 한 지역 주민이 던진 계란을 맞고 얼굴을 폭행당하기도 했다. 

당시 김 전 원내대표를 폭행한 가해자의 아버지는 "아들은 오랜 취업난에 고생하다가 통일로 인한 일자리에 희망을 가진 청년일 뿐"이라며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쇼라고 한 홍준표 대표에 실망해서 저지른 일"이라고 밝혔다. 반면 원 전 장관을 폭행한 가해자의 범행 동기는 제2공항 건설에 대한 입장 차이로 알려졌다. 

가장 최근 사례는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의 피습 사건이다. 송 전 대표는 20대 대선을 이틀 앞둔 2022년 3월 7일 서울 신촌에서 선거운동을 하던 중 70대 남성에게 망치를 가격당했다. 범행 동기는 한미연합훈련 재개에 반대하는 입장인 가해자가 훈련 재개 입장을 밝힌 송 전 대표에게 불만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송 전 대표의 피습이 백색 테러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성주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민주 국가 대한민국에서 백주 대낮에 여당 대표에게 백색 테러라니, 어두운 과거로 돌아가면 안 된다"며 "윤석열 후보는 증오의 선동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신동근 민주당 의원도 자신의 SNS에 "백주 대낮에, 그것도 여러 사람이 운집해 있는 공개 장소에서 왜, 어떻게 이런 백색 테러가 일어났는지 빠른 진상규명이 이뤄지기를 촉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기동민 민주당 의원도 자신의 SNS에 "송영길 대표…백색 테러당했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민주주의 적' 부추긴 혐오 정치 
이 대표가 피습을 당한 뒤 여·야는 이번 사건을 "있을 수 없는 일"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즉각 규탄에 나섰다. 1년간 정쟁을 이어온 정치권도 폭력은 있을 수 없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하지만 피습 이후에도 혐오 정치는 멈추지 않았다. 이 대표의 피습을 두고 '백색 테러' 혹은 이 대표 측의 '자작극'이란 음모론이 쏟아졌다. 

정치권은 일부 극단 성향 유튜브 채널과 SNS를 통해 확산하는 음모론에 경고를 날렸다. 윤희석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3일 자작극 주장과 관련 "절대로 그런 식으로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해석이 이 사회에 퍼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 가운데 민주당도 명백한 2차 테러인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하지만 의혹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대표를 향해 흉기를 휘두른 가해자 김모씨의 당적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지난 3일 일부 언론 보도를 통해 김모씨가 국민의힘을 탈당한 뒤 민주당에 입당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건은 정치적 책임 논란으로 번질 여지가 생겼다. 이에 박정하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정당 가입 이력 등을 두고 양극단의 혐오 정치로 몰아가려는 불필요한 논쟁은 지금 상황에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혐오 정치 또한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경 전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사건 당일 자신의 SNS를 통해 "대통령이 민생은 뒷전이고 카르텔, 이념 운운하며 국민 분열을 극대화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도 이날 자신의 SNS에 "혐오와 차별의 정치가 증오와 폭력을 조장할 수 있다"라면서도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권력과 정치.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같은 날 유정주 민주당 의원도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향해 "'이 대표가 피습 당했던 말던 신경 끄자. 그럴수록 나의 이슈&국힘 이슈 덮인다'는 말을 참 거창하게도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친명계(친이재명계) 좌장인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3일 SBS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의 책임이다', 또는 '여당이나 대통령께서 너무 야당을 갖다가 적대시'라고 하는 그런 주장은 지금 적절치 않다"며 "우리 정치권 전체가 우리들의 행태가 뭐가 문제가 있었는지, 국민들에게 어떤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 반성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우리 정치사에서 정치 테러와 음모론은 언제나 존재했다. 아울러 정치 테러의 가장 큰 이유는 가해자의 개인적 동기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혐오 정치가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흉기를 쥐어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혐오 정치는 극단적인 문화를 활성화하는 배경이 될 수 있다.

근래 정치 환경은 SNS의 등장과 함께 점차 정치권과 지지층이 직접적인 소통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정치 고관여층은 꾸준히 증가했으나, 그 방향은 철저히 고립적이었다. 새로운 환경 속에서 정치권은 혐오를 이용하고 방치했다. 적극적인 개선에 나서지 않았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앞서 이 대표의 단식이 진행된 지난해 9월경 국회에서는 한 남성이 국회 본청에서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고, 한 여성이 휘두른 흉기에 국회경비대 여경이 상해를 입기도 했다.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탄했다. 

당시 정치권의 누구도 혐오 정치에 대한 뚜렷한 개선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초선인 오영환 민주당 의원만이 국회경비대를 찾아 일련의 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당시 오 의원은 "(경비대는) 대한민국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를 지켜주시는 아주 무겁고 두터운 소명을 다해주고 계신 분들"이라며 "이번에 세 분의 경찰관이 흉기에 부상을 입은 사건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폭력 범죄, 국가 의무와 공적 시스템에 대한 중대한 테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지지한다고 알려진 정당의 책임 있는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깊이 고개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린다. 피해를 입으신 세 분의 경찰관님께 깊은 위로의 마음도 전한다"고 설명했다. 혐오 정치는 결코 특정한 개인과 세력이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그 피해는 정치권 전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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