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세는 아까부터 자기와 함께 병졸의 모양을 유심히 보고 있던 젊은이를 보고 물었다. 흰 도포에 흰 베를 두른 갓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신분은 짐작키 어려웠다.
“피냄새가 납니다. 왕권이 또 어디로 갈 것인지…….”
사나이는 김용세를 돌아보지도 않고 깜짝 놀랄 말을 내뱉었다.
“노형, 인사는 없소만 말씀이 지나친 것 같소이다.”

관복 차림의 김용세를 의식하고 그가 한 말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가 없다고 김용세는 생각했다.
“미안하오, 그러나…….”
그때서야 사나이가 김용세를 돌아보았다.
“나는 서운관 승으로 있는 김용세라고 합니다. 북악 후인입니다.”
그가 북악이라고 한 것은 북악 김씨라는 뜻이다.

“그러시군요. 나는 밀직사 첨서의 아들 정기준(鄭基濬)입니다. 아직 백두입니다.”
백두란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밀직사의 당상관이라면 그렇게 함부로 말을 뱉을 수 없는 것이 상식이다. 정기준이야말로 이시대의 별종 인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노형이 한 말은 무슨 뜻입니까?”
김용세가 될 수 있는 대로 부드러운 얼굴을 하면서 되물었다.
“저기 군졸들은 모두 정안군의 입김을 쐰 무리들이오. 대장군 박포의 사병과 우산기상시 이거이의 사병 그리고 정안군의 병졸들이오.”
정기준의 말이 사실이라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정안군이 이 시국에 저토록 어리석은 명을 내릴 리는 없고.”
정기준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지금 주상이 최영과 정몽주를 제거하고 혁파 신기운의 시대를 표방하며 새 왕조를 세우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는 등 개혁 조치를 부단히 해온 지 벌써 5년이 지났지만, 아직 제도나 관습은 고려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모두의 관심이 쏠린 전제의 혁신, 즉 농토 개혁을 이루지 못했다.

군사 제도만 해도 중앙 통제군이 없고 세력 있는 자들이 모두 사병을 기르는 무인 독불장군 시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왕자들은 물론이고 세도가에는 모두 적은 규모에서부터 수백 명에 이르는 사병이 있었다.
정도전을 중심으로 반고려 혁신 세력이 사병 철폐, 전제의 실질 개혁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막내 왕자가 위의 여섯 형을 제치고 왕세자가 된 것은 현비의 힘이 여덟이요, 삼봉 대감의 힘이 둘이라고 할 수 있죠. 허나 그게 순리일까요? 이제 여덟의 힘이 없어진 이 마당에 무리수가 그대로 굳혀질까요? 자, 노형 그럼 나는 갑니다.”
“아니, 저어.”
김용세가 말할 틈도 없이 그는 횅하니 가버렸다. 정기준은 방원의 뜻을 알지 못했으나 김용세는 그날 방원이 물었던 그 일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김용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생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김용세는 다시 왕의 정릉 행차를 수행하게 되었다. 왕은 어혜에 황토를 묻혀 가면서 이곳 저곳의 산역을 몸소 지시했다.
차양 아래서 점심 수라를 마치고 쉬고 있는 전하에게 내시內侍 김사행金師幸이 엎드렸다.
“상감마마, 소인 김사행 아룁니다.”

키가 작고 양귓볼에 심술이 디룩디룩한 김사행이 또 무슨 아부의 진언을 할지 몰라 수행원들이 모두 긴장했다.
“비록 이서 대감이 시능 3년을 하시더라도 신덕왕후의 곁에는 큰 사찰이 있어 왕후를 외롭지 않게 해야할 줄로 아룁니다. 하여 조포사인 홍천사를 170칸으로 축조하고 여기에 5층 사리탑을 세워 이곳을 불교의 중심 사찰이 되게 하심이 타당한 줄로 아룁니다.”
“네 충성심이 지극하구나.”

왕은 감동하여 승정원에 그렇게 하도록 명했다. 뒤에 이 절은 조계종의 중심 사찰이 된 적이 있으며 중요한 보물들이 여기에 소장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김용세는 몇 달 동안 남문을 드나들 때마다 군졸들이 훈련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원래 남문 밖은 사복시 소속의 군마나 파발마들이 단련을 받는 곳일 뿐 아니라 삼군 도총제 소속의 병졸들이 산원(散員)을 중심으로 훈련을 늘 하는 곳이지만, 사병들이 이렇게 진을 치고 있는 것을 전에는 본 적이 없었다.

그와 동시에 궁 안의 당하관 관원들 사이에도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소문의 내용은 대개 한 덩어리였다.
주상이 현비를 잃자 국정은 멀리하고 비탄에 빠져 현비의 허상만 쫓고 있고, 당대의 실권자인 정도전은 개국 초기의 개혁 의지가 점점 퇴색되어 이제는 사리私利를 도모하는 일에 정신을 더 쏟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억눌려 있던 대군들이 그들의 실지를 회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될 것이고, 그것은 마침내 피를 불러 새 궁전을 물들이게 될 것이란 추측이었다.
현비가 갑자기 죽은 것도 연유가 있을 것이란 말도 나돌았다.
결국은 세자 방석의 세력과 방원, 방간을 중심으로 한 대군 세력 등 두 집단으로 갈라지고 모든 종친과 대신, 장수들도 이를 따라 두 파로 갈려 싸우게 될 가능성이 많아질 것이라고 김용세는 점쳤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궁 안에 떠도는 이야기를 화제로 삼던 김용세가 신홍아 상궁을 보고 물었다. 태백성이 낮에 움직인 천체의 이변을 전하께 보고하도록 승지들에게 기록을 전하고 나오던 김용세는 경복궁 후원에서 신 상궁을 만나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신 상궁은 현비의 빈궁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좀 초췌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아름다웠다.

“소녀가 뭐 아는 게 있겠습니까. 박포 장군 나으리와 이거이 대감 부자가 좀 과격한 말을 하더군요. 정도전 대감은 측은한 눈빛으로 세자 저하를 보고 계셔요. 정 대감은 밤에 주로 수진방의 남은 대감 소실 댁에서 모임을 갖는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요.”

신 상궁은 불안한 얼굴을 김용세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김용세는 남문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궁내의 소문이 틀림없이 연관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보다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신 상궁이 머뭇거리다가 결심한 듯한 목소리로 김용세에게 말했다. 신 상궁이 무엇을 부탁할 일이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이는 주상 전하의 하명이십니다.”
전지도 교서도 없는 주상의 하명이라니? 그렇다면 이는 밀명이라는 말이 아닌가? 김용세는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었다. 정안군에게 한 말이 주상의 귀에 들어가기라고 한 것일까?
“주상 전하께서 소녀에게 하신 말씀인데, 소녀는 그 일을 해낼 재주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믿을 수 있는 분이 없기에 이런 부탁을…….”

김용세는 가슴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신 상궁이 자기를 그렇게 보아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무슨 일입니까?”
“능의 둘레에 붙이는 사대석(莎臺石)의 안쪽에 높이 두 자, 폭 한 자 반의 감실을 파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이 일을 행하셔야 합니다.”
감실이란 물건을 넣을 수 있게 네모지게 파낸 것을 말한다.

“그곳에 물건을 넣은 뒤 다시 막아 그냥 돌처럼 보이게 감쪽같이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도굴을 걱정하신 걸까? 하긴 중국을 보면 역대 제왕의 무덤치고 도굴 당하지 않은 능이 없었다. 주상은 전대 왕들의 능을 잘 관리하고 도굴 당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지만 훗날의 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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